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한국정치 분석은 왜 어려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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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한국정치 분석은 왜 어려울까!
  • 신희섭
  • 승인 2023.09.08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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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신희섭 정치학 박사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한국정치를 보면 마음이 무겁다. 한국정치에 애정을 가진 학자들이나 분석자 중엔 이런 생각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대체로 조용하다.

한국정치를 분석하는 이들이 요즘 유독 조용한 것은 여러 가지로 해석된다. 첫 번째, 현재 한국정치는 분석하기 어렵다.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너무 많다. 어떤 정치인들은 횟집 수조에 들어있는 물을 마신다. 런던협약은 작은 쓰레기도 바다에 버리지 말라고 하는데, 현실 정치는 일본의 오염수 방류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기도 한다.

두 번째, 한국정치에서는 분석할 만한 값어치가 없는 일들도 자주 생긴다. 다원적 사회에서 이익을 두고 집단이 갈리기 때문에 원래 정부가 펴는 정책은 기본적으로 호불호가 갈린다. 자신과 가족의 생계가 걸린 이익 투쟁은 사활적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합리성을 전제할 때 이러한 투쟁은 당연하고, 이 과정을 통해 다원주의를 가진 정치공동체가 발전하고 진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한국정치에서의 투쟁은 이런 일과 무관한 경우가 많다. 특히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대통령 부인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세 번째, 양극화가 강한 한국 정치구조에서 중용의 미덕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한국정치는 양극화로 치닫고 있다. 10년 주기로 교체되던 정권이 5년 만에 바뀌면서 정치적 투쟁의 강도는 극을 향해 달리고 있다. 유튜브와 팟 캐스트의 지원사격을 받으면서 정당 간 양극화는 심화하고 있다. 정당 간 정책 경쟁은 오래전 이야기고, 원색적인 공격과 상대방에 대한 비방이 주를 이룬다. 정치학에서 쓰는 용어를 빌리자면 합리성에 기초한 ‘인지적 동원’보다는 감정과 정서에 기초한 ‘정서적 동원’이 주된 전략과 전술이 되었다. ‘친구 아니면 적’으로 인식하는 정치구조에서 정치적 미덕인 ‘중용’을 이야기하면서 타협을 주장하는 것은 철없은 치기거나 세상 물정 모르는 이상주의로 해석된다.

네 번째, 한국정치 분석이 모든 이를 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걱정이다. 한국정치의 적나라한 현실분석은 돌아올 부메랑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진보진영과 보수진영 모두에서 공격받을지 모른다. 담론 투쟁의 주도권을 강경파들이 장악한 사회적 분위기에서 약한 지지는 배신이나, 논리적 모순으로 몰릴 수 있다. 특히 온건파나 중도적 입장에 있는 분석자들은 더욱 그렇다. 극단주의자들이 언제 달려들지 모른다. 사실 이들이 달려드는 것이 걱정이 아니라, 불필요한 논의를 지루하게 끌어가면서 소진될 것이 더 큰 걱정이다.

다섯째, 변화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이기 때문이다. 한국정치 지형이 바뀌고 있다. 이런 변화는 미디어 생태계 변화에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문자에 기초한 뉴스 매체들의 영향력이 확연히 줄고 구술에 기초한 뉴미디어의 영향력이 확실히 늘어났다. 유명 정치 유튜버들은 웬만한 신문사 구독자보다 많은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이들의 감정에 기초하고 적을 구분해버리는 명쾌한 논리가 유권자들을 흔들어댄다.

한국정치의 변화는 미디어 생태계 변화와 동반되어야 하는데 이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 고령화 사회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고, 전문적인 이슈들은 계속 쏟아져 나온다. 이런 조건에서 긴 시간을 들여서 논리적인 ‘활자’를 보는 것보다 단순하게 구분해주는 ‘말’이 훨씬 먹힌다.

문제는 배운 것을 의미 있게 만들고 싶은 오지랖이다. 현상을 모른 척하거나, 한국정치 분석을 포기하면 쉬운데 그것이 또 잘되지 않는다. 이상적인 사회는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지금보다 좀 더 나은 사회가 있을 것이고, 그 사회로 가는데 자신이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버리기 어려워서 그렇다.

그래서 많은 학자와 분석자들은 무거운 돌을 굴려야만 하는 운명을 가진 시지프스처럼 또 한국정치를 들여다보게 된다. 운명이라는 것이 참 그렇다.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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