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29-업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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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29-업의 본질
  • 손호영
  • 승인 2023.07.21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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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2016년 미국 주간지 타임은 올버즈의 첫 출시작이자 대표작인 양모(울) 소재 운동화 ‘울러너’를 두고 “세계에서 가장 편한 신발”이라고 했다...울러너는 ‘소재 혁신’의 이미지를 입으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실리콘밸리 유니폼’이라는 수식어까지 따라붙었다. 출시 2년 만에 누적 100만 켤레를 판매하는 기록을 세울 수 있었던 이유다...‘친환경’을 전면에 내세웠다. 폐페트병을 활용해 만든 운동화 끈, 사탕수수 폐기물로 만든 밑창 등을 탑재하며 단순 신발 회사가 아닌 ‘첨단 소재 기업’으로 변모한 것이다. 올버즈 신발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유명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 등의 사진에 자주 나타나기 시작했다.」

성공가도를 달리던 신발 회사 올버즈는 ‘신발계의 애플’이라고까지 불렸습니다. 하지만 이제 올버즈는 ‘몰락’하고 있다는 말까지 나옵니다. 「한때 17억달러(약 2조 1500억원·2020년 1월)까지 치솟았던 기업 가치도 지금은 2억달러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추락」했다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대체로 하나를 주요 원인으로 꼽습니다. ‘내구성’입니다.

제법 비싼 값을 지불해서 신발을 사는 소비자들은 신발이 오래가기 바랍니다. 특히 화려함을 제쳐두고 소박한 친환경 제품을 샀다면 더욱 그것을 바랍니다. 그렇지만 올버즈의 제품은 친환경을 추구하다보니 내구성이 떨어지게 되었고, 이것이 소비자들을 더 이상 끌어들이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한번 돌아보고 물어봐야 될 것 같기도 합니다. “신발의 본질은 무엇이지?” “과연 올버즈는 신발의 본질에 적합했는가?” “어쩌면 올버즈는 신발의 본질을 외면하고 부수적 기능에 집중해서 경쟁력을 잃은 것은 아닐까?”

종래 ‘타다’의 사업이 시작되었을 때 사람들이 물은 것도 ‘본질’입니다. 「이른바 렌탈 택시로 불리는 ‘타다’의 영업 방식은 초단기 렌탈의 확장 개념이다...A에서 B까지 소비자를 이동시켜주고 비용을 받는다는 점에서 유료운송 사업이다. 기사를 포함한 11인승 카니발로 태워주면 승차 공유이고, 일반 중형 택시가 이동하면 혁신적 모빌리티가 아니라는 생각은 그저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일 뿐이다.」 위 문장은 「‘택시’와 ‘타다’는 본질이 같다」는 2019년 한국경제 기사의 일부입니다. 사람들은 서로 생각이 달랐습니다. ‘택시의 본질’, ‘타다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이지만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방증이 아닐까 합니다.

판례에서는 ‘본질’이라는 개념이 종종 등장합니다. 대법원은 스스로의 기능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소액사건에 있어서 구체적 사건에 적용할 법령의 해석에 관한 대법원 판례가 아직 없는 상황에서 같은 법령의 해석이 쟁점으로 되어 있는 다수의 소액사건들이 하급심에 계속되어 있을 뿐 아니라 재판부에 따라 엇갈리는 판단을 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는 경우, 소액사건이라는 이유로 대법원이 그 법령의 해석에 관하여 판단을 하지 않은 채 사건을 종결하고 만다면 국민생활의 법적 안정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 이와 같은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소액사건에 관하여 상고이유로 할 수 있는 ‘대법원의 판례에 상반되는 판단을 한 때’의 요건을 갖추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법령해석의 통일이라는 대법원의 본질적 기능을 수행하는 차원에서 실체법 해석적용에 있어서의 잘못에 관하여 판단할 수 있다.” 이 판례에서 보면 대법원은 스스로 ‘법령해석의 통일’이라는 것을 업의 본질로 삼고 있는 듯 보입니다(대법원 2022. 7. 28. 선고 2021다293831 판결). 이에 따라 소액사건이더라도 대법원의 본질적 기능을 달성하기 위해 판단 범위를 넓혔습니다. 업의 본질은 이처럼 어떠한 행동의 근원이자 이유이고, 정당성의 근거가 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업의 본질’은 고정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는지에 따라 다르게 규정될 수 있습니다. 어쩌면 본질은 변하는 것이랄까요. 예컨대, 서점의 변화도 그렇습니다. 「책만 사고파는 서점은 이제 구시대 유물이 됐다. 거의 모든 대형 서점이 먹고 마시고 쇼핑하다가 쉬어가는 공간으로 변모했다...최근 광고회사 이노션이 온라인 플랫폼에서 생성된 서점 관련 검색어를 분석한 결과 서점을 문화공간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글의 통찰처럼, 서점의 본질은 ‘단지 책을 사고 파는 곳’에서 ‘문화공간’으로 변화했다고 볼 수도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제 법률가가 행하는 업의 본질은 어떤 것인지 한번 돌아봅니다. 법률가란 무엇을 하는 사람들이고 무엇을 행할 때 비로소 법률가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요? 입법, 행정, 사법의 틀에서 법률가를 이해하는 것이 마땅한지, 송무 시스템에서 법률가의 역할을 바라보는 것이 맞는 것인지, 지위와 기능에서 법률가의 역할을 도출하는 것이 타당한지, 여러 고민과 생각이 듭니다. 다만, 업의 본질을 잘 규정할 수 있고, 그것에 잘 집중할 때 좋은 법률가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sohnhoyo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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