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37-새로운 시대의 법률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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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37-새로운 시대의 법률업무
  • 손호영
  • 승인 2023.09.15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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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국내 변호사가 1000명을 넘어섰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1973년 설립되고 50년 만에 규모가 엄청나게 커졌습니다. 다른 대형 로펌도 500명을 넘는 곳이 두 군데나 있다고 합니다(광장, 세종).

법률업무가 노동집약적 업무라는 것은 우리 법률가가 제일 잘 압니다. 언젠가 한 판사님이 “우리는 책상이랑 컴퓨터만 있으면 일할 수 있다.”라고 하였는데, 그때 우리는 모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토록 비용이 들지 않는 업무이면서 사람이 전부인 업무라니!

법률업무가 노동집약적 업무라면, 법률업무를 통해 창출하는 부가가치가 모두 노동에 기반한다는 뜻입니다. 변호사들이 보수를 타임 차지 형식으로 받는 것은 이 때문일 것입니다. 로펌의 자원은 거의 대부분이 인적 자원이고, 인적 자원을 계량화할 수 있는 데에는 ‘시간’이 가장 직관적이고 기본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로펌은 변호사 수만큼 가용한 총 시간을 획득하므로, 그 시간을 적정하게 분배함으로써 업무의 효율을 높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로펌은 변호사 수를 더 늘린 것일지도 모릅니다. 법률업무는 여전히 노동집약적이므로, '성장=변호사 수의 증가' 공식이 여전히 통용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고 바뀌어가야 되지 않나 싶습니다. AI를 새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독일 인공지능 스타트업 DeepL의 기업 가치가 최근 10억 달러를 넘었다고 합니다. DeepL이 내놓은 AI 번역기가 상당히 정확도가 높아 구글 번역기보다 선호되고 있기 때문인데, 직원 수로 비교해보면 차이가 확 납니다. 구글은 전체 직원이 10만 명이 넘고, AI 개발에 매년 수조원씩 사용하는데, DeepL은 직원 500명 수준이라고 합니다. 온라인 사전 회사로 사업을 시작하면서, 여러 언어·단어의 관계를 방대한 데이터로 축적한 것이 드디어 효과를 발휘한 것입니다.

이러한 AI 시대를 맞이하면, 리걸테크도 멀리 있지 않습니다. 특정 분야에 특화된 AI 개발과 기술 경쟁력을 갖추는 것은 어렵지만 도전할 만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로펌의 성장을 이야기할 때 더 이상 ‘변호사 수’는 중요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미국 리걸테크 기업 Casetext는 GPT-4에 기반한 CoCounsel 서비스를 출시했다고 합니다.. 이 서비스는 법률 문서를 검토할 뿐만 아니라 유사 판결문 검색, 기초적 법률 조언까지 해준다고 합니다. 이 회사의 기업가치는 약 8,000억 원 상당입니다.

Casetext는 GPT-4가 미국 변호사 시험(UBE)의 객관식 및 서술형 시험을 모두 통과했으므로, 이를 활용하여 전문가 수준의 법률용 AI를 실현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현재 목표는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업무를 자동화하고 변호사들이 가장 영향력 있는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법률 업무 방식을 바꾸는 것”이라고 합니다.

영국 기반의 리걸테크 스타트업 Luminance도 계약과 문서를 검토하는 데 AI기술을 도입했다고 합니다. 기업가치는 1,000억 원을 넘는데, 특히 러-우 전쟁에서 활약을 했습니다. 고객사가 러시아 제재에 대응하여 어떻게 기존의 계약 관계를 처리할지를 결정해야 했는데, 이 기술 덕분에 단 30분이라는 시간 동안 모두 검토를 마쳤다고 합니다.

이렇게 거창한 것이 아니더라도 사실 저도 개인적으로 AI의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법률 업무를 하면서, 증거 정리를 하는 것이 일이었습니다. 기록이 두꺼우면 증거목록을 프린트한 뒤, 빈칸에 핵심내용을 메모해두기도 했고, 증거에서 사실관계를 추출하면서 시간순으로 배열했는데, 이런 일들이 여간 품이 많이 드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AI의 도움이 있다면, 이런 품이 드는 일들이 자동화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게 됩니다. 등기부를 보면서, 갑구, 을구를 분석해서 거래상대방과의 관계까지 요약해줄 수 있다면! 당사자가 제출한 증거의 해당 내용을 읽어 요약까지 할 수 있다면! 서로가 작성한 계약서와 공문 내용, 이메일 등에서 사실관계를 시간대별로 추출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현재 GPT-4 기술로는 이것이 대충 가능하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세금계산서와 같은 양식이 있는 문서는 자동으로 읽어 시간대별로 그 사업자의 거래형태도 파악할 수 있고, 금전거래와 같이 어려운 것도 모두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 있을텐데, 얼마나 편리할까요.

아마도 그 때문문에 글로벌 리걸테크 시장은 연평균 성장률 8.9%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규모가 2032년까지 약 88조 원에 이를 전망이지 않을까 합니다. 법조계는 변화에 느린 곳입니다. 그러니 선점만 한다면 더 크게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비록 어려운 길이지만, 리걸테크를 추진하시는 분들께 응원을 드립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sohnhoyo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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