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범 변호사의 ‘시사와 법’ (132)-강제징용배상금 공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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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변호사의 ‘시사와 법’ (132)-강제징용배상금 공탁
  • 신종범
  • 승인 2023.07.21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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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변호사
신종범 변호사

지난 2018년 대법원은 일제강점기 전범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는 우리 대법원의 판결을 인정하지 않았고, 미쓰비시 또한 배상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피해자들은 미쓰비시의 국내 특허권에 대한 강제집행을 신청했고 법원은 특허권에 대한 매각명령을 내렸지만, 미쓰비시가 이에 불복해 대법원에 재항고를 신청해 아직까지 그 결정이 나오지 않고 있다.

지난해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초기부터 한, 일 관계의 복원을 강력하게 피력했고,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희망했다. 강제징용배상 문제도 정부 차원에서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지난 2월 외교부는 ‘강제징용 해법 논의 공개토론회’에서 해법을 소개했다. 그 요지는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하 ‘지원재단’)이 기금을 모아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하는 이른바 ‘제3자 변제’를 하겠다는 것이다. 당연히 왜 일본 전범기업의 배상금채무를 우리 기업의 부담으로 변제해 주어야 하느냐는 반대 여론이 일었다. 나아가, 피해자들(채권자)의 동의없이 ‘제3자 변제’를 할 수 있느냐 등의 법리적 문제도 제기되었다.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지원재단을 통하여 일본 전범기업을 대신하여 피해자들에 대한 ‘제3자 변제’ 절차에 나섰다. 2018년 대법원 판결에서 승소한 피해자 중 일부는 지원재단의 변제에 응했으나, 나머지 징용 피해자와 유족은 이를 거부하였다. 외교부와 지원재단은 변제를 거부한 피해자, 유족의 거주지를 바탕으로 광주, 전주, 수원지방법원 등에 공탁 신청 서류를 제출했다. 하지만, 법원은 대부분의 신청에 대해 불수리 결정하고, 일부는 신청을 반려했다. 아직까지 공탁이 확정된 사례는 알려지지 않았다. 각 법원은 정부의 공탁 신청을 수리하지 않으면서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제3자인 지원재단이 일본 기업을 대신해 배상금을 지급하거나 공탁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민법 제469조에 근거한 판단이다.

민법 제469조 제1항은 채무의 변제는 제3자도 할 수 있지만, 채무의 성질 또는 당사자의 의사표시로 제3자의 변제를 허용하지 아니하는 때에는 제3자는 변제를 할 수 없음을 규정하고 있고, 제2항은 이해관계없는 제3자는 채무자의 의사에 반하여 변제하지 못함을 규정하고 있다. 지원재단이 미쓰비시 등 일본 전범기업을 대신하여 변제하는 방안은 이러한 ‘제3자 변제’에 해당한다. 채무자인 일본 전범기업이 변제에 반대하지 않더라도 채권자인 강제징용 피해자가 반대할 경우 민법에 따라 제3자인 지원재단은 채무자인 일본 전범기업을 대신하여 변제할 수 없고, 나아가 강제징용피해배상 판결금은 단순한 금전채무가 아니라 일제강점기에 이루어진 중대한 인권침해에 대한 배상 판결금으로 가해자인 일본 전범기업을 통해 직접 배상이 이루어져할 성질의 채무로서 채무의 성질상으로도 ‘제3자 변제’가 허용될 수 없다는 견해가 유력하다. 법원도 이러한 판단에 따라 지원재단의 공탁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외교부는 공탁관의 불수리 결정에 대해 반발하며 이의신청에 나섰다. 이제 공탁의 적법, 유효 여부는 법관의 판단을 받게 되었다. 대법원의 판단까지 받게 되면 또 다시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는 실질적 심사권이 없는 공탁관이 직권으로 공탁을 불수리한 것은 권한을 넘는 행위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법원은 “공탁공무원은 공탁금회수청구가 소정의 요건을 갖추지 못하였다고 볼만한 상당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만연히 그 청구를 인가하여서는 안 된다”고 판결한 바 있고, 공탁실무편람은 공탁관의 업무를 ‘공탁신청이나 지급청구가 절차적, 실체적 법률 요건을 모두 구비하고 있는지 심사하는 것’으로 명시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 주장 또한 타당하지 않아 보인다.

언론 보도를 보니, 모 정부 관계자가 “공탁은 채무자(지원재단)가 변제 의사를 밝혔음에도 채권자(징용 피해자와 유족)가 변제금을 받지 않는 상황에 채무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라며 “제3자 변제를 진행해 온 지원재단은 공탁할 권한이 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대법원 판결에서 확정된 강제징용피해 배상금 채무의 채무자는 일본 전범기업이지 대한민국 정부나 지원재단이 아니다. 왜 우리 정부가 나서서 우리 법원의 판단을 비판하고, 일본 전범기업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는 지경에 이르렀는지 참으로 참담하다.

신종범 변호사
sjb629@hanmail.net
http://blog.naver.com/sjb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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