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희 판사와 함께 나누는 ‘회복적 사법’ 이야기 시즌2 (5)-대화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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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희 판사와 함께 나누는 ‘회복적 사법’ 이야기 시즌2 (5)-대화의 힘
  • 임수희
  • 승인 2023.08.02 11:4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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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희 부장판사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임수희 부장판사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부끄러운 고백을 하자면, 판사가 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판사가 제시하는 ‘정답’대로 원고와 피고가 합의하는 것이 최선인 줄 알았습니다. 판사는 중립적인 입장에서 양쪽 주장과 증거를 대조하여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하니 그 결론에 따라 아예 쌍방의 소송상의 비용이나 소송외적 손해 등까지 고려해서 적절히 합의하면 판결보다도 훨씬 낫지 않겠나 하는 것이지요.

개별 사건에서 실제로 이러한 관점에서 열심히 기록을 검토하여 합리적인 조정안을 도출하고 이를 당사자들에게 열심히 설명하면서 설득하다 보면 꽤 많은 당사자들이 수긍을 하며 합의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분명히 이것이 최선인데, 이보다 나은 합리적인 조정안은 없는데, 도저히 이해할 수 없거나 비합리적인 이유로 당사자들이 그 안에 동의하지 않으면서 “끝까지 가겠다”고 하는 경우들 또한 많았습니다. 그 안이 최선이라는 것, “그거는 판사 니 생각이고! 나는 내 하고 싶은 말을 끝까지 하겠다! 대법원까지 가겠다!” 이런 그분들의 생각에 대해서 저는, 답이 뻔한데 왜? 손해를 보면서까지 왜? 라고 이해하지 못했었지요.

그야말로 ‘판사 니 생각’일 뿐이었다는 것, 지금은 이 점을 분명히 알게 되었는데요. 분쟁당사자 간에 실질적인 대화는 없고 제3자가 ‘답’을 정해서 제시하는 것, 물론 그런 방법도 분쟁의 해결 내지 종결 방법이 될 수는 있습니다만, 좋은 분쟁해결방법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저는 판사 생활을 하면서 훌륭한 조정위원들을 만났고, 그분들이 원고와 피고, 그 밖의 분쟁당사자들 사이에서 서로 진정성 있는 대화가 가능하도록 돕는 조정가(mediator)의 역할을 잘 수행해 낸 결과, 결국에는 당사자들이 자율적으로 갈등의 근본적 해결을 꾀할 수 있는 좋은 분쟁해결안을 도출해 내는 것을 보는 경험을 반복하면서, 저의 초기의 잘못된 생각이 교정되어 갔던 것이지요.

답을 정하지 않고 서로 열린 태도로 상대의 말을 들어주면서 자신의 말도 진솔하게 하는 진정성 있는 대화가 오가다 보면, 단지 어떤 좋은 ‘합의안’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더라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대화 과정에서 점점 분쟁 당사자인 각각의 사람이 변화하고 그 관계가 변화하고, 그로 인해 갈등과 분쟁이라는 것 자체가 변화하면서 그 결실로 모두가 바라는 분쟁 없는 미래의 어떠한 모습이 바로 ‘합의안’으로 구체화되더라는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양자물리학자인 데이비드 봄은 대화(dialogue)에 관한 책을 썼는데요. 그의 책 <창조적 대화론> 서문에서 피터 센게가 말한 바와 같이, 물리학자에게 친숙한 ‘비간섭성’ 개념과도 연관이 있어 보입니다. 데이비드 봄은 <창조적 대화론>에서, 대화는 참가자들이 함께 새로운 무엇인가를 창조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무조건 새로운 뭔가를 창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조건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 조건은 바로, 참가자들이 편견이나 상대에게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가 없이 상대의 말에 자발적으로 귀를 기울여야 하고, 쌍방의 주된 관심이 진실되고 일관적이어야 하며 필요하다면 자신의 기존 생각과 의도를 버리고 다른 것을 택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데이비드 봄이 말하는 창조적 대화에 종종 실패하는 사람들이 저와 같은 판사, 변호사 등 법률가들인 것 같습니다. 법률가들이 잘하는 대화란, 자신의 의견이 옳다는 주장과 그 주장을 논증하는 것, 그리고 어떤 답이나 선을 정해 놓고 전략적 커뮤니케이션을 하거나 협상을 하는 것, 이를 통해 ‘일방의(주로 의뢰인의 또는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에 유용한 대화입니다. 상대를 이기고자 한다면 위와 같은 대화를 잘하는 법률가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위와 같은 대화에서는 아무리 유능한 법률가와 또 다른 유능한 법률가가 맞붙더라도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진다는 사실이지요. 한쪽이 이겨야 한다면 다른 한쪽은 질 수밖에 없는, 둘 다 이기는 일은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룰의 게임이니까요. 둘 중 하나는 지거나 아니면 결국 계속 싸우는 비용과 대가를 양쪽 다 치르다가 둘 다 조금씩 질 수도 있게 됩니다. 이기려는 대화에 예정되어 있는 비극이지요. 소송이라는 것의 결과가 늘 그러합니다.

그러니 이기고 지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는 영역의 갈등과 분쟁에서는 그러한 비극을 피해야 할 것입니다. 학교 안의 학생과 학부모와 선생님 사이에서, 한 동네 이웃인 옆집과 아랫집, 윗집 사이에서, 한 직장 내의 함께 일해야 하는 동료 사이에서, 무엇보다도 가정 내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 그리고 그 밖에 우리가 속해 있고 함께 생존하고 생활하는 공동체, 소중하게 지켜야 할 그 공간 안에서 말이지요.

우리가 함께 잘 살아야 만이 그 안에서 각각의 사람도 잘살 수 있는 우리의 소중한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가능한 한 서로를 향해 열린 태도로 자신의 기존의 생각과 의도를 버릴 ‘용기’와 ‘내적인 힘’을 가지고 진정한 대화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기고 지는 게임으로 가기보다 서로 마음을 열고 진짜 대화를 할 때, 그러한 대화는 반드시 그 공동체에 평화롭게 모두의 바람과 이익에 부합하는 새로운 미래상을 형성해 내고 구체화한 창조적 해결안을 낳아 줄 것입니다.

임수희 부장판사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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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영 2023-10-09 21:13:35
여러모로 많은 도움이 되는 글입니다. 이 글을 읽고 대화의 힘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훌륭한 글 써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앞으로 항상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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