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38-한신 타이거스의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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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38-한신 타이거스의 우승
  • 손호영
  • 승인 2023.09.22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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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뜬금없이 우리나라 외교당국의 일본 오사카 여행 중 도톤보리 방문 자제 요청이 있었습니다. 무슨 소리인가 봤더니, 오사카를 연고지로 둔 일본 프로야구 구단 ‘한신 타이거스’가 센트럴리그 우승을 해서 인파가 몰릴 것이 뻔하니, 안전사고에 대비하라는 안내였습니다.

아니, 프로야구 구단 하나가 우승을 했다고 안전사고를 걱정할 정도로 인파가 몰릴 수가 있나? 특히 한신 팬은 우승 달성 시 오사카 시내 도톤보리 강에 뛰어든다고 하니… 호기심이 동했습니다. 찾아보고 나니 그럴 만하다고 수긍이 갔습니다.

한신 타이거스가 쓰는 구장이 '고시엔'이라고 합니다. 우리들 표현으로는 ‘갑자원’입니다. 지금이야 우리나라 웹툰이 인기이지만 예전에는 일본 만화를 즐겨 봤는데, 야구를 하는 고등학생들이 전국 우승을 노릴 때 항상 말버릇처럼 이야기하는 곳입니다. “갑자원에 가자!” 결승을 갑자원에서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인공들은 갑자원에 가서 그곳에 들어간 것 자체를 기꺼워하고 흙을 퍼서 싸옵니다. 갑자원은 열정, 청춘, 감동 등이 버무려지는 스포츠 만화의 정식 무대라고 할까요. 그만큼 오래된 야구장이고, 그만큼 상징성이 큰 곳입니다.

한신 타이거스는 오사카를 중심으로 간사이 지방에서 팬심이 무척 두텁다고 합니다. 우스갯소리로 오사카에 가서 농담으로라도 한신 타이거스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합니다. 자칫 잘못 꺼냈다가는 밤새 응원가를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고. 이런 팬심은 노벨상 수상자들도 예외가 없는데, 석학들도 야구에 대한 열정만큼은 지지 않는 모양입니다. 노벨의학상 수상자 혼조 다스쿠는 “한신 타이거스가 강해지기 위해서는 감독 교체를 해야 한다.”고 조언을 하는가 하면, 노벨화학상 수상자 요시노 아키라는 “나는 한신 팬이다.”라고 천명을 할 정도입니다. 누군가는 “한신 팬에게 응원은 관전이 아닌 참전이다”라고 하기도 했다니까 말 다했습니다.

한신 팬들의 열정이 하도 유명하자, 일본에서는 연구가 이루어지기도 했다고 합니다. 정신의학자들 몇몇이 모여 ‘야구 관람이 혈압, 심박수와 타액 코르티솔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는데, 결론이 흥미롭습니다. “타구단 팬은 혈압 저하 현상이 나타나는데 한신 팬은 혈압이 오른다.” 또 “한신 팬은 야구 관전 후 심박수가 감소하고, 스트레스 물질이 하락하는 경향을 보인다. 야구 관전이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증거”라는 설명도 덧붙입니다. 이에 한신 팬의 사례를 통해 치료법도 발표되었다고 합니다. ‘신경난치병 환자의 QOL 향상을 목표로 한 환자의 꿈’이라는 주제인데, 이 치료법은 장기 환자들이 한신 경기 관전과 우승 시 도톤보리 강에 뛰어들기 위한 목표를 심어주자 높은 동기부여로 재활에 참가했다는 것을 사례로 들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번에 한신 타이거스는 어떻게 우승하게 되었을까요? 우승의 원인을 어떤 하나에 귀속시키기란 어렵습니다. 다만 한 가지를 꼽자면 감독 오카다 아키노부(岡田彰布)의 리더쉽 덕분입니다. 그는 혹시나 선수들이 부담을 느낄까 우승을 '그것'이라 돌려 말했는데, 오히려 이것이 선수들을 자극했다고 합니다. 근데 공교롭게 ‘그것(アレ·아레)’은 한신의 모토인 ‘A.R.E’와 발음이 같습니다(일본에서는 ‘A.R.E’를 한 글자씩 띄어 읽는다고 합니다). 그 뜻이 무엇이냐 하니, ‘명확한 목표(Aim)를 갖고 야구와 선배들을 존중(Respect)하며, 각자 파워 업(Empower) 하자’는 뜻이라고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그는 부임 후 ‘선수평가에서 볼넷과 안타를 같은 기여도로 인정해 달라.’고 구단에 요청했다고 합니다. 볼넷이나 안타나 결과적으로는 같은 출루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안타를 더 높게 치는 전통적 견해에 반하는 것이지만, 최근 미국 분석 기법에 대응해 변화하고자 한 것입니다.

저는 스포츠 경기 관람을 즐기는 편이지만, 라이트한 수준입니다. 하지만 그런 저도 제가 좋아하는 팀이나 선수가 우승을 하게 되면 무척 감동할 때가 있습니다. 겸연쩍을 때도 있습니다. 팀이나 선수와 내가 무슨 상관이라고. 누군가의 말처럼 그들이 우승한다고 나한테 떡이 나오지도 않고 밥이 나오지도 않는데. 그런데 저는 이렇게 이해합니다. 스포츠란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책이나 드라마를 보고 감동하듯, 스포츠를 보고 감동하는 이유는, 우리가 스포츠를 그저 경기로 보지 않고 ‘이야기’로 보기 때문입니다. ‘각본 없는 드라마’란 말은 그래서 정말 딱 맞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끊기지 않고 몇십 년 동안 이어집니다. 내용은 더 깊어지고, 복선이 생기기도 하고, 이야깃거리는 계속 쌓여갑니다. 세헤라자드의 이야기에 왕이 빠져들었던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스포츠를 좋아하게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sohnhoyo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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