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수상했던 당신께
상태바
[칼럼] 수상했던 당신께
  • 조미연
  • 승인 2023.09.06 14:4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마약신고를 한 정신장애인에 대한 공무집행방해등 무죄판결을 환영하며
<strong>조미연</strong>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조미연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2023년 6월 23일, 서울북부지방법원 형사법정에서 의미 있는 판결이 선고되었습니다(사건번호 2023고단55). “주문, 피고인은 무죄. 이 판결의 요지를 공시한다. 판결이유는 … (생략)” 이 사건 선고기일에 참석했던 피고인은 “무죄 판결을 통해 그동안 고생한 마음이 다 풀린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 사건 피고인의 기소 사유는 경찰에 대한 공무집행방해, 모욕입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작년 9월 말 저녁8시 경, 피고인은 집 베란다에서 옆집의 누군가 다투는 소리를 듣고 ‘마약, 폭행 관련하여 경찰에 전화로 신고’하였습니다. 이후 피고인은 경찰이 찾아오자 현관문을 열어주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수의 경찰(4명)을 보고 공황이 와 다시 문을 닫으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경찰은 112신고 내용 확인을 이유로 문을 닫으려는 피고인의 의사에 반해 현관문 안쪽으로 들어와 피고인이 문을 닫을 수 없도록 제지하였고, 피고인은 경찰을 집 밖으로 내보내기 위해 가슴 부위를 2회 밀쳤습니다. 경찰은 피고인을 공무집행방해죄 현행범으로 체포하였으며, 피고인은 체포되어 연행되는 과정에 수갑이 채워지고, 팔과 무릎에 상처를 입었습니다.

중증 정신장애인 피고인은 당시 13가지 종류의 정신과 저녁 약을 복용한 상태였습니다. 약 복용의 증상 및 부작용으로 인해 의사소통과 몸을 제대로 가누는 것 등이 어려웠기에 다수 경찰의 불법체포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신고자였고 스스로 경찰에게 문을 열어주었던 피고인은 수상해 보인다는 이유로 졸지에 경찰의 위법한 강제수사 대상이 되었습니다.

갑자기 체포당한 것도 억울한데, 속옷차림으로 수갑이 채워진 채 민원인이 오가는 지구대로 연행되고 평소 신뢰 관계있는 복지사 등에게 도움을 요청하려고 하였으나 경찰에 의해 핸드폰마저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피고인은 자신을 강하게 제압했던 특정 경찰관을 향해 큰소리로 항의하였고, 피고인의 범죄혐의에는 모욕이 추가되었습니다.

재판부는 경찰이 피고인이 문을 닫지 못하도록 제지한 행위는 강제처분이므로 형사소송법상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피고인의 112신고 내용에 ‘마약이나 폭행’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었고 경찰관이 피고인을 대면하였을 때 피고인이 어눌한 행동을 하고 눈이 풀려 있는 듯한 모습을 보인 점만으로는 당시 피고인이 마약 또는 폭행 관련 범죄를 실행하거나 실행한 직후에 있었다고 판단하기 어렵고, 의심할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보기에도 부족하므로, 피고인을 체포할 법률상 요건이 충족되었다고 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나아가 경찰은 피고인을 경찰서로 연행한 뒤 소변을 채취하려고 하는 등 마약 혐의를 수사하다가 ‘피고인이 주취 상태(술 냄새 등 음주정황이 없었음에도)에 있어서 조사가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약 3시간 만에 석방하였는데, 재판부는 피고인이 경찰에게 흉기를 비롯한 예상 밖의 수단을 동원하여 저항한 것도 아닌 점 등을 고려한다면 현행범 체포는 위법을 면하기 어렵고, 그렇다면 피고인은 별다른 체포사유가 없는 불법체포로 인해 신체의 자유가 중대하게 침해되었으며, 이 사건에서 피고인이 경찰을 모욕한 것은 체포의 부당함을 피력하여 석방을 촉구하기 위한 우발적인 행동으로서 그 상당성을 인정할 수 있으므로 정당방위에 해당하여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하였습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26조 제6항에 의하면, 사법기관은 사건관계인에 대하여 의사소통이나 의사표현에 어려움을 겪는 장애가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그 장애인에게 형사사법 절차에서 조력을 받을 수 있음과 그 구체적인 조력의 내용을 알려주어야 할 ‘의무’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경찰은 정신과 약 복용으로 인해 의사소통이 어려웠던 피고인에게 장애가 있는지, 의사소통 지원이 필요한지 묻지 않았습니다. 수상했던 피고인에게 적법한 공무집행을 했다는 입장입니다. 피고인은 이 사건 법정에서 “저는 중증 정신 장애인이지, 범죄자가 아닙니다. 한순간에 범죄자가 될까 두렵습니다. 억울함이 풀릴 수 있길 간절히 바랍니다”라고 최후진술 하였습니다.

공감은 이 사건이 마약수사 명분 아래 ‘정신장애’가 고려되지 않은 문제에 주목하여 사단법인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와 함께 사건을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피고인이 마약신고를 했다가 공무집행방해 등으로 기소되어 법원의 1심 판결을 받아 보기까지 약 9개월이 걸렸습니다. 판결이 선고되기까지 고통으로 지새웠을 피고인의 하루하루에 이번 무죄판결이 위안이 되었길 바랍니다. 다만, 이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항소기한을 앞에 두고 결국 검사가 항소를 하였기 때문입니다. 검사의 항소이유는 여전히 경찰의 공무집행이 적법하였다는 것입니다. 수상했던 당신께, 남은 재판절차에 대한 심심한 위로와 격려의 마음을 보탭니다. 공감은 항소심에서도 무죄판결을 유지하고 검사의 항소에 대한 기각 판결을 받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조미연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공감 뉴스레터 2023년 7월호 제공>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