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주여성 대상 성폭력, 그 수단은 폭행·협박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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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주여성 대상 성폭력, 그 수단은 폭행·협박이 아니다
  • 백소윤
  • 승인 2023.07.14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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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소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백소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이주여성 대상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를 무력하게 만드는 것은 폭행·협박이 아니다. 제한된 취업 영역과 사업장 선택권, 혼인·출산·육아 등 성역할 수행을 조건으로만 부여되는 불안정한 체류자격 부여 제도 안에서, 언제든 ‘미등록’이라는 불법적 지위로 몰릴 수 있는 현실이 이주여성의 성적 침해를 용이하게 만드는 가해자들의 범행 수단이다. 열악한 상황은 이주민에 대한 차별적 관점과 혐오에서 비롯되고 다시 악화된다. 이주여성 대상 성폭력 사건을 다룰 때는 반드시 이들이 처한 구체적 상황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주여성 대상 성폭력 사건 판례를 살펴보면, 발생 사건들은 장소적·관계적 특수성을 가진다. 그 특수성은 이주여성이 한국 사회에서 차지하는 지위를 보여준다.

노동현장에서의 불리한 지위

노동현장에서 발생하는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는 사업주인 경우가 많으며, 성폭력은 사업장 또는 농장, 기숙사 등 노동공간과 근접한 장소에서 발생한다. 가해자는 피해자의 언어능력, 노동조건과 체류자격, 경제 상황과 사회적 관계에 대한 정보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는 상태에 있었다. 강간범죄에 이르기까지 가해자는 평소 사업장에서 성적 언동, 신체접촉이 일반적인 ‘한국문화’인 것처럼 꾸미는 ‘리허설’을 거친다.

경기 지역의 한 공장에서 사업주에 의해 지속적으로 성희롱, 강제추행 피해를 입은 이주여성노동자는 재입국특례제도를 통한 재취업 기회 제공을 약속한 가해자(사업주)를 신고하지 못했다. 뒤늦게 사건이 공론화되어 열린 공판에서 가해자가 제출한 탄원서는 같은 공장의 다른 외국인 노동자들이 “재입국특례제도-사용자는 취업활동기간이 만료된 외국인 근로자에 대해 재입국 후 재고용신청을 할 수 있다. 재고용 신청을 통해 재입국한 자는 해당 사용주의 사업장에서 최소 1년 이상 일해야 한다(외국인고용법 제18조의 4)-의 혜택을 받아야 할 남은 외국인노동자들의 상황을 봐서라도 피고인을 석방해달라”는 내용으로 작성한 것이었다. 그 중엔 사업주로부터 피해를 입은 피해를 추가 진술해 달라는 요청을 거절한 다른 피해자도 있었다. 피해자가 피해자를 조력할 수조차 없는, 지금의 현실이다.

사업장 선택권이 사실상 보장되지 않고, 재입국·재취업의 부담은 온전히 노동자에게 지우는 현 제도에서 사업주의 권한은 막강하다. 성폭력을 인정하는 데에 폭행·협박이나 업무상 위력의 증명이나 이에 대한 엄격한 인정은 부당할 뿐 아니라 불필요한 처사다. 이주여성이 처한 상황과 맥락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주여성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성적 침해 자체를 성폭력으로 인정함이 타당하다.

결혼이주여성의 고립된 환경

결혼이주여성이 처한 환경에서 발생하는 성폭력 사건은 관계적 특수성이 두드러진다. 결혼이주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 중에는 친족관계(한국인 배우자의 가족)에 있는 자들에 의한 경우들이 다수 파악됐고, 결혼이주여성을 통해 입국한 친족(결혼이주여성의 어머니, 자매 등)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사건도 적지 않게 목격할 수 있었다. 한국인 배우자와의 혼인관계를 유일한 유대관계로 갖는 이주여성을 상대로 한 범죄에는 이주여성에게 규범적 성역할만을 강요하는 가족구성원의 태도, 지역사회의 출신국과 인종에 따른 차별적 관점, 피해자다움으로 점철된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편견까지 더해진다. 피해가 피해로, 피해자가 피해자로 인정되기까지 여러 고정관념을 극복해야 하는 것이다.

사돈댁으로부터 피해를 당하고도 말이 통하지 않는 상황 속에 도움을 요청할 곳이 없어 다시 자리에 돌아와 ‘웃을 수밖에 없었던’ 피해자(친정엄마)의 사정이나 결혼이주여성의 행복을 위해 신고 뒤 피해진술을 번복한 피해자(사촌동생)의 사정이 피해사실 진술의 신빙성을 떨어뜨리는 정황증거로 선택되거나 피해자의 ‘동의’가 추정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기 위해, 성폭력 사건을 심리할 때에는 피해자가 처한 구체적 입장에서 판단해야 한다는 성인지 감수성 판결의 취지를 다시 확인하고 가해자 중심적 사고를 극복해야 한다. 나아가 최협의설에 근거한 폭행·협박 요건이 아닌 피해자의 의사에 반한 성적 침해를 성폭력으로 인정함이 필요하다.

존재의 불법화로 인한 취약함

마사지업소나 노래방, 유흥업소와 같은 공간에서 일하는 이주여성 대상 성폭력범죄는 성판매자를 처벌하는 제도를 악용하기도 한다. 마사지업 종사자에게 성매매를 제안한 뒤 거절당하자 피해자를 강간하고 불법 성매매(합의에 의한 성관계)라며 무죄 주장을 한 사례, 성매매 종사자를 대상으로 출입국관리소 공무원을 사칭해 강제출국대상자라 협박하여 피해자를 강간한 사례, 예술흥행비자로 입국한 피해자들을 유흥업소에 종사하게 한 업주가 피해자들을 수시로 추행하고 성매매를 강요한 사례를 보면, ‘이주여성을 얼마든지 불법적 존재로 만들 수 있는 구조’가 성폭력 범죄의 수단으로 이용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합의나 합법의 외연을 가진다는 명분으로, 분명한 유형력 행사가 없다는 이유로 성폭력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은 그 범죄의 심각성을 가볍게 여긴 태도가 반영된 결과다. 미등록 외국인 및 성매매 여성에 대한 선입견과 구조적 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는 것이다.

피해자가 어떤 직업을 가졌든, 사건 발생 장소가 어디이든 어떤 업장이든, 대가를 약속하거나 지불되었든,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가해자가 이주여성의 취약한 지위, 그가 속한 장소, 직업군의 불법성이라는 취약성까지 악용하여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성폭력 범죄를 저질렀다는 점이다.

이주배경 피해자에 대한 사법조력제도 필요

현재의 사법절차에서는 피해자 조력이 충분치 않아 일부 언어는 통번역지원이 원활하지 않고, 법적 정보 전달이 턱없이 부족하다. 이 때문에 이주여성 피해자가 폭행·협박이나 업무상 위력 요건에 대해 선주민 피해자만큼 상세한 진술로 피해를 입증하는 것도 쉽지 않다. 유불리한 진술의 구별없이 조서가 작성되기도 하고 자칫 진술의 일관성이 부족하거나 모순된다는 이유에서 무고죄나 명예훼손죄의 혐의를 의심받는 위험에 처한다. 피해를 인정받기 위한 절차에서 필요한 조력을 받을 수 없다는 것, 피해를 인정받거나 피해를 구제받을 방법이 없다는 현실을 알아버린 피해자는 사건을 공론화할 수 없다.

이는 다시 피해자를 무방비 상태인 채 피해를 경험한 현실로 돌려보내는 것이나 다름없다. 강간죄의 법적 요건은 엄격하게 따지고 고도의 증명을 요구하면서 정작 피해자 조력에는 무성의한 수사과정에서, ‘의도치 않았지만 격하게’ 가해자를 조력하고 있는 자는 누구인가. 강간죄 구성요건 개정과 함께 이주여성 피해자의 사법절차권을 보장하는 제도 보완의 필요성도 강조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 본 글은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주최 2021년 <폭력피해 이주여성 판례분석 결과보고회> 자료집에서 발표된 “판결을 통해 본 이주여성 대상 ‘폭력’사건 특징과 문제점 – 성·가정폭력 체류 중심으로” 중 ‘이주여성 성폭력을 중심으로’ 발표문을 요약한 글로, ‘강간죄’ 개정을 위한 연대회의 아카이브에 게재되었습니다. 

백소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공감 뉴스레터 2023년 6월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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