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범 변호사의 ‘시사와 법’ (120)-강제징용배상과 제3자 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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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변호사의 ‘시사와 법’ (120)-강제징용배상과 제3자 변제
  • 신종범
  • 승인 2023.02.03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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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범 변호사
신종범 변호사

지난 2018년 대법원은 일제강점기 전범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는 우리 대법원의 판결을 인정하지 않았고, 미쓰비시 또한 배상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피해자들은 미쓰비시의 국내 특허권에 대한 강제집행을 신청했고 법원은 특허권에 대한 매각명령을 내렸지만, 미쓰비시가 이에 불복해 대법원에 재항고를 신청해 아직까지 그 결정이 나오지 않고 있다.

강제징용배상 문제는 위안부 문제와 함께 한, 일 사이의 외교 갈등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본은 강제노역 피해자의 청구권 문제는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모두 해결되었다고 하면서 우리 대법원의 판결을 인정하지 않았고, 손해배상 확정판결에 따라 이루어진 우리 법원의 강제집행결정에 대해서도 강하게 반발했다. 우리 대법원이 미쓰비시의 매각명령에 대한 재항고 신청에 대해 아직까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배경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초기부터 한, 일 관계의 복원을 강력하게 피력했고,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희망했다. 강제징용배상 문제도 정부 차원에서 해결해 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지난달 12일 외교부는 ‘강제징용 해법 논의 공개토론회’에서 그 해법을 소개했다. 그 요지는 행정안전부 산하 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기금을 모아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하는 이른바 ‘제3자 변제’를 하겠다는 것이다. 당연히 왜 일본 전범기업의 배상금채무를 우리 기업의 부담으로 변제해 주어야 하느냐는 반대 여론이 일었다. 나아가, 피해자들(채권자)의 동의없이 ‘제3자 변제’를 할 수 있느냐 등의 법리적 문제도 제기되었다.

우리 민법은 채무자 아닌 제3자도 변제할 수 있음을 규정하고 있다(제469조 제1항 전문). 통상의 경우, 채권자의 입장에서는 채무 이행을 받으면 그만이고, 그 채무를 누가 이행하는지는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민법은 채무의 성질 또는 당사자의 의사표시로 제3자의 변제를 허용하지 아니하는 때에는 제3자는 변제를 할 수 없음(제469조 제1항 후문)과 이해관계없는 제3자는 채무자의 의사에 반하여 변제하지 못함을 또한 규정하고 있다(제469조 제2항).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미쓰비시 등 일본 전범기업을 대신하여 변제하는 방안은 이러한 ‘제3자 변제’에 해당한다. 일본 전범기업(채무자)의 입장에서는 이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그 뿐만 아니라, 추후 지원재단의 구상금 청구권 행사 포기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또 다른 당사자인 강제징용 피해자(채권자)가 반대할 경우 민법의 규정에 따라 제3자인 지원재단은 채무자인 일본 전범기업을 대신하여 변제할 수 없다고 본다. 나아가, 강제징용피해배상 판결금은 단순한 금전채무가 아니라 일제강점기에 이루어진 중대한 인권침해에 대한 배상 판결금으로 가해자인 일본 전범기업을 통해 직접 배상이 이루어져할 성질의 채무로서 채무의 성질상으로도 ‘제3자 변제’가 허용될 수 없다는 의견도 상당하다.

한편, 정부는 ‘병존적 채무인수’ 방식도 제시했다. 지원재단이 채무자인 일본 전범기업과 병존적으로 채무를 부담하는 내용으로 채무를 인수한 후 채무자로서 변제를 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러한 방식이 채무자를 추가하는 것으로 채권자에게 불리하지 않으므로 채권자의 동의가 필요없다고 보는 것 같다. 그러나, ‘병존적 채무인수’의 경우에도 채권자에게 인수자에 대한 채권을 취득하게 하는 것이라면 이는 ‘제3자를 위한 계약’으로 민법 제539조에 따라 채권자의 수익의 의사표시가 있어야 할 것이고, 채권자의 수익의 의사표시 없이 이루어진 채무자와 인수자 간의 약정은 단순한 이행인수에 불과하다. 즉, 지원재단이 일본 전범기업의 채무를 병존적으로 인수하여 채무자로서 변제를 하려면 채권자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동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더욱이, 강제징용 피해배상 채무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일본 전범기업(채무자)이 그 채무를 전제로 한 채무인수에 동의할지도 의문이다.

이외에도 강제징용 피해자들(채권자)이 수령을 거절하는 경우, 지원재단이 일방적으로 공탁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논란도 있다. 정부는 강제징용 피해배상 문제를 조속히 해결함으로써 묶였던 한, 일 관계의 실타래를 풀고자 이러한 해법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강제징용 피해배상에 대한 진정한 해법은 단순히 금전을 지급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사실대로 인정하고 가해자의 피해자들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신종범 변호사
sjb629@hanmail.net
http://blog.naver.com/sjb629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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