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연 미국 변호사의 논 세퀴터(9)-탁월한 법률가와 가면 증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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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 변호사의 논 세퀴터(9)-탁월한 법률가와 가면 증후군
  • 박준연
  • 승인 2023.07.06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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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연 미국변호사
박준연 미국변호사

벌써 십몇 년 전의 일인데 해고당한 로펌 1년 차 변호사가 자신이 일했던 로펌을 고소하면서 자신과 같이 탁월한 법률가에게 다른 1년 차 변호사들과 같은 수준의 업무를 배정한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그에게도 사정은 있었겠지만, 이 이야기는 빠르게 퍼져 업계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사람은 업계를 불문하고 미움을 받지만, 특히 대형 로펌 변호사의 심리에 대해서는 첫 회사의 선배가 이런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다. “우리 중 어렸을 때 수재 소리 안 들은 사람 있니? 너도 그랬을 거고 나도 마찬가지야. 우리 다 잘났는데 그중에서 누가 자신이 특히 잘났다고 하면 웃기는 거지.”

이 대극에 있는 것이 가면 증후군(임포스터 신드롬)일 것이다. 자신이 이룬 성취가 노력과 능력 덕분이 아니라 단지 운이 좋아서라고 생각하고, 언젠가는 자기 능력 부족이 들통날 것이라는 걱정에 시달리는 현상을 말한다. 조사의 대상과 범위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변호사는 특히 가면 증후군을 겪는 사람들이 많은 직업군이라는 조사 결과도 있다. 변호사라는 직업에 대한 사회적 기대뿐 아니라 변호사와 개별 클라이언트 간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나 자신이나 지인들을 봐도 내 성취가 100% 운이라고까지는 생각지 않더라도 내 실력 부족을 언젠가는 주변에서 알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종종 경험한다.

가면 증후군에 반드시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역량을 실제보다 과소평가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공부하고 발전하려고 애쓰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자기 평가와 타인의 평가에 큰 괴리가 있다는 면에서는 과도한 자신감도 가면 증후군도 정신적으로나 전문 직업인으로서 건강하다고는 할 수 없다. 어떻게 하면 직업인으로서의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평가하여 발전할 수 있는지 하는 문제의식은 나도 늘 안고 있다.

일을 잘하는 선배들을 보고 과연 나도 저 선배들처럼 업무 처리를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주니어 변호사 시절의 가장 큰 불안이었다. 이 불안이 어느 정도 사라진 것은 비슷한 일을 선배들의 도움 없이 처리하고, 그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고 나서였다. 선배들이 출장이나 다른 일로 자리를 비울 때가 그런 경험을 쌓을 좋은 기회였다. 그렇게 경험치가 쌓이면서 내부나 외부 회의에서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는 스트레스도 많이 줄었다. 내 전문 분야에 대해 무지한 것이 부끄럽지만, 클라이언트나 팀원들의 질문이 반드시 내 분야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모르는 내용에 대해서 회사 내부의 전문가와 상의하거나 신속하게 후속 조치를 취하면 된다.

가면 증후군은 내면화된 편견에서 기인하기 때문에 역사적인 차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여성, 소수 인종의 전문가에게서 특히 많이 나타난다고 한다. 개인적으론 현재의 업무 수준보다 조금 어려운 일을 계속해나감으로써 작은 성취와 성공을 거듭하는 것이 나는 안된다는 내면화된 편견과 싸우는 데 큰 힘이 된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오만하고 독선적인 태도 역시 경계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위에 언급한 첫 회사의 선배가 해준 다른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우리가 하는 일이 안건마다 쉬워지기는커녕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아니, 당연한 일이다. 쉬운 일이면 우리같이 비싼 로펌 쓰지 않고 클라이언트 자체적으로 해결했을 테니까. 내가 잘났고 내 능력이 점점 나아져도 업무의 난이도는 그에 못지않은 빠른 속도로 어려워진다. 불필요하게 위축되지 않고, 또 지나치게 자신만만하지 않고 담담하게 일을 진행해 나가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지, 새삼스레 생각해 본다.

박준연 미국변호사

■ 박준연 미국변호사는...

2002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2003년 제37회 외무고시에 수석 합격했다. 3년간 외무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미국 최상위권 로스쿨인 NYU 로스쿨 JD 과정에 입학하여 2009년 NYU 로스쿨을 졸업했다. 2010년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후 ‘Kelley Drye & Warren LLP’ 뉴욕 사무소, ‘Latham & Watkins’ 도쿄 사무소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아태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큰 글로벌 로펌인 ‘허버트 스미스 프리힐스’ 도쿄 오피스에서 근무 중이다.
필자 이메일: Junyeon.Park@hsf.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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