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출제자들의 각성을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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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출제자들의 각성을 바라며
  • 안혜성 기자
  • 승인 2023.07.21 10: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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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저널=안혜성 기자] 수험생들 중에 간혹 도대체 왜 저 사람이 합격을 못 하는 거지 싶은 의문이 드는 사람이 있다. 공부를 하다 막히는 부분이 있어 물어보면 무엇을 물어보든 술술 대답해줄 정도로 아는 게 정말 많고 1차시험은 항상 고득점으로 합격을 하는데 좀처럼 2차시험의 벽을 넘지 못한다.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단순히 운이 따라주지 않아서 일 수도 있고 아는 것을 글로 풀어 쓰는 역량이 부족할 수도 있다. 공부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경우도 있다. 수험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학문을 닦는 공부를 하는 경우가 바로 그렇다.

여러 고시나 자격시험은 해당 분야에서 요구하는 역량을 검증하기 위한 시험이다. 때문에 그에 맞는 출제 범위를 규정하고 있으며 각 시험마다 특징적인 출제 경향이 있다. 수험은 학문을 쌓는 공부와 달리 시험 과목의 모든 내용을 최대한 깊이 있게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꼭 알아야 하는 부분을 적절한 수준으로 이해하는 공부를 해야 한다.

흔히 전략적 공부라고도 하는데 이는 작년에 나온 부분은 올해는 나오지 않을 것 같으니까 넘긴다는 식의 요령과는 또 다르다. 오히려 작년에 이미 기출된 주제라고 해도 중요한 부분이라면 꼼꼼히 보고 대비하는 쪽이 더 전략적인 공부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시험 문제를 출제하는 이들도 시험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종종 간과하는 것 같다. 시험의 난도를 높이기 위해 출제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간편한 방식은 수험생들이 공부하지 않은 곳에서 문제를 내는 것이다. 이 같은 지엽적인 출제, 예상을 벗어나는 출제를 소위 ‘불의타’라고 한다.

불의타는 실력이 아닌 운에 의한 합격을 만든다는 점에서 매우 불합리하다. 그런데 불의타가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절대평가 기준으로 합격자를 결정하는 자격시험이다. 출제자들의 실제 의도를 확인할 수는 없겠지만 수험생들은 지나치게 많은 합격자가 배출되지 않도록 시험의 난도를 높이는 경우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난도를 높이는 방식이 기본적이고 중요한 주제를 응용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라 수험생들이 보지 못한 내용을 출제하는 쪽으로 나타난다는 것이 문제다.

때로는 출제자가 수험이 아닌 학문으로서 시험을 대하는 경우도 있다. 학자로서 관심이 있거나 자신이 연구하는 주제를 수험 적합성을 고려하지 않고 출제하는 식이다. 이런 주제들은 훗날 시험에 합격한 후 실무를 하면서 보다 깊이 있는 공부가 필요하다고 느꼈을 때 스스로 찾아 공부하는 것이라면 몰라도 수험생의 입장에서는 수년의 노력을 허사로 만드는 출제자의 지식 자랑에 불과하다.

또 실무 역량을 강화한다는 이유로 실무를 접해보지 않고서는 풀기 어려운 문제를 출제하는 경우도 있다. 아예 변리사 2차시험에서는 변리사업계와 수험생들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실무형 문제를 도입하기도 했지만 비판적 평가를 받고 1년 만에 철회한 사례도 있다. 물론 실무와의 연계성을 강화한다는 취지는 좋지만 그 방식은 실무에서 꼭 필요한 기본적인 주제를 실무를 경험하지 못한 수험생들이 다루기에 적절한 형태로 출제하는 수준이면 족하다.

안타깝게도 이런 시험의 목적에 걸맞지 않은 출제 사례는 여러 시험에서 꽤나 자주 나타나고 있다. 최근에는 공인회계사 2차시험이 도마 위에 올랐다. 시험 범위를 벗어나는 문제, 연구자 수준의 지식을 요하는 문제, 지나치게 실무에 치중한 문제, 현직자나 강사들 사이에서도 답이 엇갈리는 문제, 지나치게 지엽적인 출제 등이 지적되며 난이도 조절 실패, 부적절한 출제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수험생들은 합격을 위해, 꿈을 이루기 위해 몇 년씩이나 소중한 청춘을 바쳐 공부한다. 그리고 그들은 미래에 사회 곳곳에서 전문가로 활약하게 될 소중한 인재들이다. 그만큼 출제자들도 각성하고 보다 큰 책임감으로 시험을 대해야 한다. 그 책임감의 표현이자 적절한 평가, 공정한 시험, 수험생들이 납득할 수 있는 투명한 결과를 만드는 방법의 일환으로 채점 기준과 채점평의 공개도 적극적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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