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30-비판적 사고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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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30-비판적 사고의 정체
  • 손호영
  • 승인 2023.07.27 17:0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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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장애인단체가 지하철 탑승 시위를 재개하면서 출근길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혼잡시간대에 굳이 타인을 방해해야 하냐는 불만이 나오지만, 그렇게 해야만 주목받는 장애인 인권의 현실을 이해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막아야 관심받아” “불편한 건 사실”…장애인 이동권 시위 놓고 갑론을박>

장애인은 무심하게 순조로이 다니는 지하철이 야속합니다. 이동을 마음먹으면 한참 시간이 걸리는 현실이 서운합니다. 개선을 이야기하고 외치다 이내 시위를 결심합니다. 출근길 지하철 출입문 사이에 휠체어 바퀴를 넣어 출발을 저지하는 방식입니다. 운행이 지연된 만큼, 어느 직장인은 지각으로 상사로부터 꾸지람을 듣고, 어느 학생은 시험시간을 맞추지 못합니다. ‘오죽하면’과 ‘하필이면’ 사이에서 감정과 합리가 서로 엉키는 이때, 우리는 어떠한 주장을 ‘지금’, ‘여기에서’ 타당하다고 답할 수 있을까요?

묵직한 사회 담론에서부터 지극히 사사로운 문제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답을 요구하는 물음, 즉 문제에 맞닥뜨립니다. 어떤 생각을 하는 것이 바람직할지, 어떤 판단을 내리는 것이 유용할지, 그래서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이 적합할지 - 그저 되는대로, 느낌대로가 아니라 이성적으로 현명하게 접근해서 보다 나은 선택과 행동을 하고 싶습니다.

문제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어렵습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합니다.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정보와 이야기 속에서 흔들리기 십상입니다. 잠시 숨을 고르고 차례로 짚어보기로 합니다. “어떤 행동을 해야 할까?” 이를 위해서 “어떤 판단을 해야 할까?” 그러니까 “어떻게 생각하면 되는 것이지?”

생각이 모든 의사결정의 출발점입니다. 스스로 어떤 행동을 할지,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주장할지는 모두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에 달려있습니다. 철학자 데카르트(René Descartes)가 존재의 바탕으로 ‘생각’을 지목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Je pense, donc je suis).

우리 머릿속 ‘생각 도구함’에 무엇이 있는지 살펴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합리적인 이유와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를 가지고 능동적으로 현상을 해석하고 이를 토대로 문제의 해결책을 구성해 내는 능력’입니다. 이런 능력을 지칭하는 말을 배웠던 듯, 들었던 듯 합니다. 그렇습니다. ‘결정을 내리거나 해결책을 찾기 위해 쟁점을 분석하고 효과적으로 분절하는 능력’, 곧 ‘비판적 사고’입니다.

문제에 마주해 우리가 꺼내 들 수 있는 도구는 ‘비판적 사고’일 것입니다. 하지만 비판적 사고가 과연 무엇인지는 다들 의견이 분분하고 콕 집어 묘사하기는 까다롭습니다. 비판적 사고의 얼개를 말의 유래로 우선 파악해 봅니다. ‘비판적’을 의미하는 영어 CRITICAL은 그리스어 KRINEIN에서 비롯하여, ‘자르다, 나누다’란 뜻입니다. 한자 비(批)의 比는 두 사람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으로 ‘비교하다’는 뜻이 있고, 판(判)의 八은 무언가를 반으로 가르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나누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합치면, ‘나누어 비교하다’ 쯤 되니 영어의 어원적 의미와 얼추 상통합니다. 요컨대, 비판적 사고란 ‘상황을 여하간 통째로 받아들이지 않고, 나누어 이리저리 재며 세심히 파악하려는 생각 태도’ 쯤 되겠습니다.

비판적 사고를 분절하여 세세히 들여다볼수록, 빈틈없음과 정교함을 발견할수록, 우리는 자연스럽게 ‘논증’이 비판적 사고의 핵심임을 알 수 있게 됩니다. 단계적으로 표현된 비판적 사고 과정은 홀로 사유할 때나 타인과 의사소통을 할 때 이치에 맞게 이끌어간다는 의미의 ‘논리적 사고’를 고쳐 달리 부르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결국 ‘비판적 사고를 한다.’는 것은 ‘논리적 사고를 한다.’, 곧 ‘논증한다.’로 새길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비판적 사고란 ‘논증을 구성할 수 있는 사고능력’이라고 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우리가 만들어내고 일구는 생각의 질과 이를 토대로 한 의사결정에 따라 그 수준이 좌우될 수 있습니다. 자칫 왜곡될 여지가 있고, 오류가 있을 수 있는 우리의 생각과 판단을 점검할 수 있는 비판적 사고, 곧 논증에 친해질수록, 우리는 비합리와 억지를 극복하며 삶의 층위를 한 단계 높일 수 있습니다.

논증에 다가서는 노력은 의식적으로 해야 합니다. 우리는 대체로 별다른 고민 없이 우리의 입장을 정하기 마련이고, 그 결론에 큰 의심을 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비판적 사고와 논증에 친해지기 위해 외부 환경의 도움을 받을 수 있기는 합니다만(‘생선 비린내’를 맡으면 상대방의 질문에서 오류를 찾아낼 확률이 그렇지 않을 때보다 훨씬 높아진다는 말이 있으니까요!), 결국 스스로 기민하게 가다듬는 수밖에 없습니다. 돌아가는 길이면서 확실한 길입니다. 그러고보니 우리 법률가가 가장 익숙한 일인 것 같기도 합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sohnhoyo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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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23-07-28 03:03:05
비판적으로 사고하기 위해서 어떤 훈련을 해야 하는지 일반인 눈높이에 맞춰서 몇 가지 예시를 들어주셨으면 더 좋았을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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