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23-약한 연결고리를 끊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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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23-약한 연결고리를 끊어라
  • 손호영
  • 승인 2023.06.09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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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좁고 기다란 나무판자 여러 개를 줍습니다. 똑같은 길이의 나무판자는 아닙니다. 빙 둘러 잇대 붙여 물통(barrel)을 만들어 봅니다. 이때 수량(水量)은 무엇으로 결정될까요? 가장 낮은 나무판자의 높이에 따를 것입니다. 화학자 유스투스 폰 리비히(Justus von Liebig)는 이 나무 물통을 떠올리며, ‘작물의 성장을 좌우하는 것은, 필수 영양소 중 넘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것이다.’라는 최소율의 법칙(law of minimum)을 만들어냈습니다. ‘사슬은 가장 약한 연결고리만큼 강하다(A chain is only as strong as its weakest link).’는 속담과도 일맥상통하는 말입니다.

같은 원리는 논리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상대의 논리는 상호의존적 관계, 수렴적 관계, 연쇄적 관계 등으로 구조를 분석할 수 있는데, 그 논리의 강도, 곧 설득력도 결국 ‘가장 약한 연결고리의 강도’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상대의 주장을 [전제1 → 전제2 → 결론]으로 분석할 수 있을 때를 상정해봅니다. 결론으로 가는 길목은 전제1과 전제2를 반드시 거치므로, 전제1 또는 전제2를 무너뜨려야 반박이 성공할 것입니다. 따라서 전제1 또는 전제2를 뒷받침하는 근거 중 가장 약한 부분을 찾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부동산 개발회사가 공매절차에서 토지와 건물을 낙찰받고 매매계약을 체결하였습니다. 매매계약서는 ‘매매계약 이후 발생하는 처분금지가처분은 매수인의 책임으로 처리·해결해야 한다.’는 특약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매매계약 후 처분금지가처분 등기가 실제로 설정되자, 부동산 개발회사는 잔금 기일을 연장하고 가등기를 해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매도인은 특약을 이유로 거부했고, 잔금 미지급을 이유로 계약을 해제하는 한편 계약금을 몰취하였습니다. 부동산 개발회사는 주장합니다. “특약은 ‘약관’에 해당하므로,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이 적용되고, 매도인은 특약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으므로 특약을 계약 내용을 주장할 수 없습니다(제3조 제4항).”

부동산 개발회사의 논증을 분석하면 이런 식이 될 것입니다. [매매계약의 존재(특약 포함) → 매매계약이 약관에 해당][전제1] ⇒ [매도인의 특약에 대한 불성실한 설명 →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 위반(제3조 제4항)][전제2] ⇒ [특약을 계약의 내용으로 주장할 수 없음][결론].

이 논리 구조를 논파하기 위해서는 우선 전제1(매매계약의 존재 → 약관에의 해당 연결고리)에 집중해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특약을 포함하고 있는 매매계약이 ‘약관’에 해당하지 않으면 전제2는 더 이상 볼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대법원(대법원 2020. 11. 26. 선고 2020다253379 판결)에서도 그와 같이 판단했습니다. “나머지 부대상고이유 주장은 원심판결에 약관법에서 정한 설명의무, 작성자 불이익의 원칙, 불공정약관 등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본 것처럼 이 사건 처분금지가처분 특약이 포함된 이 사건 공매 공고문과 이 사건 매매계약이 약관법의 규율대상인 약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는 이상, 이 부분 주장은 더 나아가 살펴볼 필요 없이 이유 없다.”

물론 전제2를 덧붙여 판단하면 논증의 완결성을 기할 수 있습니다. 실제 이 사건의 2심 판결(서울고등법원 2020. 7. 2. 선고 2019나2043550 판결)에서는 ‘설령 이 사건 공매 공고문 및 매매계약이 약관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라고 가정한 이후, 전제2에 대하여 더 나아가 성실히 살펴보았고, 자신의 결론이 옳음을 강조했습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숨은 전제를 파악해서 논파하는 것도 방법입니다. 논리를 전개할 때 전략의 일환으로서 의도적이든, 너무 당연하다 여겨 의식하지 못했든, 어떤 이유로든 전제가 숨은 채로 작동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만약 숨은 전제가 상대 논리의 약한 연결고리라면, 숨은 전제를 일부러 밝혀내, 그 타당성을 논박하는 것이 요령이겠습니다.

본처와 사이에 3남 3녀를, 후처와 사이에 1남 2녀를 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후처의 자식들이 그를 공원묘원에 안장했습니다. 본처의 장남은 아버지의 유체를 공원묘원에 안장할 수 없다며 이장을 요구했습니다. 후처의 자식들이 아버지가 생전에 이곳에 안장되길 바랐다며 거부하자, 장남은 이들에게 아버지의 유체를 인도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합니다.

다수의견은 제사용 재산을 ‘제사를 주재하는 자’가 승계한다고 규정하는 민법을 들어 본처의 장남 손을 들어주었는데, 반대의견은 ‘제사주재자’와 ‘유체·유골의 승계자’를 일치시키는 다수의견의 논리 구조에서 숨은 전제를 밝힙니다. “다수의견(은)...장남 등에게 제사를 주재할 것을, 나아가 일반적으로 선조에게 제사를 지내야 하는 것을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그리고 과연 제사를 지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이처럼 상대의 논리 구조를 파악하고 약한 연결고리를 찾는 것은 논쟁의 한 방법이 될 것입니다. 물론 경험이 쌓이다 보면, 저절로 익히는 것들이지만 새삼 짚어보았습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sohnhoyo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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