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자유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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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자유란 무엇인가?
  • 최용성
  • 승인 2023.08.03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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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성 변호사·법무법인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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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이 보장한 집회의 자유를―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무시하면서까지―제한하려고 시도하거나, 특정 언론매체에 대한 적대적 표현을 하는 것처럼 자유를 지상 가치로 내세우면서 실제로는 시민의 자유를 위협하는 역설이 발생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무래도 자유의 의미를 기초부터, 인문학적으로 다시 생각할 필요를 느낀다. 마침 국가, 자유, 인권, 정의, 보수주의, 전체주의 등등 묵직한 주제들을 여러 고전문헌의 인용과 설명으로 이해하기 쉽게 풀어낸, 박찬운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인권고전강독 자유의 인문적 사색>(삼원사, 2023)이 출간되었으니, 여기 인용된 고전문헌들을 중심으로 자유의 의미를 살펴보자.

사람은 언어적 존재이므로 자유의 출발은 생각대로 말할 자유이다. “비록 한 사람을 제외한 전 인류가 같은 의견을 갖고 있고 오직 한 사람만이 반대의견을 가진다고 하더라도, 그 한 사람이 권력을 가지고 있어서 전 인류를 침묵시키는 것이 부당한 것과 마찬가지로 인류가 그 한 사람을 침묵시키는 것도 부당하다. (...)의견 발표를 침묵게 하는 데에서 발생하는 해악의 특수성은 현세대와 차세대를 포함한 전 인류의 행복을 강탈한다는 사실과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들보다는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손실이 더 크다는 사실이다. 만일 그 의견이 옳다면, 인류는 오류를 진리와 교환할 기회를 상실하게 되고, 만일 그것이 다르다면, 진리가 오류와 충돌하면서 발생하게 되는 진리에 대한 더욱 명백한 인식과 더욱 선명한 인상을 상실하게 되는 엄청난 혜택의 손실을 보게 된다”(김형철 옮김, <자유론>, 서광사, 2008, 42∼43쪽)는 존 스튜어트 밀의 말은 모든 자유주의 사상의 출발점이다. 나와 다른 생각을 할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그 구체화인 언론의 자유나 집회의 자유가 제대로 보장될 리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상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가 당연히 인정되는 권리라고 쉽게 생각하지만, 역사적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존 베리는 “우리는 언론의 자유에 너무 익숙해져 그것을 하나의 당연한 권리로 간주한다. 그러나 이 권리는 아주 최근에야 획득되었으며 그것을 얻는 데 이르는 길에는 유혈의 호수들이 가로놓여 있었다.”(박홍규 옮김, <사상의 자유와 역사>, 바오, 2006, 20∼21쪽)고 하면서, “인간사회는 일반적으로 사상의 자유, 또는 달리 말해 새로운 생각에 반대해왔다. (...) 평균적인 두뇌는 본래 게으르며, 가장 저항이 적은 노선을 취하려는 경향이 있다. (...)보통 사람들은 이 친숙한 세계의 기성 질서를 뒤집는 것에 대해 본능적으로 적대적이다. (...) 보통 사람들에게 기존의 믿음과 제도에 의문을 던지는 새로운 생각과 의견은 사악한 것으로 보인다.”(20쪽)고 그 이유를 설명한다.

자유를 억압한 사례 중 하나로, 16세기 스위스에서 자신의 신념에 반하는 모든 행위를 금지하고 반대자를 처형하던 칼뱅을 들 수 있다. 바로 그 시절 세바스티안 카스텔리오는 “한 인간을 불태워 죽인 일은 이념을 지킨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을 살해한 것이다. (...)사람들에게 강요해서 믿음을 갖게 하려는 행동은, 영양가 있는 음식을 환자의 입에 억지로 쑤셔 넣는 사람의 행동과 똑같이 소용없는 짓”(슈테판 츠바이크/ 안인희 옮김,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바오, 2009, 227∼228쪽)이라는 당연한 관용의 정신을 말하기 위하여 목숨을 걸어야 했다. 그래서 시민의 자유를 제약하려는 욕망에 사로잡힐 때마다 권력자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다음 경구를 되새겨야 한다. “권력자들이 자유 정신의 입을 틀어막고서 자신이 이겼다고 생각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새로운 인간이 태어나는 것과 더불어 새로운 양심이 태어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제나 누군가는 인류와 인간성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위한 싸움을 떠맡아야 한다는 정신적인 의무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언제든 모든 칼뱅에게 맞서 어떤 카스텔리오가 다시 나타나서 폭력의 모든 폭행에 맞서 사상의 독자성을 옹호하게 될 것이다.”(288쪽)

이처럼 자유는 그것을 억누르려는 권력에 맞서며 힘겹게 쟁취한 것인데, 그 자유를 침해하는 정치집단을 대중이 선택하는 비극이 일어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나치는 힘이 아니라 선거를 통하여 집권하였고 그 이후에는 법령의 이름으로 시민의 자유를 빼앗아 갔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 “자유는 근대인에게 독립과 합리성을 부여해 주었지만, 또한 근대인을 고립시킴으로써 마침내 그를 불안에 싸인 무력한 존재로 만들었다. 이와 같은 고립은 참을 수 없는 것이므로, 근대인은 자유라는 무거운 짐으로부터 도피하여 새로운 의존과 복종을 찾느냐 그렇지 않으면 인간의 독자성과 개성에 기인한 적극적인 자유의 실현을 위하여 전진해 가느냐 하는 양자택일의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에리히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 서문). 자유를 두고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일까?

최용성 변호사·법무법인 공유
차용석 공저 『형사소송법 제4판』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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