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34-사유의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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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34-사유의 방
  • 손호영
  • 승인 2023.08.25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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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국립중앙박물관에 ‘사유의 방’이 만들어진지 제법 되었습니다. 사유의 방은 국보 반가사유상 2개를 전시하기 위해 국립중앙박물관 내에 마련된 독립전시실입니다. 원래 국보 반가사유상은 3개월마다 한 점씩 전시되었는데, 한 공간에 동시 전시하는 파격적 전시를 선보인 것이라 합니다.

세간에서 워낙 유명했기에, 최근 일요일 오픈런을 해봤습니다. 공간에 들어서자 곧 ‘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을 보내보라는 취지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공간을 제가 묘사하는 것은 필력의 부족으로 적절하지 않을 것 같고, 국립중앙박물관의 설명으로 갈음하고자 합니다.

“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 - 어둡고 고요한 사유의 방을 걸어 들어가면 끝없는 물의 순환과 우주의 확장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시공을 초월한 초현실의 감각을 일깨우며 반짝임을 따라 천천히 걸음을 옮기면 1,400여 년의 세월을 지나 우리 앞에 있는, 두 점의 반가사유상을 만나게 됩니다. 종교와 이념을 넘어 깊은 생각에 잠긴 반가사유상이 세상 너머를 바라보는 듯, 고뇌하는 듯, 우주의 이치를 깨달은 듯, 신비로운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반가사유상을 바라보는 동안 마음에 작은 파문이 일어나고, 치유와 평안이 다가옵니다.”

반가사유상이라는 이름은 상(像)의 자세를 그대로 표현한 것입니다. 반가(半跏)는 결과부좌(結跏趺坐’: 양쪽 발을 각각 다른 쪽 다리에 엇갈리게 얹어 앉는 자세)에서 한쪽 다리를 내려뜨린 자세를 의미하고, 사유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 깊은 생각에 잠긴 상태이니, 반가사유상이란 곧 ‘반가의 자세로 깊은 생각에 잠긴 불상’의 뜻입니다.

그런데 반가사유상이라는 이름에는 녹아 있지 않은 또 다른 모습도 있습니다. 불상은 살짝 미소를 보이고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표현에 따르면 이렇습니다. “살짝 다문 입가에 잔잔히 번진 ‘미소’는 깊은 생각 끝에 도달하는 영원한 깨달음의 찰나를 그려 보게 합니다. 이 찰나의 미소에 우리의 수많은 번민과 생각이 녹아들어 있습니다.”

전시 관람에 일가견이 있는 것은 아닌 데다, 언뜻 들은 감상은 사사로운 것이니 구구절절 풀어낼 필요는 없습니다만, 현실 법률가로서 생각을 나누고 싶은 한 가지를 꼽으라면 이것입니다.

“사유를 하기 위해, 사유의 방까지 올 필요는 없다. 그런데 나는 평소에 ‘두루 헤아리는 깊은 생각’에 잠긴 적이 있는가?”

우리 법률가에게 사유는 반가사유의 사유(思惟)가 아니라 ‘일의 까닭, 원인, 이유’라는 뜻의 사유(事由)가 보다 익숙합니다. 조금 더 들어가보면, 사유(思惟)는 ‘하다’라는 말과 어울립니다. 즉, ‘사유하다’라는 말은 곧잘 쓰입니다. 사유(事由)는 그렇지 않습니다. 억지를 부려보자면, 어쩌면 법률가는 ‘사유(思惟)하다’라는 동적 세상보다는 ‘사유(事由)’와 같은 명사형 또는 정적 세상에 친숙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현실 법률가는 일이 많고 바쁩니다. 분쟁은 많고,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고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법률 업무는 아직 노동집약적 업무라고 생각하고 있기에, 결국은 우리의 시간과 노력을 오롯이 들여야 업무를 할 수 있습니다. 사유(事由)를 찾고 검토하고 따지는 것이 우선이지, 여기에 사유(思惟)하는 사치를 부릴 수 있을까요. 그런 사치는 남는 시간에 국립중앙박물관에 들러 사유의 방에 가서, ‘사유했다.’는 기분만 느껴도 충분한 것이 아닐까요.

하지만 이렇게 의식의 흐름이 진행되다가도, 자칫 철학과 신조가 없는, 참을 수 없이 가벼운 법률가가 될까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우리는 그저 법률지식을 전달하는 자판기이거나 대행사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유, 명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언제나 스스로 돌아보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그런데 또 쓰고 보니 그러한 자세가 바로 반성(反省)인데, 이건 또 많이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sohnhoyo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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