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푸틴의 핵 도박 가능성과 심리기제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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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푸틴의 핵 도박 가능성과 심리기제의 중요성
  • 신희섭
  • 승인 2022.10.07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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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신희섭 정치학 박사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얼마 전 멀쩡한 건널목에서 크게 넘어졌다. 맘이 바빠서 빨리 건너보겠다고 하다가 사달이 난 것이다. 넘어져 본 사람은 공감하겠지만 넘어지면 ‘몸이 아픈 것’보다 ‘쪽 팔린 것’이 먼저다. 맥없이 넘어진 것이나 볼품없게 되어버린 것도 모두 맘이 쓰인다. 사실 주변 사람들은 안쓰럽게 쳐다보지만, 본인은 자신에게 부끄러워 빨리 자리를 뜨고 싶어진다. 그리고 며칠 지나면, 몸이 아프다는 것을 느낀다.

결론은 육체보다 심리가 우선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고가 생겼을 때 왜 몸의 고통보다 마음의 고통이 빨리 작동할까? 가장 단순히 답할 수 있는 것은 심리는 단기적으로 작동하고, 몸에 따르는 고통은 천천히 장기적으로 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호흡을 길게 하면 마음은 시간이 지나면서 빠르게 아물지만, 육체는 회복하는 것이 좀 더 길 수 있다. 물론 심적인 충격을 세게 받으면 평생 가겠지만, 이것은 육체도 마찬가지다.

호흡을 길게 해보면 좀 더 합리적으로 판단하게 된다. 반면 그 순간이 지배하는 경우 심리가 크게 개입한다. 이것은 인간인 지도자에게도 마찬가지다.

러시아 지도자 푸틴이 핵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어떤 수단도 사용할 수 있다’라는 푸틴 자신의 공개적인 발언도 있었지만. 몇 가지 눈에 띄는 행동을 하고 있다. 6개의 포세이돈 핵 어뢰를 탑재한 것으로 알려진 러시아의 벨고로드 핵 잠수함이 최근 정박항에서 사라졌다. 포세이돈 어뢰는 2메가톤의 폭발력을 가지고 있어 히로시마 원자탄의 6,250배에 해당하는 현존 최강의 파괴력을 가진 무기다. 핵 장비를 관리하는 12 총국의 화물열차가 러시아 중부지역으로 이동하는 장면이 공개되기도 했다. 게다가 러시아가 방사능 오염을 해독해줄 수 있는 요오드화칼륨을 대대적으로 구매했다.

푸틴이 핵무기를 사용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미국의 고위당국자들과 핵 전문가들도 의견이 갈리고 있다. 핵무기를 위협으로 이용할 뿐 현실적으로 사용하기 어렵다는 견해는 첫째, 서방의 보복 가능성과 둘째, 핵무기 사용의 피해가 러시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점을 들고 있다. 반면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견해는 첫째, 전술핵을 제한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과 둘째, 푸틴이 뒤로 물러설 수 없는 처지라는 점을 대표로 제시한다.

이러한 논쟁은 마치 핵무기의 억지 가능성에 대한 이론 논쟁을 떠올리게 한다. 브로디와 셸링 같은 합리주의자들은 핵무기는 억지 무기로만 기능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저비스와 같이 오인이라는 심리를 강조하는 이들은 핵무기가 실제로 사용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지금 시점에서 푸틴이 핵무기를 사용할 것인지를 정확히 ‘예단’하기는 어렵다. 여러 가지 정황을 통해서 추론할 뿐이다. 합리적인 관점에서는 돈바스 지역의 주민투표가 끝이 났고, 이 지역을 합병하면서 핵 위협으로 우크라이나와 서방에게 현 상황을 강요해서 전쟁을 종결지을 수 있다고 예상한다. 푸틴이 시작한 전쟁을 체면치레하는 선에서 종결하려면 러시아에 영토라는 실익이 있어야 한다고 보고, 핵은 그저 위협수단으로 활용할 뿐이다.

반면 특별한 출구가 없기에 미래 전망이 어두운 푸틴 관점에서 실제 핵무기를 사용할 것이라는 예측도 가능하다. 3일에 끝낸다고 자신만만하게 전쟁을 시작한 푸틴에 대해 우크라이나와 서방이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며칠 전 우크라이나는 수도 키이우에 핵 대비 시설을 만들면서 핵전쟁에도 대비하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이런 상황은 러시아를 극단으로 밀어붙인다. 함께 승자가 될 수 없는 겁쟁이 게임(chicken game) 상황은 시간이 길어질수록 절망적인 심리상태가 되게 만든다. 출구가 없는 전쟁이 되어 가면 합리성은 점차 메마르게 되고, 그 자리에서 다양한 심리가 자라날 것이다. ‘아픈 것’보다 ‘쪽 팔린 것’이 문제라고.

푸틴이 현재 어떤 상태인지를 알기는 어렵다. 유럽의 에너지난은 푸틴에게 장기적으로 유리한 카드고 낙관론을 지지할 것이나, 재래식 전투가 펼쳐지는 전선은 푸틴에게 불리하다. 시간이 장기화하고 러시아 국민의 불만이 깊어지는 데다 1979년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망령이 소환되면 푸틴은 극단으로 몰릴 수 있다. 만약 서방국가들이 똘똘 뭉쳐 에너지난을 러시아 없이 해결해나가면 푸틴에게 이번 겨울은 너무나도 추울 것이다.

문제는 러시아가 불리할수록 핵무기를 사용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커지는 데 있다. 푸틴도 심리가 더 중요해지겠지만, 우크라이나와 서방국가들도 심리에 휘둘릴 것이다. 만약 푸틴이 이 결과를 예상하고 베팅하고 있는 것이라면 이 전쟁의 예측은 더욱 복잡해진다. 확실히 전쟁은 어렵다.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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