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28-숫자에의 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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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28-숫자에의 호도
  • 손호영
  • 승인 2023.07.14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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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윌리엄 톰슨(William Thomson)은, ‘숫자’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그의 이 말은 종종 ‘측정할 수 없다면, 그것은 과학이 아니다.’라는 식으로 인용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말하는 것을 측정할 수 있고 숫자로 표현할 수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무언가 안다고 한다. 숫자로 표현할 수 없을 때, 우리의 지식은 빈약하고 불충분한 종류의 것이다.”

숫자를 획득하기 위한 측정에는 오차가 불가피하고, 그 오차가 어떤 확률 분포의 모습을 띤다는 발견은, 통계학과 확률론의 발전을 이끌었습니다. 통계학자인 C.R. 라오(C. R. Rao)는 “모든 지식은 결국 역사이고, 모든 과학은 추상적으로 수학이며, 모든 판단은 통계를 근거로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의 말에 기대어 보면, 통계와 확률은 논증에 있어 강력한 재료로 선호될 수밖에 없습니다. 당연하게도 법률가도 통계와 확률을 잘 사용합니다.

사고를 당한 사람은 그가 건강할 때 대비해서 줄어드는 수입을 가해자로부터 손해로 배상받을 수 있습니다. 그의 실제 소득이 명확하지 않을 때는 보통 통계를 통해 소득을 추정합니다. 한 사건에서 그는 ‘농축산물표준소득표’라는 통계를 근거로 자신의 소득을 주장했고, 대법원은 그 활용을 거부했습니다(대법원 1993. 4. 9. 선고 92다55701 판결). “농축산물표준소득표는...조사목적이 일반농가의 평균적인 실제소득의 산출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영농설계나 경영개선 연구지도를 위한 자료의 제공에 있는 것이고...우량 농가만을 표본으로 추출하여 조사한 것임에 비추어 볼 때, 이 사건 피해자와 같은 특수작물의 영농자에 대한 일반적인 추정소득을 산정하기 위한 기초자료로 직접 이용하기에는 합리성과 객관성을 결하여 적합치 않은 것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통계가 유용하게 적용될 수 있어도, 통계만으로는 그 주장을 뒷받침하기에 부족하다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법은 징역형을 선고할 때 원칙적으로 ○년 식으로 ‘점’의 형태로 합니다. 예외적으로 소년은 개선가능성을 고려해 ‘폭’의 형태, 즉 기간(단기~장기)으로 정합니다. 소년이 살인죄 등 특정강력범죄를 저지르면 장기는 15년, 단기는 7년을 넘지 못합니다(소년법 제60조 제1항 본문 등). 한편 유죄판결의 1심에 대해 피고인만 항소하였다면 2심은 그보다 형을 무겁게 정할 수 없습니다(불이익변경금지 원칙). 만약 1심 판결 선고 당시 소년에게 징역 7년~15년이 정해진 이후 그 만이 항소하여 어느새 성년이 되었다면, 2심은 그에게 더 이상 기간이 아니라 징역 ○년의 형태로 형을 선고해야 합니다. 이 경우 2심은 불이익변경금지 원칙에 따라 1심의 어느 형을 기준으로 그보다 무겁게 정할 수 없는 것일까요? 7년? 15년? 아니면 중간인 11년?

별개의견은 ‘장기’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대법원 2020. 10. 22. 선고 2020도4140 전원합의체 판결). 근거로 삼은 것 중 하나가 ‘통계’입니다. 통계에 의하면 기간으로 형을 선고받은 소년은 대체로 장기까지 형을 살게 되는 것이 확인되므로, 그는 이미 장기를 자신의 형으로 예측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2009년부터 2018년까지의 10년간의 통계자료에 의하면 위 기간 동안 형 집행종료결정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소년수형자 중 장기형까지 실제 집행을 받은 비율이 60.21%에 이른다.”

판사는 확률에도 마찬가지로 신중한 태도를 보입니다. 대낮 거리에서 바지를 벗은 행위를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누군지 확인하기 위해 목격자들에게 4장의 다른 사람을 제시하여 물으니 모두 ‘그’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CCTV 촬영을 살펴보니, 그는 차량 운전석에서 ‘청색’ 상의를 입었고, 공연음란 행위를 한 사람은 ‘회색 점퍼’를 입고 있었습니다. 판사는 증거를 종합해 판단하며 한 가지 부연설명을 덧붙입니다[울산지방법원 2017. 9. 21. 선고 2017고단593 판결. 판사는 이것이 바로 이른바 ‘검사의 오류(prosecutor's error)’라고까지 각주로 적어두었습니다]. “공소사실의 입증은 제출된 증거에 의하여 피고인이 범인일 확률을 구하는 것이지, 피고인이 범인이라는 전제에서 그러한 증거가 있을 수 있는 확률을 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통계와 확률은 만능이 아닙니다. 일견 객관적으로 보이는 통계와 확률이 자칫 판단을 오도할 수 있습니다. 상대가 통계와 확률을 논증의 근거로 삼을 때, 세심하게 따져 그 타당성을 비판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법률가로서 유의할 사항이라 새삼 새겨보았습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sohnhoyo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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