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24-‘반성적 고려’에 대한 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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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24-‘반성적 고려’에 대한 반성
  • 손호영
  • 승인 2023.06.16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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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형법 제1조 제2항은 ‘범죄 후 법률이 변경되어 그 행위가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게 되거나 형이 구법보다 가벼워진 경우에는 신법에 따른다.’고 규정하고 있고, 형사소송법 제326조 제2호는 ‘범죄 후의 법령개폐로 형이 폐지되었을 때’ 판결로써 면소의 선고를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문언만 읽으면 별다른 의문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규정을 해석·적용해온 실무는 이 규정을 ‘축소해석’해왔습니다.

1960년대 입법절차와 입법환경이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상황에서 경과규정이 흠결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에 따라 입법의도와 다르게 처벌의 공백이 발생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에, 해석론으로, ‘반성적 고려’라는 개념이 등장합니다. 요컨대, 형법 제1조 제2항과 형사소송법 제326조 제4호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입법자의 법령 변경의 동기가 반성적 고려였는지’ 여부를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반성적 고려’가 무엇인지는 무척 모호합니다. 입법자는 어쩌면 신법의 시행일을 기준으로 장래에 향하여 형사처벌을 하지 않거나 가볍게 처벌하기로 결정하였던 것일지도 모르는데, 그 내심의 의사가 반성적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해야 한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구체적 사안에 따라 하급심 견해가 갈리는 경우도 있으니,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있고 나서야 비로소 질서가 잡힙니다. 그래서 그동안 종래 실무에 대해서는, ‘수범자의 법적 안정성을 훼손한다.’는 비판이 상당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대법원이 형법 제1조 제2항과 형사소송법 제326조 제4호를 적용할 때, ‘반성적 고려’라는 개념을 걷어내기로 결정했습니다대법원 2022. 12. 22. 선고 2020도16420 전원합의체 판결). 사안을 살펴보겠습니다.

피고인은 ‘피고인은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죄로 4회 처벌받은 전력이 있음에도 2020. 1. 5. 혈중알코올농도 0.209%의 술에 취한 상태로 전동킥보드를 운전하였다.’며 도로교통법위반(음주운전)으로 기소됩니다. 그런데 도로교통법이 개정되면서, 전동킥보드에 대해서는 음주로 운전하더라도 가볍게 처벌하는 규정이 신설되었습니다. 신설 규정이 없었다면 피고인은 징역 2년~5년 또는 벌금 1,000만 원~2,000만 원의 형을 선고받을 수 있는데, 신설 규정을 적용받는다면 20만 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 또는 과료로만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어마어마한 차이입니다. 이제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이 사건 법률 개정과 같이 범죄 후 법령의 변경에 의하여 그 행위가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게 되거나 형이 가벼워진 경우 형법 제1조 제2항과 형사소송법 제326조 제4호를 적용하여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변경된 신법에 따를 것인지 여부”가 되었습니다.

다수의견은 ‘형벌법규 제정의 이유가 된 법률이념의 변경에 따라 종래의 처벌 자체가 부당하였다거나 또는 과형이 과중하였다는 반성적 고려에서 법령을 변경하였을 경우에만 형법 제1조 제2항과 형사소송법 제326조 제4호가 적용된다고 해석’해 온 종래 입장을 버리기로 합니다. “범죄의 성립과 처벌에 관하여 규정한 형벌법규 자체 또는 그로부터 수권 내지 위임을 받은 법령의 변경에 따라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게 되거나 형이 가벼워진 경우에는, 종전 법령이 범죄로 정하여 처벌한 것이 부당하였다거나 과형이 과중하였다는 반성적 고려에 따라 변경된 것인지 여부를 따지지 않고 원칙적으로 형법 제1조 제2항과 형사소송법 제326조 제4호가 적용된다.”

이와 같이 실무를 변경한 가장 큰 이유는 문언 때문입니다. “형법 제1조 제2항과 형사소송법 제326조 제4호는 범죄 후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법령이 변경된 경우 행위시법이 아니라 피고인에게 유리한 재판시법을 적용한다는 취지임이 문언상 명백하다.” 이에 따라 이 사건에서 피고인은 20만 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 또는 과료로만 처벌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편 “해당 형벌법규 자체 또는 그로부터 수권 내지 위임을 받은 법령이 아닌 다른 법령이 변경된 경우 형법 제1조 제2항과 형사소송법 제326조 제4호를 적용하려면, 해당 형벌법규에 따른 범죄의 성립 및 처벌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형사법적 관점의 변화를 주된 근거로 하는 법령의 변경에 해당하여야 하므로, 이와 관련이 없는 법령의 변경으로 인하여 해당 형벌법규의 가벌성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경우에는 형법 제1조 제2항과 형사소송법 제326조 제4호가 적용되지 않는다.”라는 부분도 설시되어 있으니 놓쳐서는 안 됩니다.

이에 따라 개인파산사건 및 개인회생사건 신청 대리가 법무사의 업무로 추가된 법무사법 개정이 형법 제1조 제2항 및 형사소송법 제326조 제4호가 적용되는 사안에 해당하는지에 관한 사건에서는, 이 사건 법률 개정은 형사법적 관점의 변화를 주된 근거로 하는 법령의 변경에 해당하지 아니하므로, 형법 제1조 제2항과 형사소송법 제326조 제4호를 적용하지 아니하고 유죄를 인정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고 보았습니다(대법원 2023. 2. 23. 선고 2022도4610 판결). 여전히 신중하게 법을 해석해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sohnhoyoung@gmail.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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