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19-판결에서의 고급 논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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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19-판결에서의 고급 논박
  • 손호영
  • 승인 2023.05.12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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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판결에서는 피차 대립하는 논증이 여러 형태로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당사자 상호간, 당사자와 판사 상호간, (합의부라면) 판사 상호간, 하급심 판사와 상급심 판사 상호간 등 서로 펼쳐내는 논증이 진검승부를 벌입니다. 서로 맞서서 버티고 겨루는 논증은 지적 전쟁과 다름없습니다.

서로를 향한 가열한 공격과 방어 속에서 살아남은 논증은 오히려 더욱 단단해집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적당히 머릿속으로 반론을 상정해서 반박하는 것과 실제로 무섭게 치고 들어오는 비판을 막아내는 것은 난이도에서 큰 차이가 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나도 모르게 손 속에 자비를 두기 마련입니다. “애들은 싸우면서 큰다.”는 말은 “논증은 싸우면서 농익는다.”는 말로 바꿔 읽어도 무방합니다.

손자병법 허실편에는 ‘전쟁을 잘하는 자는, 상대를 끌고 다니지 상대에게 끌려 다니지 않는다(善戰者, 致人而不致於人).’는 구절이 있습니다. 고대로부터 명장이라 불린 이들은, 자신이 선택한 전장에서 전투를 벌였고 상대에게 전장을 강요당하지 않았습니다.

논증의 공방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논증의 첫 단추는 ‘문제인식’입니다. “어떤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가?”라고 묻기에 앞서 ‘그 질문’이 무엇인지 먼저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문제 또는 쟁점이 설정된다는 것은, 논증의 싸움터가 규정된다는 의미와 같습니다. 상대방의 논증을 시초부터 흔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싸움터의 위치가 잘못되었다.’며 싸움터를 옮기는 것입니다.

버스 회사는 운전기사들에게 단체협약 및 임금협정에 따라 산정한 기본시급을 시간급 통상임금으로 보고, 기본시급을 기준으로 계산한 기본급과 연장근로수당 등이 포함된 일당액을 정한 다음, 근무한 일수를 곱하여 월 기본급으로 지급하여 왔습니다. 운전기사들은 근로기준법이 정한 기준근로시간을 초과해 약정한 근로시간 동안 근로했고, 월 기본급 이외에도 각종 고정수당을 지급받았습니다. 퇴직한 운전기사들은 각종 수당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며, 연장근로수당 등을 재산정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근로자의 연장·야간·휴일근로가 보통인 우리나라 현실에서, 근로기준법은 연장·야간·휴일근로에 대한 가산임금 등을 산정하는 기준임금으로 ‘통상임금’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다수의견(대법원 2020. 1. 22. 선고 2015다73067 전원합의체 판결)은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은 근로자가 근로기준법이 정한 기준근로시간을 초과하는 약정 근로시간에 대한 임금으로...(받은)...고정수당이 통상임금에 해당하는 성질을 가진 것으로 밝혀진 경우, 그 고정수당을 시간급 통상임금으로 환산하기 위한 기준이 되는 ‘총근로시간 수’의 산정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를 토대로 다수의견은 통상임금을 확정하기 위해, 총근로시간 수를 계산하는 방법을 고안하는 방향으로 논리를 전개해나갑니다.

반대의견은 다수의견의 논리 흐름이 처음부터 마뜩찮습니다. 근로기준법과 통상임금이 가지는 무게감은 인정한다 하더라도, 이 사건은 그와 같이 해결할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됩니다. “이 사건의 쟁점은 당사자의 의사를 확인하는 것인데, 다수의견은 이 사건의 쟁점이 근로기준법상의 법리인 것처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임금 내용, 지급기준, 산정 방식 등 임금에 관한 사항은 당사자가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고, 이 사건은 단체협약과 임금협정이 있는 사건입니다. 이를 해석하면 충분한 것이므로 법원은 그 해석에 힘을 쏟아야 하지, 다수의견처럼 통상임금의 계산법에 골몰하는 것은 잘못된 방향이라고 분명히 지적합니다.

또 다른 논박 방법은 이렇습니다. 상대방이 지정한 쟁점을 분석한 뒤, 나누어 지적하는 것입니다. 토지를 여러 사람이 공유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지분 형태로 소유하는 것이 불편할 때에는 당연하게도 서로 토지를 나누어 가질 수 있습니다. 이를 ‘공유물분할’이라 합니다. 당사자 사이에 협의가 있으면 자유롭게 나누면 되고, 협의가 없으면 재판으로 법원이 적정히 그 방법을 정하게 됩니다. ‘조정’이 성립된 경우는 어떨까요?

다수의견(대법원 2013. 11. 21. 선고 2011두1917 전원합의체 판결)은 조정은 본질적으로 판결이 아니라 당사자 사이의 협의와 다를 바 없다고 보았고, 소유권을 넘기기 위해서는 등기를 마쳐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반대의견은 다수의견에 대해 쟁점을 나누어 옳고 그름을 이야기합니다. 조정이라고 다 같은 조정이 아니고, 어떤 조정은 판결에 해당할 수 있음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반대의견을 개진하기에 앞서 먼저 쟁점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한 마디로 공유물분할에 관한 조정이라고 하여도 그 형태는 다양할 수가 있다...문제는 (현물분할을 명하는 판결과 완전히 동일한 형태로, ‘공유부동산의 일부는 어느 한 당사자의 소유로, 일부는 다른 당사자의 소유로 분할한다’는 방식)의 경우이다. 다수의견은 이 경우에도 당사자 사이에 합의한 내용대로 분필 및 등기를 하여야만 물권변동의 효력이 생기는 것으로 보고 있는바, (이러한 때의 조정은 판결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므로) 이러한 견해에는 찬성할 수 없다.”

이외에도 다양한 논박법이 존재할 수 있으나 일단 이 정도를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sohnhoyo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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