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바다에서 길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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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바다에서 길을 보다
  • 최용성
  • 승인 2023.07.06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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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성 변호사·법무법인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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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나 남해와 달리 서해에서는, 바다에 이르는 길, 바다에서 육지로 이르는 길을 볼 수 있다. 바다에서 길을 보는 순간 갯벌은 바다와 대지, 인간과 자연이 만나는 경이로운 장(場)이 된다. 도시 사람인 나는 바다에서 길을 보는 법을 탁월한 예술가로부터 배웠다. 오래전부터 갯벌 연작에 천착하여 온 문인환 화백은, 처음에는 갯벌을 연작화의 제목처럼 <침묵의 땅>으로 바라보았다. 화가는 “갯벌을 소재로 인간의 이기적인 편리함만을 위하여 훼손되고 있는 갯벌의 실제적 이미지를 구체적으로 재현함으로써 갯벌이 주는 외형적 이미지의 재현뿐만 아니라 생명의 본질에 대한 이해, 자연과 인간과의 친숙한 상호소통을 위한 궁극적 의도와 그 안에 내재한 자연과 생명의 소중한 아름다움을 제시하고 싶었다”라고 힘주어 말한다. 갯벌의 이미지 그대로 문인환 화백의 연작들은 화려하거나 예쁜 색감으로 보는 사람을 유혹하지 않는다. 대신 작가는,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우직하게 자연 또는 생명의 근원에 다가선다.

외로운 사유와 직관을 통하여 갯벌에 담긴 침묵의 의미를 찾던 문인환 화백은 언제부터인가 연작의 새로운 제목 그대로 "바다와 대지"가 만나는 융합과 상생의 장소로 갯벌의 의미를 확장한다. 그리고 이제는 화가 스스로 "바다에서 길을 보다"라고 또 다른 제목을 내세우면서 갯벌을 삶의 구체성과 자연이 합일하는 구도(求道)의 장(場)으로 승화하는 경지에 이르고 있다. 문인환 화백의 갯벌 연작들은 단순한 구도와 색채, 형상으로 이루어진 정적(靜的) 풍경화이지만 역설적으로 이 세상의 모든 색과 형상, 복잡성이 역동적으로 함축되어 있다. 구름이 펼쳐진 하늘과 갯벌이 만나는 수평선(또는 지평선) 그리고 그 경계가 있는 듯 없는 듯, 묘한 빛과 공기 감의 표현은 현실과 이상, 고뇌와 구원, 분리와 통합이 긴장하고 대립하면서도 함께 만나 화해하고 치유할 가능성을 내포한 듯하다. 화가의 작법은 극사실주의와는 거리가 멀지만 희한하게도 화폭에 담아낸 대상(오브제)은 대단히 사실적인 느낌으로 눈을 사로잡는다. 그런데 그 사실성 너머에 물질을 이루는 구성요소인 원자처럼 형상을 만들어내는 화가의 독특한 터치가 있다. 거기에 섬세한 색의 채도가 리듬감 있게 긴장과 이완, 대립과 균형을 만들어내 심오한 미학적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 문인환. 바다에서 길을 보다. 2017. 112x194 cm Acrylic on Canvas
ⓒ 문인환. 바다에서 길을 보다. 2017. 112x194 cm Acrylic on Canvas
ⓒ 문인환. 바다에서 길을 보다 2019. 97 x 162 cm Acrylic on Canvas.
ⓒ 문인환. 바다에서 길을 보다 2019. 97 x 162 cm Acrylic on Canvas.
ⓒ 문인환. 바다에서 길을 보다, 2020년 작품, 130x 162cm Acrylic on Canvas.
ⓒ 문인환. 바다에서 길을 보다, 2020년 작품, 130x 162cm Acrylic on Canvas.

서해안 곳곳에서 갯벌의 변화를 유심히 살펴본 분들이라면, 문인환 화백이 화폭에 담아낸 갯벌이 실제 풍경뿐만 아니라 우리 마음에 새겨진 풍경까지 얼마나 잘 담아내고 있는지 쉽게 공감할 것이다. 문인환 화백의 그림에 표현된 여러 가지 갯벌 풍경을 전체와 부분, 하늘과 땅(바다), 땅과 물, 진흙과 돌, 빛과 어둠, 분할과 통합 등등의 많은 시선으로 다양하게 거듭 바라보면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다양한 내면의 풍경들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심지어 클로즈-업된 갯벌풍경에 담긴 연흔에서는 비구상을 보는 느낌마저 든다. 이처럼 시각적 상상력을 다양하게 열어놓는 개방성 덕분에 시간이 흐를수록 이 연작들이 주는 감동은 더 커지고, 화폭을 뛰어넘어 보이지 않는 세계, 한없이 열려 있는 영성(靈性)의 세계로 대상이 변용되는 느낌마저 든다. 아마 자연의 근원에 다가서려는 작가의 정직한 태도가 화폭에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이러한 진정성과 예술혼으로 인하여 문인환 화백의 갯벌 연작들은 대상의 매력을 제대로 표현하면서도 그것을 뛰어넘는, 강력하고 심오한 아우라(aura)로 삶과 자연의 본질적 의미를 되돌아보게 한다. 그래, 지금 같은 시대에 더더욱, 바다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

덧붙여: 새만금간척사업을 기억하시는가? 1991년 시작되어 2010년 방조제가 완공되었고 지금도 후속 사업이 끝나지 않았다. 이 사업 때문에 우리가 잃은 것이 갯벌이다. 그 생태적 영향은 우리는 물론이고 후손들에게 좋지 않은 방향으로 작용할 것이다. 게다가 사라진 갯벌은 경제적 가치도 엄청나다. 새만금 갯벌이 남아 있었다면 피폐해진 지역민들의 삶은 현저히 달라졌을 것. 문인환 화백처럼 바다에서 길을 보았다면 이런 터무니없는 사업을 생각할 수 있었을까? 그래도 희망은 있다. 경이롭게도 새만금에 작은 수라 갯벌이 살아남았으니까. 그 현장을 7년 동안 담은 황윤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수라>가 있다. 신공항 건설로 사라질지 모른다. 관심과 응원이 필요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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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용석 공저 『형사소송법 제4판』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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