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범 변호사의 ‘시사와 법’ (123)-피의사실 공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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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변호사의 ‘시사와 법’ (123)-피의사실 공표
  • 신종범
  • 승인 2023.03.16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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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변호사
신종범 변호사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경기도지사 재직 당시 초대 비서실장을 지낸 전 모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그는 이 대표의 성남FC 후원금 의혹 사건 관련하여 검찰의 조사를 받아왔다. 언론에 보도된 유족들의 진술에 따르면 그가 수사 대상자로 언론에 오르내리는 상황을 매우 힘들어 했다고 전해진다.

비참한 이야기지만 우리는 이와 같은 상황에 어느덧 익숙해있다. 수사를 받다가 혐의사실의 언론보도로 인하여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사례들을 여럿 보아왔기 때문이다. 고인이 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러했고, 노회찬 전 의원이 그랬다. 노 전 대통령은 그의 부인이 선물로 받은 명품 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는 언론 보도 후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했고, 노 전 의원은 소환 조사를 받기도 전에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혐의가 언론에 오르내리면서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우리 형법은 "검찰, 경찰, 기타 범죄수사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자 또는 이를 감독하거나 보조하는 자가 그 직무를 행함에 당하여 지득한 피의사실을 공판청구 전에 공표한 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라고 하여 '피의사실공표'를 범죄로 규정하고 엄격히 처벌함을 예정하고 있다. 이는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에 근거한 것으로 법원의 재판 절차를 거쳐 유죄로 확정되지 않은 피의사실이 공표됨으로써 회복할 수 없는 피해가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언론을 통해 경찰, 검찰 관계자 등으로부터 나온 피의사실을 접하게 된다. 범죄주체가 수사기관이어서 고소, 고발을 당하더라도 기소하는 경우가 없고, 국민의 알권리를 내세워 피의사실공표에 대한 위법성조각사유를 거의 무한정 인정하기 때문에 '피의사실공표죄'가 사실상 사문화된 것이 주요한 요인일 것이다.

수사기관이 기소 전 피의사실을 공표하는 근거로 검찰은 '형사사건의 공보에 관한 규정'을, 경찰은 '경찰수사사건 등의 공보에 관한 규칙'을 각 두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는 모두 행정부 내 사무처리준칙에 불과한 것으로 형법상 금지되고 있는 행위를 법률상 근거가 아닌 훈령으로 허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이전 정부에서는 '기소 전 피의사실 공표'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이루어지지 못했고, 오히려 현 정부 들어서면서 ‘형사사건의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을 '형사사건의 공보에 관한 규정'으로 제목을 변경하고, 내용에 있어서도 전문공보관 외 사건 담당자가 취재진을 상대로 브리핑 하는 이른바 ‘티타임’을 부활하였으며, 사건 내용 공개 여부를 심의하던 형사사건공개심의위원회를 폐지하고, 공보자료 배포 외에 구두·문자메시지 등 다양한 방식의 공보도 허용함으로써 피의사실을 공표할 수 있는 여지를 넓혀 늫았다.

오보 등을 바로 잡거나 범죄로 인한 피해를 방지하거나 국민의 알권리 보장 등을 위해서 피의사실을 알릴 필요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경찰이나 검찰이 그러한 목적과 달리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수사를 이끌어 가기 위해서나, 특정 정치세력의 이익을 위해서 피의사실을 언론에 흘리는 모습을 수 없이 목도해왔다. 그 결과는 누군가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국민들은 혼란과 분열에 빠지며, 수사기관의 신뢰는 끝없이 추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속히 '기소 전 피의사실 공표'에 대한 명확하고 구체적인 기준이 담긴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그 기준을 어겼을 경우 형법에 따라 엄격히 처벌하는 풍토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신종범 변호사
sjb629@hanmail.net
http://blog.naver.com/sjb629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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