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연 미국 변호사의 논 세퀴터(11)-리걸 라이팅의 무게를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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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 변호사의 논 세퀴터(11)-리걸 라이팅의 무게를 생각하며
  • 박준연
  • 승인 2023.08.03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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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
박준연 미국변호사

“저는 강하게 주장하고 싶은 내용이 있어서 작년 여름 처음으로 순문학 작품을 썼습니다.” 올해 일본의 저명한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이치카와 사오 작가의 수상 소감을 접하고 나는 충격을 받았다. 글과 말을 다루는 것을 하루하루의 업으로 하면서도 그 무거움을 잊을 때가 많다. 이치카와 작가가 쓴 “주장하다”라는 동사는 일본어로는 소송을 제기한다는 의미로도 쓰여서 더욱더 인상적이었다. “강하게 주장하고 싶은 내용이 있어서” 이 부분이 마음에 들어 몇 번이나 소리 내어 말해 보았다.

리걸 라이팅, 그러니까 변호사의 글쓰기에 대해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이야기는 이것이다. 문학 작품의 경우 좋은 작품을 쓰고 그 사실을 널리 알려서 사람들이 실제로 읽어주지 않으면 아무도 움직일 수 없다. 한편, 리걸 라이팅은 법리를 근거로 하여 개인이나 조직의 변화를 일으킨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서 권력을 갖는다. 그래서 시인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한 변호사가 중견 시인이 쓴 좋은 시보다 초보 변호사가 작성한 소송 서면이 때에 따라서는 더 큰 힘을 갖는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런 이유로 업무로 글을 쓸 때는 신경질적일 정도로 단어 선택이 적확한지를 고민할 때가 많다. 혼자서 유의어 사전이나 용례를 찾아보며 고민할 때도 있고, 팀 내에서 토론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적확한 단어를 선택했는지, 최소한 거기에 가까워졌는지에 대한 기준을 하나 세워두고 있다. 어떤 단어, 어떤 표현을 선택한 이유를 나 자신이 구체적으로 설득력이 있게 설명할 수 있는가 하는 기준이다.

이는 예전의 경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회사를 옮기고 얼마 되지 않아 바뀐 업무에 적응하고자 동분서주할 때, 진행 중인 소송과 관련해서 문서 초안을 하나 작성했다. 그 초안을 팀 내의 선배 변호사가 검토해 주었다. 선배는 아주 많은 수정을 해주었는데, 대부분 수정 사항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을 달아 그런 수정을 하는 이유를 자세히 써 주었다. 그 일이 개인적으론 큰 도움이 되었고 또 인상적이어서, 나도 남의 초안을 검토하고 수정할 때는 그 선배처럼 하려고 노력한다. 100% 상대방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이유를 설명하다 보면 그 수정이 정말로 필요한지(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경우), 단지 내 취향이나 선호에 불과한지(설명이 어려운 경우) 어느 정도 판별할 수 있다.

그리고 시간이 있으면 좋은 문장을 많이 접하고자 의식적으로 노력한다. 업무과 관계성이 높은 문장, 구성 형식은 즉각적으로 활용할 수 있으므로 수첩에 메모해 둔다. 그뿐만 아니고 문학이나 실화 작품처럼 업무와 비교적 관계가 없는 분야의 문장도 많이 접해보려고 노력한다. 다른 글쓰기도 그렇지만 리걸 라이팅에도 이야기 전개(스토리 텔링)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단어 선택뿐만 아니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 문장의 호흡 등에 주목한다.

로스쿨에 입학하고 리걸 라이팅 수업에서 제일 처음 들은 이야기는 변호사들이 쓰는 문장은 간단하게 쓸 수 있는 내용을 장황하고 현학적으로 쓰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는 것이었다. 로스쿨 졸업 후 매일같이 업무로 글을 쓰면서 그 이유를 생각해 보니, 글을 간결하고 알기 쉽게 쓰지 못해서라기보다는 잘 쓰든 못 쓰든 변호사가 쓴 글은 어차피 읽힐 것이라는 오만함이 그 배경에 있어서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좋은 글을 쓰는 것은 좋은 변호사의 덕목 중 제일 중요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나는 오늘도 여전히, 어떻게 쓸지 고민을 계속한다.

박준연 미국변호사

■ 박준연 미국변호사는...

2002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2003년 제37회 외무고시에 수석 합격했다. 3년간 외무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미국 최상위권 로스쿨인 NYU 로스쿨 JD 과정에 입학하여 2009년 NYU 로스쿨을 졸업했다. 2010년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 ‘Kelley Drye & Warren LLP’ 뉴욕 사무소, ‘Latham & Watkins’ 도쿄 사무소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아태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큰 글로벌 로펌인 ‘허버트 스미스 프리힐스’ 도쿄 오피스에서 근무 중이다.
필자 이메일: Junyeon.Park@hsf.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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