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희 판사와 함께 나누는 ‘회복적 사법’ 이야기 시즌2 (4)-피해자와 가해자 가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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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희 판사와 함께 나누는 ‘회복적 사법’ 이야기 시즌2 (4)-피해자와 가해자 가리기
  • 임수희
  • 승인 2023.06.22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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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희 부장판사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임수희 부장판사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이 사건은 초기에 피해자와 가해자가 완전히 뒤바뀌는 바람에 피해자가 극심한 고통을 겪었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 너무 많은 희생을 치렀습니다. 이러한 사정을 참작하여 상당한 금액의 위자료를 책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학교폭력 사건의 민사 손해배상소송의 소장에서 처음 저 글귀를 보았을 때, 어른도 감당하기 힘든 어려운 쟁송 과정을 겪었을 아이들의 괴로움과 고통이 저절로 떠올라 마음이 무척 아팠습니다.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가’하는 공방은 그 자체가 피해자에게 2차 피해가 되는 것이라서 피해가 증폭되므로 어른도 견디기 힘듭니다. 하물며 아이들의 경우에는 아직 세상에 나가기도 전에 가해를 당하고 누명까지 쓰는 억울함에 마음과 영혼이 부서지지 않을 도리가 없겠지요.

한편 가해자 역시도 처음 시작은 변명이나 방어를 하려다가 잘못된 방법, 즉 피해자를 비난하고 공격하는 왜곡된 방식을 취하는 바람에 결국 자신과 상대방을 ‘피·가해 공방 지옥’에 함께 끌고 들어가 언제 나올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괴로운 처지에 놓이게 되는 것이라, 어른도 그 과정에서 올바른 상황 판단이나 의사 결정을 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니 아이들의 경우는 얼마나 혼란스럽고 두려울지, 그 고통은 말할 나위가 없지요. 어른의 경우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고 그에 책임을 지기 때문에, 아차 싶은 어느 순간, “제가 판단을 잘못한 것 같습니다. 제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지겠습니다”라고 멈추거나 돌아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많은 경우 무척 혼란스러워합니다. 아이들은 잘못을 해도 잘못인지 모르기 때문에 그것이 잘못이라는 것부터 배워야 하고, 잘못을 했을 때는 잘못을 인정하고 그에 응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도 배워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과 실제로 그러한 상황에서 용기를 내 보도록 실행하여 몸으로 용기를 배워야 합니다.

나아가 그렇게 용기를 내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배웠으니 앞으로는 다시는 그러한 잘못을 하지 않겠고 지난 잘못에 대해서도 잘 책임지겠다’는 태도를 취할 때, 실제로 그 잘못이 공동체 내에서 받아들여지고 용서되고 해소되는 것을 보는 기회를 가지면서 잘못에 대한 앞서 배운 태도가 옳은 것이라는 것을 몸으로 체화해 가야 하고, 그러한 과정들을 통해 사회생활에서 지녀야 할 올바른 가치를 마음과 몸에 장착해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든 과정이 다 생략되고, 자신이 한 변명에 따라 부모 등에 의해(상당한 경우 부모가 과도·왜곡된 방법으로 나설 때 증폭·오도되더군요) 오히려 잘못은 상대방이 했고 나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싸우는 과정으로 들어가게 되었을 때, 뒤늦게 이건 아닌데 싶고 뭔가 잘못되었다 느껴도 ‘배움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그저 혼란스럽고 괴로울 뿐입니다. 가해 아이에게서도 “그때 정말 죽어버리고 싶었어요”라는 말을 아이들 면담 시에 종종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가장 비극적인 것은, 학교폭력은 그 성질상 피해자와 가해자가 명확하지 않거나,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거나, 둘 다 피해자이고 둘 다 가해자이거나, 때로는 가해자가 없는데 모두 피해자인 경우 등 ‘피해자와 가해자가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서로 상호 작용을 하면서 관계에서 어떤 역동(dynamic)을 형성하고 그 과정에서 갈등이나 폭력이 발생합니다. 전문가들은 ‘피·가해 가리기’보다도 이 역동을 살펴보라고 권합니다.

학교폭력이 발생하고 지속되는 문제를 위와 같이 접근해 보아야 하는 것은 물론, 더 중요하게는 아이들이 어떤 식의 상호 작용을 하더라도 그중에서 잘못, 즉 상대를 물리적, 언어적, 기타 방법으로 가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선생님이 교육을 통해 가르쳐야 합니다. 이것은 한번 가르쳤다고 알게 되는 문제가 아니지요. 처음 그러면 잘 가르치고, 다시 그러면 또 가르치고, 그래도 반복하면 또 반복해서 지속적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라고 학교가 있는 것이고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무려 12년이나 꼬박 학교를 다니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아이에서 어른이 되어 왔고 ‘사람이 되는’ 것이겠지요.

슬프게도 현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체제하에서는 위와 같은 ‘교육’이 실종되고 아이들에게 ‘배울 기회’가 주어지지도 ‘만회할 기회’가 주어지지도 않는 것은 물론, 피해를 입은 아이들에게 ‘피해가 회복될 기회’가 주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아이들을 ‘피해자와 가해자 가리기’ 게임의 지옥 속에 몰아넣고 고통을 가해서 결국 거기를 나온 아이들을 괴물 어른이 되도록 할 뿐입니다. 무엇이 잘못인지도 모르고 잘못을 어떻게 바로잡아야 하는지, 책임을 어떻게 져야 하는지도 모르는 괴물 어른이 되게 합니다. 피해 아이도 상처가 제대로 회복되지 못할 때 쉽게 ‘가해자화’되거나 회복되지 못한 피해 때문에 ‘피해자 정체성’으로 건강하지 못한 어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학교폭력에 대해서는 ‘피·가해 공방’이 아닌 상호 존중과 갈등 해결에 관한 배움의 기회를 가질 교육적 접근을 부단히, 인내심을 가지고 포기하지 말고 끝끝내 해야 합니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아니라 ‘친구와 친구’ 사이에 열린 대화로써 잘못은 대면하고 책임지고 이를 이해해 주고 받아주어, 피해의 완전한 회복과 폭력으로 깨진 관계의 온전한 회복을 도모하는 회복적 접근을 통해 학교 공동체와 교육의 가치를 살려내야 할 것입니다.

임수희 부장판사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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