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26-외국 대사관과의 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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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26-외국 대사관과의 분쟁
  • 손호영
  • 승인 2023.06.30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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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대학교 교양 수업을 같이 듣던 사람들과 밥을 먹었을 때입니다. 당시 한 분은 군대를 미리 다녀왔는데, 카투사였습니다. 미군과의 생활은 어떤지, 규율은 어떤지 궁금한게 많았던 우리는 여러 질문을 했는데, 그 분이 이런 이야기를 해서 다들 신기해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곳 주소는 캘리포니아야. 미국에서 택배보낼 때, 주소를 캘리포니아 어디어디라고 적더라고.” 그때는 왜 그렇지? 하고 서로 궁금해만 했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아마도 한국 주소를 공개하지 않으려는 뜻이거나 편의상 미국식 주소를 사용하는 것이 아닐까 짐작해봅니다.

그러고 보면, 국제 관계에서 어떤 나라가 다른 나라에서 활동할 때는 특별하게 봐주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대사관은 ‘대사가 주재국에서 공무를 처리하는 기관. 또는 그런 청사(廳舍)’이니, 대사관과 관련해서는 서로 조심하고 존중하는 것이 국제 질서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법률가로서 대사관과 관련해서 종종 발생하는 법적 분쟁은 어떻게 처리되고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최근 대사관과 관련한 대법원 판결(대법원 2023. 4. 27. 선고 2019다247903 판결)이 하나 선고되어, 한번 짚고 넘어가면 좋겠습니다.

한 회사가 사옥으로 쓰려고 땅과 건물을 샀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옆에 주한몽골대사관이 땅의 일부를 창고부지 등으로 쓰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정당한 값을 주고 산 땅을 온전히 활용하지 못하니, 상대가 외국이라도 일단 소송을 제기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주위적 청구는 몽골대사관이 침범한 건물 부분을 철거하고, 토지 부분은 인도하며, 해당 토지에 대한 부당이득반환을 구하는 것입니다. 예비적 청구는 해당 토지에 대한 소유권 확인을 구하는 것입니다.

주위적 청구는 일반 민사와 같은 청구취지이고, 예비적 청구는 아마도 상대가 외국대사관이니 주위적 청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을 대비해 소유권 확인만이라도 구하는 뜻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청구 강도로 나열해보면, 건물 철거 및 토지인도 〉 부당이득 반환 〉 소유권 확인 정도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원심은 이 중에서 가장 약한 소유권 확인만 인정했습니다. 건물철거 및 토지 인도, 부당이득 반환청구에 대해서는, 몽골이 공관지역으로 몽골대사관을 사용하는 행위는 ‘외교공관의 직무 수행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쳐서 주권적 활동과 관련성이 있다.’고 하면서, 우리나라 법원의 재판권이 없다고 본 것입니다. 다만, 소유권 확인은 이를 인정하는 판결을 하더라도 집행력이 인정되지 않아 그 자체로 피고의 외교 관련 주권적 활동에 대하여 부당한 간섭이 될 수 없다는 이유로 재판권을 인정하고 회사의 청구를 받아들였습니다.

대법원은 다르게 보았습니다. “국제관습법에 의하면 국가의 주권적 행위는 다른 국가의 재판권으로부터 면제되는 것이 원칙이다.”고 하거나 “외교공관은 한 국가가 자국을 대표하여 외교 활동을 하고 자국민을 보호하며 영사 사무 등을 처리하기 위하여 다른 국가에 설치한 기관이므로, 외국이 부동산을 공관지역으로 점유하는 것은 그 성질과 목적에 비추어 주권적 활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고, 국제법상 외국의 공관지역은 원칙적으로 불가침이며 접수국은 이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 따라서 외국이 부동산을 공관지역으로 점유하는 것과 관련하여 해당 국가를 피고로 하여 제기된 소송이 외교공관의 직무 수행을 방해할 우려가 있는 때에는 그에 대한 우리나라 법원의 재판권 행사가 제한된다.”는 원칙적 법리를 설시하기는 하였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예외적 법리를 설시하고, 이 사건에서는 예외에 따랐습니다.

즉, “그러나 우리나라의 영토 내에서 행하여진 외국의 사법적 행위에 대하여는 그것이 주권적 활동에 속하는 것이거나 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이에 대한 재판권의 행사가 외국의 주권적 활동에 대한 부당한 간섭이 될 우려가 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해당 국가를 피고로 하여 우리나라 법원이 재판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하거나, “부동산은 영토주권의 객체로, 부동산 점유 주체가 외국이라는 이유만으로 부동산 소재지 국가 법원의 재판권에서 당연히 면제된다고 보기 어렵고, 기록상 제출된 자료에 의하더라도 이를 인정하는 내용의 국제조약이나 국제관습법이 확인되지 아니한다. 또한 부동산을 점유하는 데에는 다양한 원인과 목적, 형태가 있을 수 있으므로, 외국이 국내 부동산을 점유하는 것을 두고 반드시 주권적 활동에 속하거나 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법적 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도 없다.”라며 이 사건과 관련한 기준을 세운 것입니다.

그래서 대법원은 건물 철거 및 토지인도 청구 부분은 받아들이지 않되, 부당이득반환 청구는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앞서 본 청구의 강도 부분에서 2심보다 한발 더 나아간 판결이라 하겠습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sohnhoyo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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