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선거제도에 대한 국민적 이해와 정치인의 이해
상태바
신희섭의 정치학-선거제도에 대한 국민적 이해와 정치인의 이해
  • 신희섭
  • 승인 2023.07.06 17: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신희섭 정치학 박사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선거제도는 명료하면서 강력하다. 대표를 선출하기 위해 치르는 일련의 절차를 우리는 선거제도라고 칭한다. 이 선거제도가 ‘명료’하다는 것은 선거제도를 변화시키면 예상되는 결과가 깨끗하게 나온다. ‘강력’하다는 것은 선거제도를 통해 만들고자 하는 정치적 결과가 대체로 잘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거제도는 복잡하다. 선거제도가 ‘복잡’한 것은 의미가 다르다. 선거제도가 작동하는 방식, 기대효과 이런 것들이 복잡한 것이 아니다. 선거제도가 추구하는 가치 사이의 관계가 복잡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우리가 지역선거구에서 사용하고 있는 한 지역구에서 한 명을 선출하는 소선거구제는 대체로 거대 양당에 유리하다.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후보를 낼 수 있는 거대 정당들이 선거를 지배할 가능성이 크다. 양당제는 대통령제나 내각제 모두에서 효율적인 정치를 가능하게 만든다.

하지만 한국이 사용하고 있는 비례대표제는 후보자가 아닌 정당에 표를 몰아주기 때문에 정당이 득표한 득표율이 의석으로 전환될 확률이 높다. 이는 다당제를 만든다. 다당제는 안정적인 국정운영 대신 대표성과 비례성을 높인다. 즉 사회의 다양한 세력들의 이해관계가 반영되기 좋게 설계된 것이다. 그렇게 보면 한국의 국회의원 선거제도의 소선거구와 비례대표제는 각각 효율성과 비례성을 추구한다.

문제는 이 두 가지 가치가 상충하는 데 있다. 다당제를 만들어서 사회의 대표성을 극대화하면 국정운영은 매우 어려워진다. 설득할 사람들과 정당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통령제의 생존에 다당제라는 조건은 최악이다. 많은 신생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제와 다당제가 만나는 경우 민주주의가 붕괴하거나 다시 비민주주의로 회귀하였다.

그래서 선거제도를 선택하는 것은 다른 제도들도 고려하면서 한 사회가 추구할 가치를 명확히 설정해야 하는 복잡한 일이다. 문제는 2024년 총선까지 그리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2020년 총선에서 준연동형비례대표제라는 전대미문의 복잡한 선거제도를 만들고, 위성 정당마저 만들어 선거제도 개혁을 개악으로 만든 전력이 있는 정당들이 아직 선거제도의 구체적인 방향을 내놓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국회가 선거제도 개편을 위한 전원위원회를 열고, 3월과 5월에는 숙의형 공론조사를 통해 ‘선거제도 공론화, 500인회의’가 실시되었다. 하지만 6월이라는 한 달의 시간을 보내고 7월 시점에서도 구체적인 방안이 나오고 있지 않다.

공론조사와 여론조사를 통해 국민의 요구는 대체로 명확해졌다. 선거제도를 개혁하자. 소선거구제를 유지하자. 비례대표제를 확대하자. 비례의석수를 늘리자. 국회의원의 세비와 활동비를 전액 고정한다면 의원 수를 늘려도 좋다. 이런 유권자들의 요구는 기존 제도를 큰 틀에서 바꾸지 말고 부분적으로 비례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선거제도의 윤곽을 그리자는 것이다.

3월과 5월에 실시한 ‘선거제도 공론화, 500인회의’에서는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숙의형 공론조사로 진행된 이 회의에서 유권자들은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은 후, “비례대표를 더 늘리자”라는 비율이 27%에서 70%로 43%가 늘어났다. 이전에 비례대표제 공천에서 금품수수 등과 관련해 비례대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컸던 유권자들이 제도의 구체적인 작동방식과 취지를 배운 후 의견조사를 해보니 많은 유권자의 의견이 바뀌었다. 게다가 국회의원 수를 늘리자는 견해도 13%에서 33%로 늘어났다. 즉 ‘돈 잡아먹는 하마’의 이미지로 ‘의원정수 확대 절대 불가’라던 유권자들도 의견이 바뀐 것이다.

적극적인 유권자들의 의견이 좀 더 다양한 정보를 접한 후 탄력적으로 바뀐 것에 비해, 실제 선거제도를 합의하고 정해야 하는 정치인들은 별 관심이 없다. 다만 여전히 지역주의를 완화하기 위해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사용하자고 한다. 또 수도권의 과밀화를 고려해 도농복합선거제도를 사용하자는 안도 나왔다. 인구가 밀집된 수도권은 중선거구제를 사용하고 군소도시에서는 현행소선거구제를 사용하자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방안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제도에 의해 달성될 가능성이 작다는 것이다. 현재 47석뿐인 비례의석에서 전국 선거 대신 권역을 6개로 나눠서 선거를 치른다 한들 지역주의 완화에 큰 영향이 없다. 영남과 호남 권역의 7개에서 8개 의석에서 반대 지역을 대표하는 정당이 20%의 득표를 한다고 해도 1석이나 2석을 얻을 뿐이다. 도농복합선거제도의 중선거구제도는 선진국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제도다. 게다가 우리 지방선거에서 사용하고 있지만 각 정당이 의원 수 만큼 공천해 실제 거대 양당이 의석을 싹쓸이하고 있다.

한국 정치에 애정이 많은 유권자는 애가 탄다. 반면 많은 정치인은 천하태평이다. 자기가 자기 발목 잡을 일을 할 필요가 있겠는가! 2019년 말 선거법 졸속개정을 다시 볼 것이 너무나도 명확하다.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