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범 변호사의 ‘시사와 법’ (135)-강제징용 판결금 제3자 변제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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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변호사의 ‘시사와 법’ (135)-강제징용 판결금 제3자 변제 불가
  • 신종범
  • 승인 2023.09.01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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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변호사
신종범 변호사

2018년 대법원은 일제강점기 전범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는 우리 대법원의 판결을 인정하지 않았고, 미쓰비시 또한 배상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피해자들은 미쓰비시의 국내 특허권에 대한 강제집행을 신청했고 법원은 특허권에 대한 매각명령을 내렸지만, 미쓰비시가 이에 불복해 대법원에 재항고를 신청해 아직까지 그 결정이 나오지 않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한, 일 관계의 복원을 주장하며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강제징용배상 문제도 정부 차원에서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마침내 지난 3월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하 ‘지원재단’)을 통해 일본 전범기업을 대신하여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하겠다는 ‘제3자 변제안’을 발표했다. 당연히 왜 일본 전범기업의 배상금 채무를 우리의 부담으로 변제해 주어야 하느냐는 반대 여론이 일었다. 나아가, 피해자들(채권자)의 동의없이 ‘제3자 변제’를 할 수 있느냐 등의 법리적 문제도 제기되었다.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지원재단을 통해 일본 전범기업을 대신하여 피해자들에 대한 ‘제3자 변제’ 절차에 나섰다. 2018년 대법원 판결에서 승소한 피해자 중 일부는 지원재단의 변제에 응했으나, 나머지 징용 피해자와 유족은 이를 거부하였다. 외교부와 지원재단은 변제를 거부한 피해자, 유족의 거주지를 바탕으로 광주, 전주, 수원지방법원 등에 공탁 신청 서류를 제출했다. 하지만, 법원 공탁관은 대부분의 신청에 대해 불수리 결정하고, 일부는 신청을 반려했다. 법원 공탁관은 공탁 신청을 수리하지 않으면서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제3자인 지원재단이 일본 기업을 대신해 배상금을 지급하거나 공탁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민법 제469조에 근거한 판단이다.

민법 제469조 제1항은 채무의 변제는 제3자도 할 수 있지만, 채무의 성질 또는 당사자의 의사표시로 제3자의 변제를 허용하지 아니하는 때에는 제3자는 변제를 할 수 없음을 규정하고 있다. 지원재단이 일본 전범기업을 대신하여 변제하는 방안은 ‘제3자 변제’에 해당한다. 많은 법조인들은 채권자인 강제징용 피해자가 반대할 경우 민법에 따라 제3자인 지원재단은 채무자인 일본 전범기업을 대신하여 변제할 수 없고, 나아가 강제징용피해배상 판결금은 단순한 금전채무가 아니라 일제강점기에 이루어진 중대한 인권침해에 대한 배상 판결금으로 가해자인 일본 전범기업을 통해 직접 배상이 이루어져할 성질의 채무로서 채무의 성질상으로도 ‘제3자 변제’가 허용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법원 공탁관도 이러한 판단에 따라 지원재단의 공탁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외교부는 실질적 심사권이 없는 공탁관이 직권으로 공탁을 불수리한 것은 권한을 넘는 행위라면서 법관의 판단을 받아보겠다고 했고, 그에 따라 지원재단은 공탁관의 불수리 결정에 대해 이의신청에 나섰다. 하지만, 이의신청을 접수한 전주지방법원, 광주지방법원에 이어 수원지방법원까지 모두 이의신청을 기각했다.

지원재단의 “채권자와 채무자가 합의해 제3자 변제를 허용하지 않는 경우에만 제3자 변제가 제한된다”는 주장에 대해서, 법원은 "이 사건 판결금채권과 같은 법정채권에도 민법 제469조 제1항 단서가 적용돼 당사자 일방 표시로 제3자의 변제를 허용하지 않을 수 있다"며 "피공탁자가 반대 의사를 명확하게 표현하고 있어 신청인의 주장은 이유 없다"고 판단했다. 나아가, "공탁관은 공탁신청의 절차적 요건뿐만 아니라 해당 공탁이 유효한가 하는 실체적 요건에 관해서도 공탁서와 첨부서면만에 의해 심사할 수 있다"며 "공탁관이 신청인의 공탁서 및 첨부서면에 나타난 사실(피공탁자의 반대 의사)을 바탕으로 불수리 결정한 것은 공탁관의 형식적 심사권의 범위를 벗어난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하면서 정부의 주장을 전부 배척했다.

외교부는 법원의 이의신청 기각결정에 대해서도 항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불법행위책임자인 일본 전범기업을 대변하는 듯 자국 법원의 판단에 대해서 다투는 정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외교부는 일본 전범기업을 대신해 채무를 갚겠다고 나서고, 대통령실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가 안전하다는 동영상을 만들어 홍보하고, 국방부는 미 국방부의 ‘일본해’ 표기 방침에는 묵묵부답이더니 뜬금없이 육사 교정에 설치된 독립운동가 흉상을 철거하겠다고 한다. 헌법이 첫머리에서 밝히고 있는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 대한민국 정부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신종범 변호사
http://blog.naver.com/sjb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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