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자기소개서 쓰기 : 한국 교육의 이상과 현실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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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자기소개서 쓰기 : 한국 교육의 이상과 현실 사이
  • 신희섭
  • 승인 2022.12.29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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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신희섭 정치학 박사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첫째 아이가 자기소개서를 쓰게 되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는데 면접을 본다고 한다.

중학생의 자기소개서? 뭔가 그럴싸하지만, 초등학교 졸업하고 3년 동안의 학교생활을 한 중학생이 무엇으로 자기소개를 쓸 수 있을까 싶다. 게다가 코로나로 소개서에 쓸만한 경험을 친구들이나 사회에서 하기 쉽지 않았고.

자기소개서(이하 자소서)는 두 가지를 요구했다. ‘자기 주도학습’의 경험과 ‘지원동기와 진로계획’이다. 아주 추상적인 질문도 아니고 학생이 실제로 쓸 수 있는 내용이다. 부모로서 아이가 하는 새로운 도전에 그냥 있을 수 없어 첫째가 쓴 자소서를 읽어보았다. 평이하게 만들어진 자신의 경험과 제출한 자소서의 90%쯤은 이렇게 썼을 법한 지원동기였다. 평소에 글을 쓸 일이 많이 없는 아이에게는 매우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자소서를 이렇게 내면 면접에서 별로 유리할 것 같지 않다는 점이다. 많은 자소서의 드래프트는 이렇게 만들어질 것이다. 그리고 부모가 보고 일단 화를 낼 것이다. “이게 뭐냐!” 혹은 “넌 생각이 있는 것이냐.”

대략 이런 반응이 나올 것이다. 경험이 많은 부모가 볼 때 너무 허접하다고 생각이 들 테니까. 그나마 화를 내는 부모는 자소서를 읽기라도 한 것이다. 학원이나 외부 용역에 맡기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다.

첫째 아이에게 몇 가지 조언을 해주었다. 내가 직접 쓰는 것이 당연히 빠르겠지만 그건 반칙이다. 교육하는 입장에서 벌써 아이에게 반칙부터 가르치고 싶진 않고, 그렇다고 그냥 낼 수도 없어 절충안으로 몇 마디 조언을 해주었다. 그렇게 툴툴거리면서 다시 고쳐온 수정본이 좀 더 나았다.

자기소개서의 경험은 교육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많은 아이가 공교육보다 사교육에 의존한다. 학원에 시달리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소개서에 쓸 내용은 어떤 학원에 다녔는지가 대부분일 것이다. 입시 컨설팅을 받고 미리 자기소개서에 들어갈 기가 막힌 경험을 만든 경우가 아니면, 대체로 3년 내내 게임하고, 학원가고, 시험 준비하고…. 뭐 그렇게 보낸다.

그런데 몇몇 인기 있는 학교는 몰려드는 지원자를 선발하기 위해 외국에서 사용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초등학교, 중학교에서 많은 경험을 쌓으면서 인성도 만들고 사회도 배우는 것을 중시하는 다른 국가들은 아이들이 학원에 가기보단 다른 일들을 많이 한다. 들어보니 호주는 고등학교 때나 되어야 책을 보면서 공부한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 현실은 어떤가?

많은 학생이 수학과 영어를 하루 몇 시간씩 선행공부를 해야 그런대로 성적이 유지되는 시험을 보면서 지낸다. 한국 학교에선 사회를 배울 시간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용기 내서 대안학교를 보내면 나중에 학업 인정을 못 받는다. 이런 교육 현실에서 자기소개서는 대체로 아이보다는 부모나 전문가의 도움이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부모가 자소서에 환경문제에 관심이 있다고 제출하고 나서, 아이에게 갑자기 환경문제를 공부시키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삐까뻔쩍’하게 아이가 쓴 자소서를 그대로 내는 경우가 많지는 않을 것이다. 잘못하면 학생이 아닌 부모소개서를 들고 면접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자소서를 쓰게 하는 교육제도에서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은 대단히 이상적이다. 그러나 현실은 자소서를 쓴 날도 학원에 간다.

부모 입장에서도 괴롭다. 이상적인 그림은 아이가 기똥찬 자기소개서를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수학과 영어에 몰빵한 아이에게 이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현실은 아무래도 부모가 개입하게 된다. 교육적 입장에서 반칙하지 않겠다는 것이 대부분 부모의 마음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다.

매우 뻔한 이야기지만 이상과 현실의 불일치는 우리 교육이 원칙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기 때문이다. 바람직한 ‘학생 상’과 현실적인 ‘대학과 직장의 위계 구조’에서 미래 지위는 충돌한다. 방황하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앞으로도 갈지자를 그리면서 갈 것이다. 인재가 유일한 자원인 한국 현실에서 안타깝고 참담한 일이다. 2021년도 0.81명 합계출산율의 미래 세대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아 더 걱정이다.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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