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31-유언의 효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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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31-유언의 효력
  • 손호영
  • 승인 2023.08.03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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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누군가의 죽음은 그에게는 모든 것의 끝이지만 남은 사람에게는 또 다른 사건의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후계, 상속 등의 문제는 언제나 남기 때문입니다. 다만 남는 사람은 떠나가는 이의 뜻을 최대한 존중합니다. 그래서 ‘유언’이 중요해집니다. 그의 뜻을 알 수 있는 가장 정확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송나라 태조 조광윤의 임종이 임박했을 때입니다. 건국에 기여했던 동생 조광의가 침실에 들어갑니다. 주위 사람들을 물리치고 단둘이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신하들이 방문 밖에서 촛불 그림자로 보고 소리를 들으니, 누군가가 도끼를 바닥에 찍고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하라!” 이후 갑자기 동생 조광의가 나와 말했습니다. “형님이 말씀하시길, 장남이 아직 어리고 천하가 안정되지 않았으니 아우가 제위를 물려받으라고 하셨다. 내가 사양하니, 도끼로 나를 위협하셨고 어쩔 수 없이 제위에 오르겠다고 하자, 곧 형님이 숨을 거두셨다.” 그리고 그는 송나라 태종으로 등극합니다.

촛불 그림자와 도끼 소리(燭影斧聲)라는 고사로 남은 이 이야기는 이후 오랜 논쟁거리가 됩니다. 형제는 본디 가까웠지만 태조의 말년에는 서로 갈등 상황에 있었고, 태조의 장남은 어리기는커녕 오히려 한창 때였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후 태종이 자행했던 숙청을 보면, 과연 형의 진정한 뜻은 어떠했는지 사람들이 지금까지 의심할 만합니다. 태종이 황제의 자리에 오른 정당성은 형의 유언이었다는 것을 돌이켜보면, 유언의 무게를 새삼 되짚어볼 만합니다.

조선의 영조도 자신의 죽음 뒤에야 공개될 말을 남깁니다. 그는 아들 사도세자의 일이 있은 뒤, 공식적으로는 그의 죽음을 재론하지 말라고 했으나 후회한다는 내용을 글로 적어 봉인해두었다고 합니다. “피 묻은 적삼이여 피 묻은 적삼이여, 오동나무여 오동나무여, 그 누가 충신인고. 내 죽은 자식 그리워 잊지 않노라.” 이를 금등지사(金縢之詞)라고 하는데, 이후 영조의 손자이자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가 왕위에 오른 뒤 노론을 누르고 왕권을 세우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떠나가는 이는 세상에 없으되 그가 남긴 말은 이처럼 중요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유언은 정확하고 명확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남은 이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유언의 방법을 법으로 정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입니다. 민법 제1067조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녹음에 의한 유언은 유언자가 유언의 취지, 그 성명과 연월일을 구술하고 이에 참여한 증인이 유언의 정확함과 그 성명을 구술하여야 한다.” 이 조항이 문제된 사건이 있으니 한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2018. 8. 24. 사망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배우자(원고1), 자녀(원고2, 3과 피고)는 나누어서 다투게 됩니다. 자녀 중 한 사람(원고3)은 망인의 유언을 녹음했다고 합니다. 서울가정법원에 검인을 청구했고,

2019. 7. 16. 열린 2차 검인기일에서, “2018. 2. 27. 유언녹음을 했습니다. 원고1, 2가 입회하고 있었고, 원본은 소외인이 보관했습니다.” 법원은 소외인의 휴대전화에 저장된 녹음파일을 조사한 뒤, 유언검인조서를 작성했습니다. 하지만 피고가 이를 부정합니다. “녹음파일의 데이터 상세정보를 봐주십시오. 저장일자를 보면 2019. 5. 14. 오후 12:20에 마지막으로 수정된 것으로 나옵니다. 녹음파일은 편집, 그러니까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원고3의 대리인은 “휴대전화가 고장이 나서 복원하는 과정에서 수정일시가 달라졌을 뿐입니다.”라고 항변합니다.

내막을 살펴보니 이렇게 된 것이었습니다. 망인의 유언을 소외인이 휴대전화로 녹음합니다. 이후, 그 파일을 원고3에게 카카오톡으로 전송했고 소외인은 원본을 삭제했습니다. 원고3은 녹음파일을 이메일 주소로 전송해 보관하다가 다시 소외인에게 전달했고, 소외인이 이를 휴대전화에 저장했다가 그 파일을 검인대상으로 제출했던 것입니다.

대법원(대법원 2023. 6. 1. 선고 2023다217534 판결)은 검인대상으로 제출된 파일이 원본과 동일하다고 인정하고, 망인의 유언을 민법 제1067조의 요건을 갖춘 적법한 것으로 봅니다. 대법원이 설시한 부분을 적어봅니다.

“유언증서가 성립한 후에 멸실되거나 분실되었다는 사유만으로 유언이 실효되는 것은 아니고 이해관계인은 유언증서의 내용을 증명하여 유언의 유효를 주장할 수 있다. 이는 녹음에 의한 유언이 성립한 후에 녹음테이프나 녹음파일 등이 멸실 또는 분실된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그러한 경우라면 해당 서증의 신청당사자가 원본을 제출하지 못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 구체적 사유를 주장·증명하여야 한다.”

유언과 상속은 계속해서 문제되는 이슈입니다. 새로운 판례가 나와 다시 한번 짚어보았습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sohnhoyo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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