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대통령제의 모순에 따른 한국의 정치적 갈등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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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대통령제의 모순에 따른 한국의 정치적 갈등 심화
  • 신희섭
  • 승인 2023.08.18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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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신희섭 정치학 박사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한국인들은 한국정치에 걱정이 많다. 진보와 보수가 다른 관점에서 걱정한다. ‘대통령의 통치행태 vs. 야당의 무능력’ 담론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런 걱정과 불만은 각자의 이념에 의해 부분적으로 굴절되어 보이기 마련이다.

좀 더 객관적으로 제도적 관점에서 한국정치에 대한 걱정도 많다. 선거가 머지않은 상황에서 선거제도 개편안이 가닥을 못 잡은 것이 문제다. 하지만 좀 더 본원적인 문제도 있다. 한국이 사용하는 대통령제도 자체의 문제들 말이다.

비교정치 관점에서 대통령제도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1990년대부터 나왔다. 신생민주주의 국가 중에서 대통령제를 사용하는 국가가 의원내각제보다 민주 정부의 수명이 짧거나, 군사쿠데타 발생 확률이 높다. 즉 비민주주의로 역행하거나 퇴행하기 좋다는 것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정권을 4번이나 교체한 한국에서 ‘비민주주의로의 역전’이 주된 걱정은 아니다. 제도운영이 더 문제다. 한국 대통령제가 내각제와 혼용된 모호한 형태를 띠고 있어서 국정운영이 어렵다는 주장도 꽤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이 문제의 해결은 헌법을 고치는 것이다. 그러나 개헌은 정권마다 논의는 되지만 실현은 요원해 보인다.

한국 대통령제에서 좀 더 주목할 부분이 있다. 대통령제가 가진 국가원수의 기능과 행정부 수반으로서의 기능적 충돌이다. 대통령은 국가원수고 특정 정당을 대표해 선출된 행정부의 우두머리다. 국가원수로서 모든 국민을 평등하게 반영하고 대표해야 한다. 하지만 선거에서는 특정 이념의 특정 정당 대표로 당선된 것이기에 표를 준 이들의 이익을 반영해야 한다. 이 모순된 기능이 점차 더 문제가 되고 있다.

대통령제는 미국에서 발명된 제도다. 왕을 두지 않지만, 행정부는 선출된 왕이나 마찬가지인 대통령이 통치한다. 유럽의 내각제 국가들은 영국처럼 국가대표의 역할을 하는 국왕이 있거나, 독일처럼 국민이 선출하지 않는 대통령에게 위임한다. 그리고 행정부는 선거에 승리한 정당이 당의 이념과 정체성에 따라 수상 혹은 총리가 통치한다. 그런데 공화국인 대통령제 국가에서 국가대표 기능도 대통령의 몫이고, 행정부를 특정 가치에 따라 지도하는 것도 대통령의 몫이다. 그래서 국민통합- 국민대표 기능과 특정 집단 이익 반영 기능이 상충하는 것이다.

그럼 미국과 한국은 동일한 고민을 할까? 강원택 교수는 『국가는 어떻게 통치되는가』에서 미국이 한국과 다른 이유를 3가지로 설명한다. 미국 대통령에게 국가원수 기능이 크게 부각되지 않는 첫째 이유는 미국 정당이 약하기 때문에 대통령 개인의 속성이 중요해진다는 것이다. 한국처럼 특정 정당 대표로 대통령이 특정 정당에 장악되는 상황이 적다는 것이다. 둘째 이유는 미국에서는 대통령을 국가원수로 규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행정권은 미국 대통령에게 속한다.”라고 헌법에 규정되어 있을 뿐이라, 대통령은 자신의 정당을 위한 정치적 지원이 가능한 것이다. 셋째 이유는 미국이 연방제 국가이고 지방분권화가 잘 되어 지방 차원의 정치적 갈등에 대통령이 휘말릴 가능성이 적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3년 탄핵 소추된 이유가 총선을 앞두고 자기 정당 후보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국가원수의 기능을 저버린 것이 문제가 되었다는 점에서 한국은 대통령에게 국가원수 기능을 매우 강하게 요구한다.

한국 대통령제에서 실제 문제는 대통령이 마주한 현실과 규범적 요구가 모순된다는 점이다. 한국은 정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특히 유권자들의 정서적인 양극화 혹은 상대정당에 대한 비호감이 강하다. 게다가 한국정당은 2000년대 들어오면서 실질적으로 양당제다. 두 가지 조건이 결합한 현 상황은 정당 후보인 대통령이 당선되면 지지자들은 상대정당 지지자를 배제하고 자신들의 이익에 기초해 정치운영을 해달라고 한다. 하지만 ‘선출된 왕’으로서 대통령은 국민통합에 나서 모든 이로부터 지지를 받거나 신망의 대상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혹은 규범적 차원에서 대통령은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게다가 이 논리는 반대정당이 대통령을 공격하여 정당성을 약화하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한국정치는 특정 정당의 이념을 반영하는 파벌적인 대통령이 현실 권력정치를 제대로 보여주지만, 국가원수 역할을 무시한다고 비판받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강한 정당 규율의 정당정치, 국가원수에 대한 헌법적 요구, 단방제 국가라는 요인 때문에 한국은 미국처럼 되지 못한다. 게다가 2번의 장기집권에 따른 비극과 1번의 대통령 탄핵이라는 한국정치의 역사 역시 미국과 맥락이 다르다. 그러니 대통령을 둘러싼 불필요한 소모전을 피하기 위해서는 국가원수로서의 대통령과 행정부 수장으로서의 대통령의 역할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만들 필요가 있다. 대외관계와 국내정치가 깨끗하게 구분되기 어려운 현대의 상황도 고려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쉬운 일이 아니니 사회적으로 지혜를 모아볼 필요가 있다.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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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창욱 2023-08-21 06: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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