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 전쟁 : 독재자의 삼중고(trilem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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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 전쟁 : 독재자의 삼중고(trilemma)
  • 신희섭
  • 승인 2022.10.14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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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신희섭 정치학 박사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우크라이나 전쟁은 투키디데스의 표현처럼 ‘난폭한 스승’이다. 정보통신혁명 시대인 21세기에도 전쟁은 과거완료형이 아니라는 점에서 전쟁 종결이 얼마나 어려운지의 이론적인 영역은 물론이고, 고물가에 따른 경제적 고통이라는 현실적인 영역까지 광범위한 분야에서 우리를 가르친다. 고통스럽게.

10월 8일(현지시각) 크림 대교 폭발로 전쟁은 새로운 양상을 띨 것이라고 예측된다. 특히 두 가지 점이 주목받고 있다. 첫째는 푸틴이 이번 전쟁 내내 만지작거리고 있는 ‘핵무기’고 둘째는 ‘벨라루스의 참전’ 여부다. 핵무기 사용 여부는 너무나 많은 변수가 있고, 최종적으로 푸틴 심리를 알아야 한다는 점에서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10월 11일 러시아와 합동군을 구성하겠다고 발표한 벨라루스의 군사적 개입 가능성은 커 보인다.

그런데 왜 벨라루스는 이 ‘명분 없고 패색이 짙은’ 전쟁에 뛰어들려고 할까? 가장 단순한 설명은 첫째 벨라루스가 독재 국가고, 둘째 러시아와 우방이란 것이다. 진짜 그럴까? 이를 따져보면 독재 국가의 대외정책 특히 군사정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첫째, 독재체제도 국내정치는 중요하다. ‘하얀 루스(백러시아)’라는 뜻의 벨라루스는 독재국이다. 1954년생인 알렉산드르 루카셴코가 1994년 대통령 선거(당시 40세)이래 6선으로 28년을 지배하고 있다. ‘유럽의 북한’으로 불리는 이유다. 1994년 헌법개정 이후 초대 대통령이 된 루카셴코는 1996년 다시 헌법을 수정해 대통령 자신에게 막강한 권한을 부여했다. 2020년 대선에서는 81%가 넘는 지지를 받고 당선되었다. 하지만, 야당 정치인을 감금하고 시행한 부정선거에 대해 2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반정부 시위를 했고, 루카셴코는 실탄 발사로 대응했다. 최근에는 자식에게 권력승계를 꾀하고 있어 더욱 ‘북한스러워’지고 있다.

아직 소련 시절 KGB(벨라루스 국가안보위원회)가 이름조차 바꾸지 않고 활동하고 있는 유일한 국가에서 20만 명이 모인 것은 경이적인 일이다. 게다가 인구가 서울시와 비슷한 930만 명뿐인 점을 고려하면 숫자의 의미는 더 크다. 그리고 벨라루스는 1922년 소련에 편입되어 1991년까지 독재체제였다가 1994년 대통령 선거 이후 다시 독재를 회귀한 국가다. 민주주의의 경험이 부족하고 독재체제의 고질병인 정치적 저항 의지의 제거라는 심리전의 영향까지 고려하면 매우 의미심장한 수치다.

끊임없이 야당을 탄압하고 제거하지만, 독재와 부정의에 대한 저항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 결과가 불 보듯 뻔하지만, 야당 후보는 등장하고 저항운동도 여전하다. 이점을 높이 산 노벨위원회는 벨라루스 인권운동가인 알레스 비알랴스키에게 2022년 노벨 평화상을 수여하였다. 결론적으로 벨라루스는 독재에 대한 저항이 박제 처리된 국가가 아니라 아직 살아있는 국가다.

둘째, 벨라루스와 러시아는 원래부터 우방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리투아니아와 폴란드 사이를 오간 역사로 민족국가 형성이 늦은 벨라루스는 1922년 1차 대전이 끝나고 나서 소련에 의해 벨라루스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되었다. 바다가 없는 내륙국가로서 벨라루스는 소련 시절 산업기반이 발전한 상태에서 1991년 독립하였다. 리더십이 부족했던 옐친 시절에는 강력하지 않았던 러시아와 국가연합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푸틴이 집권해 강한 러시아 정책을 표방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러시아는 최저 가격으로 공급하던 가스 공급을 무기로 벨라루스를 압박해 벨라루스의 가스회사를 사들였다. 독재자는 독재자를 알아보는 법이니, 루카셴코는 자신보다 더 악랄한 자를 만나 학을 뗀 셈이다. 러시아의 2008년 남오세티야 합병과 2014년 크림반도 합병 시기 푸틴에게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고, 돌아온 것은 경제 보복이었다. 자신과 벨라루스를 지배할지 모르는 푸틴에게 루카셴코가 마냥 우방일 수는 없다.

문제는 벨라루스의 ‘지정학’이다. 벨라루스는 남한 면적의 2배 정도의 내륙국가로 천연자원이 부족하고 인구도 부족하다. 소련 시절 산업구조로 인해 러시아에 대한 경제 의존 비중이 50%를 넘는다. 러시아가 제공한 석유와 가스로 석유화학산업과 차량제조업을 운영해야만 한다. 중국, 우크라이나. 폴란드, 독일 순으로 수출입을 하고 있지만, 이들 전체가 러시아 하나보다 크지 않다.

게다가 벨라루스는 나폴레옹과 히틀러가 러시아를 공격했던 길목이다. 국경에서 모스크바까지 거리가 400km 정도에 불과하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흑해함대의 운명을 결정하는 세바스토폴 항구가 있는 곳이라면 벨라루스는 유럽의 침공을 막아야 하는 전진기지인 셈이다. 러시아 관점에서 이 두 나라가 NATO에 가입하는 것을 끔찍하게 싫어하는 이유기도 하다.

그런데 문제는 미국과 유럽이 벨라루스에 경제제재를 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2020년 대통령 부정선거와 그에 대한 무력 시위진압에 대해 서방이 경제제재를 했다. 게다가 2021년 루카셴코는 그리스 출발 리투아니아행 민간 여객기를 전투기까지 동원해 강제 착륙시키고, 정적을 체포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서방의 경제제재가 추가됐다. 최근 세계은행은 2022년 벨라루스 GDP 전망을 –6.5%로 하향조정하면서 물가상승률은 21.1%로 전망했다. 이처럼 가중되는 경제난에 더해 서방이 인권문제를 빌미로 군사적 개입을 할까 걱정하는 벨라루스를 푸틴이 ‘일단 살려는 드릴게!’라며 덥석 안으면서 둘의 공모관계가 완성되었다.

현재 루카셴코는 죽을 맛이겠다. 3위 경제교역국 우크라이나와 전쟁으로 수출입은 막혔고 4위와 5위인 폴란드와 독일은 경제제재를 가하고 있다. 푸틴과 시진핑과 한배를 탔지만, 호랑이와 같은 배를 탄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처럼 아름다운 결론으로 끝날지는 확실하지 않다. 4만 8천 명에 불과한 벨라루스 군대는 소련 해체 이후 지금까지 전쟁의 경험이 한 건도 없다. 이번 전쟁에서 러시아 군대가 미국산 무기 앞에 꼼짝없이 당하는 것을 생생하게 지켜본 루카셴코로선 전쟁에 동참하기 쉽지 않다. 게다가 러시아에 군대 주둔을 허용하면서 전쟁에 참전하면 ‘러시아-벨라루스 운명공동체’가 발목 잡을 수 있다. 푸틴과 정치적 생명을 같이 하거나, 푸틴에 의해 지배받을 수도 있다.

비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적 불만은 제도적으로 표출될 수 없다. 선거 자체는 의미가 없어 대체로 비제도적인 방식인 쿠데타나 암살 등으로 처벌받는다. 또한, 비민주주의 국가 간 약속은 종이 한 장의 무게만도 못하다는 것을 루카셴코 본인이 잘 안다. 패배할 확률이 높은 전쟁으로 뛰어들면서 푸틴의 손에 자신의 목숨을 맡길 것인지 푸틴과 거리를 두면서 점진적으로 석유와 가스 가격 폭탄으로 압살당할 것인지의 딜레마 상황이다. 아니 딜레마보다는 ‘비극’에 가까운 상황이다.

유일한 돌파구는 푸틴과 결별하고 유럽 국가들 편에 서는 것인데 이것은 자신의 정치생명을 포기하고 국가의 운명을 서방국가들과 함께 하는 것이다. 지난 28년간의 만행과 가족들이 받을 고통이 이 또한 선택하지 못하게 한다. 이것이 독재 국가의 비극이다. 살 길과 죽을 길의 기로에서 독재자가 과연 국가를 선택할까!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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