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킬러 문제는 없애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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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킬러 문제는 없애야 할까
  • 김용욱
  • 승인 2023.06.23 11:0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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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욱 인바스켓 대표, 변호사
김용욱 인바스켓 대표, 변호사

초고난도, 일명 킬러(killer) 문제에 대한 논란이 거세다. 대통령이 몸소 발화한 이 논쟁에 1타 강사들까지 뛰어들었는데, 이를 사교육의 자본 논리로 비판하는 의견도 거세다. 교육이 무엇인지에 대한 크나큰 인식의 편차가 존재한다.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은 문제를 수능에서 출제하면 안 된다는 주장은 교육의 성과와 결과물이 자본 논리에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이는 킬러 문제의 효용성에 대한 깊은 불신을 담고 있다. 킬러 문제를 잘 푼다고 그 사람의 역량이 뛰어난 것은 아니라는 시각이다. 여기에는 시험은 학교에서 가르친 것, 암기한 지식을 평가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예전의 학력고사를 경험한 세대라면 거부감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논리다. 사적인 것은 나쁜 것, 공적인 것은 좋은 것이라는 뿌리 깊은 공동체 정서가 존재한다. 평가를 더 잘 받기 위해 공적인 영역을 벗어나서 배우고, 거기에 돈을 들이고, 그래서 나도 어쩔 수 없이 돈을 써야 하니 화가 나는 것이다. 오래전 일본 육사에서는 모든 생도에게 같은 시간에 기상하고 같은 시간에 취침하게 하고 같은 시간 동안만을 공부하게 했다 한다. 별도의 시간에 공부하게 하면 평가 결과를 신뢰할 수 없고 불공평하다고 본 것이다. 우리가 그 정도까지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물론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도 많다. 융합적 사고를 묻는 문제, 킬러 문제를 학원에서 가르치면 안 된다고 하면, 그만큼 포기해야 하는 것이 있다. 창의적 사고에 대한 평가다. 일타 강사들이 킬러 문제의 배제 이슈에 발작에 가깝게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경제적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창의적 인재에 대한 평가에는 무한한 자원을 쏟아부어도 아깝지 않다는 나름의 신념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장에는 학원에 대한 생각에도 본질적 차이가 있다. 많은 사람에게 있어 좋은 학교와 좋은 학원은 그 기능이 다르지 않다. 단지 학원은 학교와 달리 돈을 좀 더 받고, 돈만 있으면 누구든 수강이 어렵지 않게 한다. 이것이 좋은 학교와 좋은 학원의 다른 점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기대하는 좋은 학교의 기능은 시험 잘 보게 하고, 좋은 학교 진학을 도와주는 것인데, 이것은 학원의 기능 및 목표와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학원에서 문제에 대한 좋은 풀이법을 알려주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 이해할 수조차 없는 것이다.

우리가 잠시 잊은 것 중의 하나는 수능이 융합적 사고를 평가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라는 것이다. 이는 교육과 시험을 분리한 것이다. 시험의 본질이 암기한 것을 얼마나 까먹지 않았는지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한다면, 시험 문제가 학교에서 가르쳤는지 아닌지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다. PSAT, LEET, MEET, PEET 그리고 NCS까지도 모두가 수능과 같은 기조에 있다. 시험이 평가와 연계되어야 한다면, 각 대학에서는 이러한 PSAT 등 적성평가 교과목을 필수과목화해야 할 텐데, 그렇게까지는 않다. 그런데, 가르치지 않은 것도 평가한다면 수능은 자격시험처럼 운영되는 것이 맞다. 마치 PSAT처럼 말이다. 똑같이 배운 지식을 얼마나 잘 암기했느냐를 평가하는 것은 투입한 땀과 시간에 비례하기 때문에 공평하다. PSAT 등을 어떤 이는 5년을 공부해도 달성할 수 없는 점수를 어떤 이는 몇 달 만에 도달하는데, 이는 개인 간에 현존하는 냉엄한 역량의 차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매우 불공평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를 서열화한다면 어떤 의미에서 DNA에 의한 지배를 공식화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능을 자격고사화하자는 주장이 틀린 것은 아니다. 다만 그다음의 평가도구가 자리 잡지 않았을 뿐이다. 본고사나 본고사형 논술은 현재의 수능과 동일한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한가하고 순진하게 면접으로 인성을 평가하겠다는 주장은 공정성 논란을 다시 재점화한다. 프랑스 바칼로레아 철학 시험이 멋져 보일지 몰라도 변별력은 별로 없다 한다. 그것을 서열화한다면 공정할까? 누구의 인생관이 0.5점 더 높다고 어떻게 평가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이를 참지 못한다.

분명한 것 중 하나는 입시제도나 시험 난이도를 조절하는 것만으로는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20~30년 동안 수험생을 모르모트 삼아 많이 실험해보았다. 늑대를 멸종시킨 들판에 사슴만이 풀을 뜯게 한다고 그곳이 천국이 될 수는 없다. 20여 년 전에 서울대를 없애겠다던 주장이 현재 서울대와 다른 학교의 격차를 현격히 줄였다. 그러나 의대의 위상이 사라져버린 서울대의 과거의 그것보다 더욱 공고해진 것처럼 말이다.

그러면 킬러 문제 출제는 없애야 할까? 킬러 문제의 출제나, 배제나, 결국은 선택의 문제다. 그냥 두었을 때의 장단점은 정량적으로 형량하기 어렵다. 그리고 여기에는 저출산 기조 속에서도 멈추지 않는 사교육 열풍이 자리 잡고 있다. 어찌 보면 혈통적 신분이 뿌리내리지 않은, 아직은 건강한 사회의 어두운 뒷면이라 볼 수도 있고 폐쇄적 사회의 새로운 카스트 쌓기일 수도 있다. 이 문제는 진짜 답을 찾기 어려운 킬러 문제다. 우주 최강 일타 강사라도 말이다.

김용욱 인바스켓 대표, 변호사
citizen@hanmail.net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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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균등 2023-06-26 17:02:56
수능은 학력고사보다 시험과목•시험범위(예,수학)를 대폭 줄이다보니 변별력 위해 킬러문제까지 도입.

이과든 문과든 학교에서 배우는 전과목•전범위에서 출제하면 킬러문제 없이도 학력고사처럼 변별력 유지하고 융합형인재양성, 사교육비 절감으로 공교육정상화 가능.

학력고사는 10~20문제 틀려도 전국수석할만큼 변별력 있었음.

물리•화학시험도 안보고 물리학•화학전공으로 입학가능한 건 현행 대입제도의 근본문제!

수능•수시학종, PSAT, LEET, 로스쿨 등은 경험철학이 발달된
영국에서 비롯된 미국식 제도인데 직관을 중시하는 관념철학이 발달된 우리•서유럽과 맞는지는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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