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06-아버지는 남성인가, 여성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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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106-아버지는 남성인가, 여성인가
  • 손호영
  • 승인 2023.02.10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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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남성으로 태어났으나, 자신을 여성이라 생각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머리를 기르고, 여자 옷을 입고, 여자 아이들과 주로 어울렸고, 자신의 모습이 남성으로 변해가는 것에 고통을 느꼈습니다. 한참 숨겨온 성정체성을 드러내고자 결심한 이후 태국에서 수술을 받아 사회적으로 여성으로 생활하기 시작합니다. 이제 그는 법적으로도 여성으로 인정받고자 합니다. 문제는 그가 남성으로 생활하던 당시 결국 이혼에 이르렀지만 결혼까지 했고 아직 성년에 이르지 않은 어린 아이들까지 두었다는 점이었습니다.

과연 미성년 자녀들이 있는 사람의 성별을 정정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어렵고도 어려운 문제입니다. 하지만 1, 2심은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답을 내렸을지 모릅니다. 이미 2011년에 대법원이 이 문제를 고민한 전력이 있기 때문입니다(2009스117 전합 결정).

당시 대법원은 자녀의 복리를 중요하게 고려했습니다. 아버지가 남성에서 여성으로, 또는 어머니가 여성에서 남성으로 뒤바뀌는 상황을 아이가 일방적으로 감내해야 하면서 겪게 되는 정신적 혼란과 충격, 혹여나(어쩌면 엄연한 현실일지 모를) 그가 받을 사회적 차별과 편견을 생각해보면, 도저히 미성년 자녀가 있는 사람의 성별을 정정하는 것은 쉽게 허용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대법원은 이것을 사회가 그에게 요구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요청’이라며 조심스럽게 이야기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성정체성에 따른 인격을 형성하고 삶을 영위할 권리가 있다...성전환자는 자신의 성정체성에 따른 성을 진정한 성으로 법적으로 확인받을 권리를 가진다. 이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에서 유래하는 근본적인 권리로서 행복추구권의 본질을 이루므로 최대한 보장되어야 한다...단지 성전환자에게 미성년 자녀가 있다는 사정만을 이유로 성별정정을 불허하여서는 아니 된다.”

다수의견은 미성년 자녀가 성년에 이를 때까지 실존하는 성과 공부상 성이 다른 부조리의 상태가 강요되는 것은, 성전환자가 참고 감당해야 할 고통의 크기나 절박함의 강도가 너무나 크다고 본 것입니다. 그리고 미성년 자녀의 복리에 반한다고 일률적으로 단정할 수 없다고 봅니다. 그저 등록부를 정정하는 것일 뿐이고, 성별정정을 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서로의 유대를 회복하는 길이 될 수 있어 자녀의 복리에 부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혹시나 있을 사회적 편견과 차별은 막아줘야 하는 것이지, 그 때문에 성별정정 불허가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다수의견의 논리 토대에 굳건히 자리 잡은 전제는 사회의 변화입니다. “우리 사회는 꽤 오래전부터 출생 당시의 생물학적 성만이 아니라 개인적·사회적 인식에 따라 사회규범적으로 개인의 성을 평가하여 성별정정 여부를 떠나 성전환자를 인정하여 오고 있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미성년 자녀가 있는 성전환자의 가족관계등록부상 성별정정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종래 법리를 변경합니다.

반대의견은 종래 법리를 재차 확인하고, 현실적인 문제를 지적합니다. “성전환이나 성별정정에 대한 사회적인 찬반양론을 떠나 이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편견은 엄연한 현실이므로 이러한 현실에 아직 성숙하지 아니한 미성년인 자녀들이 그대로 노출되어 받을 고통 역시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데, 자녀의 복리가 저해된다는 사정을 단순히 막연한 가능성의 문제로 치환하는 것은 그와 같은 문제를 애써 외면하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은 반대의견이 말하는 현실론은 본말전도로 규정합니다. “성전환자와 그 미성년 자녀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편견을 근본적으로 시정할 책무가 있는 국가가, 사회에 온존하는 차별과 편견을 불변하는 전제조건으로 놓고, 심지어 사회 구성원 다수의 입장에서 그것이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평가하면서까지 성별정정을 불허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으로서 받아들이기 어렵다.” 또 다른 보충의견은 소수자 보호를 선언합니다. “아버지가 여성이 되고 어머니가 남성이 되는 것을 우리 법체계상 허용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다수자가 자신의 언어체계를 절대화하여 그에 포섭되지 않는 소수자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여성인 아버지나 남성인 어머니라는 말이 기존 언어의 용례에서 볼 때 낯설고 모순적으로 보일지라도 성전환자와 그 자녀가 갖고 있는 부모자녀로서의 지위와 권리를 허용될 수 없는 것이라고 함부로 부인하는 것은 옳지 않다.”

다수의견과 보충의견은 ‘당위’를 이야기하고, 반대의견은 ‘현실’을 이야기합니다. 다수의견과 보충의견은 ‘그 사람(성전환자)’을 이야기하고, 반대의견은 ‘다른 사람(자녀)’을 이야기합니다. 다수의견과 보충의견은 ‘사회의 책무’를 이야기하고, 반대의견은 ‘사회의 실제’를 이야기합니다.

윤진수 교수님은 평석에서 ‘성전환자의 성별정정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는 기본적으로 성전환자에 대한 연민에서 출발하여야 한다.’며, 이 문제의 키워드로 ‘연민’을 꼽았습니다. 아마 이에 대해 반대의견은 이에 대해 이 문제의 키워드로 ‘걱정’을 들지도 모릅니다. 미성년 자녀가 앞으로 경험할 쉽지 않을 일들에 대한 걱정. 어려운 문제입니다. 사회적 합의를 거쳐 입법이 먼저 되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도 덧붙여 해봅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sohnhoyo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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