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선거구의 크기는 한국 정당정치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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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선거구의 크기는 한국 정당정치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 신희섭
  • 승인 2023.02.03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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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신희섭 정치학 박사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선거구의 크기를 키우면 정당정치가 좀 달라질까?’ 현재 중대선거구제도 도입을 촉발한 질문이다. 중대선거구로 바꾸면 상대적으로 소수 정당에 유리하다는 것이다. ‘소수정당이나 신생정당의 의회 진입을 돕거나 의석수를 늘릴 수 있다’가 구체적인 근거다. 과연 그럴까?

이 글은 중대선거구제도가 무조건 나빠서 논의 자체도 성립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제도가 특정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면, 정치변화 혹은 정치개혁을 위해서 최대한 제도 도입을 고려해볼 수 있다. 단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면 말이다.

중대선거구는 선거제도의 중요한 3가지 요소 중 하나다. 선거구 크기, 기표 방식, 당선자 결정 방식 중에서 선거구 크기에 관련된 것이다. 한 지역에서 한 명이 당선되는 것이 아니라 2석 이상 선거구 크기를 늘려 복수로 당선자를 선택하자는 것이다. 가장 단순하게 이해해보자. 만약 서울의 한 구의 3개 소선거구에서 각 한 명씩 3명의 의원을 선출하고 있었다면, 이것을 합쳐 3석짜리 한 선거구를 만들고 3명의 의원을 선출하는 것이다. 장난하냐고?

이것은 숫자 장난이 아니다. 한 선거구에서 아쉽게 떨어진 2위 후보나 정당은 선거구를 키우면 의석 하나 정도를 얻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영남의 3개 지역구에서 민주당 후보들이 모두 30%로 2위를 했다고 가정해보자. 이런 경우 3석짜리 1선거구로 바꾸면 국민의 힘 후보가 2명 당선되고 민주당 의원 중에서 인지도가 높은 후보에 표가 몰려 이 후보도 당선될 확률이 높아진다. 같은 논리로 호남에서 국민의 힘도 동일하게 의석을 가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현재 논의되는 중대선거구제도는 민주당에게는 영남과 강원에서 좀 더 안정적인 의석을 확보하게 해준다. 특히 영남에는 노동과 결혼 이주 등으로 30% 내외의 민주당 지지자가 있다. 반면 ‘국민의힘’은 호남과 수도권에서 안정적인 의석을 확보하게 해준다. 탄핵과 같은 상황이 없다면 2020년 총선과 같이 한 정당이 180석의 압도적인 의석을 확보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거대 양당은 보수적인 선택을 통해서 각각 우세한 지역의 일부 의석을 내주고 상대방의 우세지역에서 의석을 맞교환할 수 있다. 이때 명분은 지역주의타파나 소수정당보호가 될 것이다.

그러나 중대선거구제도가 소수 유권자의 의사를 반영하거나 소수정당에 유리하다는 주장은 개연성(plausibility)이 그리 높지 않다. 의석수가 커진다고 소수정당이 진입하기 쉬운 것이 아니라는 점은 2022년 기초의회 선거 결과를 통해서 충분히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22년 7월에 발표된 경실련의 보도자료인 ‘2022년 지방선거 진단 ① 기초의회 선거구별 당선현황 분석’에서는 8회 지방선거 중 기초의회 선거 결과가 매우 구체적으로 잘 설명이 되어 있다. 참고로 한국의 기초의회는 2006년 선거부터 중대선거구제를 사용해오고 있다.

이 보도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은 두 가지다. 첫째, 2선거구(전체 543개 선거구)에서 정당이 복수 공천을 해서 무투표 당선된 선거구가 137개나 된다. 영남과 호남 지역과 같이 특정 정당의 지역색이 강한 경우 한 정당이 2명의 후보를 내면 다른 정당은 후보를 아예 내지 않는다. 3인 선거구에서도 7곳이 무투표 당선되었다. 그중 군산시 ‘나’선거구는 3인 선거구인데 2인 후보만 출마해서 출마자 2인이 투표 없이 당선되었다.

둘째, 의석수가 많은 선거구가 반드시 소수정당에 유리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 인상적인 결과는 다음과 같다. 2인 선거구(전체 선거구 543개)에서는 진보당에서만 3명이 당선되었다. 3인 선거구(전체 선거구 438개 선거구)에서는 정의당이 5석, 진보당이 11석을 차지했다. 4인 선거구(43개 선거구)에서는 정의당이 1석을, 진보당이 3석을 확보했다. 5인 선거구(6개 선거구)에서는 정의당이나 진보당 어느 정당도 의석확보에 실패했다. 무소속인 경우도 2인 선거구는 62명, 3인 선거구는 69명, 4인 선거구는 13명이 당선되었다. 결과적으로 선거구당 의석수가 많아져도 소수정당(무소속을 포함)이 당선될 확률이 높지는 않다는 것이다. 만약 소수정당에 유리했다면 당선자 수가 많은 선거구에서 소수정당(무소속 포함)의 당선자가 많이 나와야 했지만, 3인 선거구에서 집중적으로 나왔다.

한 가지를 덧붙이면 그림이 좀 더 명확해진다. 기초의원의 경우 ‘의석수 효과’보다는 진보성향 정당의 지지가 강한 ‘지역 특색’이 많이 작동한다. 정의당은 인천, 춘천. 광주, 전주, 목포(2명)에서 총 6명이 당선되었다. 진보당은 울산(2명), 노원, 수원. 옥천, 광주(6명), 전남(5명), 전북(1명)에서 총 17명이 당선되었다. 최근 서울에서는 구로, 관악, 마포구와 인천과 울산이 진보정당 지지 성향이 높게 나온다. 그리고 광주와 호남 지역은 민주당에 실망한 유권자들이 국민의힘을 지지하지는 못하겠어 진보정당에 투표하는 ‘저항 투표’가 많이 나타난다. 따라서 이 지역들에서 의석수가 3석인 경우 진보정당 후보가 당선되는 것이다.

기초의회에서 소수정당이 확보한 의석수는 정의당이 0.23%이고, 진보당은 0.65%에 불과하다. 합쳐서 0.88%인데 무소속의원 5.54%보다 6배 적다. 풀뿌리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기초의회이기 때문에 지역활동가가 소수정당보다 유리한 측면이 있어서다. 이점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이 당선될 가능성과는 차이가 있다.

결론적으로 의석수를 조정해도 소수정당에 유리한 측면은 그리 크지 않다. 소수정당이 지역에서 당선될 수 있는 당선 가능성이 있는 선거구에서만 효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큰 것이다. 게다가 지방의회와 달리 국회의원 선거는 253석으로 규모가 적고 이해관계가 강력하기 때문에 유권자들이 소수정당을 지지할 확률은 더욱 낮아진다.

만약 중대선거구제에서 정당의 복수 공천을 제한하면 2020년 선거에서 위성 정당처럼 당을 쪼갤 가능성도 있다. 그런 점에서 소수 가치를 중시하는 유권자를 위한다는 소선거구제의 중대선거구제로의 제도 변화의 취지는 그리 타당해 보이지 않는다.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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