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93-화두를 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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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93-화두를 던지다
  • 손호영
  • 승인 2022.11.04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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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지붕도 없고 기둥도 없습니다. 시골 마을 언덕 중턱에 더블 침대가 목조 바닥 위에 단정하게 놓여 있습니다. 다행히 스탠드 조명도 있어서 해질 무렵 분위기는 좋습니다. 믿기지 않겠지만 호텔입니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운영되지는 않는 대신, 조식과 석식을 제공하고 고객 맞춤형 집사 서비스까지 있습니다.

별이 몇 개냐(몇 성급이냐) 물으려 하니, 대담하게 대답합니다. “별은 오직 당신뿐입니다(the only star is you).” 스위스 출신 미술가들인 리클랭 형제의 작품인 눌 스턴 호텔(Null Stern Hotel, null stern은 독일어로 zero star를 의미합니다)입니다. 단순히 작품에만 그치지 않고, 일정 기간 실제 손님을 받습니다. 1박에 약 40만 원 꼴인데, 제법 인기가 많다고 하네요. 리클랭 형제는 “이 호텔은 잠을 자는 게 목적이 아니다.”면서, “깨어 있으며, 인류가 지구에 끼친 해악(기후 변화, 전재, 경제, 평등 등)을 생각해보고 자신을 돌아보라. 이 호텔에 투숙하는 건 사회 변화를 촉구하는 성명과 같다.”고 하네요.

그들의 작품은 일단 신기하고, 재밌습니다. 들여다보면, 화두까지 있으니 유익하기도 하네요. 메시지가 가져야 할 3요소를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탁월한 이슈메이킹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해당 사례를 보고 흥미로워 화두를 던지는 미술작품 몇 개 더 찾아봤습니다.

모델이 입은 옷과 신발에 풀이 붙어 있습니다. 실수나 착오가 아니라 의도적입니다. 매끄러운 원단을 토양 삼아, 거친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 있습니다. 아무 풀도 또 아닙니다. 옷과 신발에 붙일 풀이니만큼 섬세히 골랐습니다. 선택된 풀은 개박하(catnip, 캣닢)입니다. 고양이들이 좋아하는 향을 가진 이른바 ‘고양이 최음제’입니다. 잎을 따서 차로 우려낼 수도 있고, 샐러드로 먹을 수도 있습니다. 1회용도 아닙니다. 풀이 부족하다 싶으면 물만 뿌려주면 됩니다. 그러면 풀이 자라난다고 하네요. 배고프면 먹을 수도 있고, 고양이의 사랑을 받을 수도 있고. 1석 3조인가요. 2023 봄여름 파리 남성패션위크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너선 앤더슨이 선보인 이 옷은 “옷도, 사람도 결국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명제를 보여주기 위해서.”라는 취지를 밝혔는데, ‘지속가능성’이란 테마에 걸맞는 패션이 아닌가 합니다.

우리나라의 부산현대미술관에서도 전국 폐플라스틱 27톤으로 만 오천개의 모듈러를 제작하고 조립해, 거대한 철새 조형물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디자이너 이웅열, 미술가 곽이브가 만든 이 작품은, “재생에 대한 외연을 넓힌다.”는 기획에서 탄생한 것입니다. 전시 후에는 해체해 의자나 책상으로 재활용한다고 하는데, 말 그대로 재생에 대한 묵직한 울림을 전해줍니다.

화두를 던지고 경종을 울리는 것은 미술가에게 전유된 것이 아닙니다. 법률가도 마찬가지로 가능합니다. 하나의 사건 차원이든 아니면 사회 차원이든, 실제로 깊이 생각할 만한 질문을 던지며 그 질문을 통해 사건을 해결하거나 사회를 변화시키기도 합니다.

2009년 최수진 변호사님이 배스킨라빈스의 경품 이벤트에 당첨되었습니다. 추첨을 통해 일본 여행권을 주겠다는 약속인데, 회사는 당첨자가 나오자 성수기를 핑계로 무료 숙박을 1박으로 제한했다고 하네요. 문제는 기타큐슈 비행기는 이틀에 한번씩 운항해서 최소 2박은 해야 되는 것이었습니다. 회사와 한동안 협상하다 회사의 무책임한 뻗댐에 결국 소송에 접어들게 되었고, 재판에서 2박 3일에 해당하는 항공료와 숙박료 합계 약 110만 원 정도를 받는 선고를 받아냅니다. 이후 최수진 변호사님은 스타벅스의 1년 무료 음료 제공 행사에도 관여하였습니다. 스타벅스가 1년 무료 음료 제공 이벤트를 벌인 다음에, 나중에 실수였다며 음료 쿠폰 1장만 지급했습니다. 변호사님은 이벤트 당첨자를 대리해, 1년 음료 상당의 값인 약 230만 원을 받아내는 판결을 받아냅니다.

해당 사건들은, 법조인이 사회에 던진 화두에 어울리는 사례가 아닐까 합니다. 일반 고객이었다면, 그냥 지나갔을지 모를 경품 이벤트가 이렇게 사회에 울림을 준 것은 법률가였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저는 법률가를 ‘정답을 말해주는 사람’이라고 한정해왔습니다. 누군가가 문제를 말하면, 그것을 법적으로 해석하고 구조화한 다음, 그에 대한 답을 말해주는 사람. 아마 사안에 대해 결론을 내야 하는 판사의 직역을 맡아왔기에 그러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법률가의 더 중요한 역할은,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모든 문제에 정답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은 오히려 오만일 수 있지 않을까. 같이 생각할 수 있고 고민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는 것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문제의 정답을 찾고 말해야 하는 컨설턴트나 심판자를 넘어서, 당사자를 보듬어주고, 올바른 질문을 통해 그가 생각하는 자신이 원하는 목적이나 목표를 분명하게 한 다음, 어떤 것이 그것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지를 알려주어 최종적으로 갈등을 해결하는 코치나 매니저로서의 역할이 우리의 역할이지 않을까 한번 생각해봤습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법학박사
sohnhoyo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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