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20년의 악연 : 론스타 사태와 전문가주의(profession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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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20년의 악연 : 론스타 사태와 전문가주의(professionalism)
  • 신희섭
  • 승인 2022.09.16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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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신희섭 정치학 박사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2019년 작 영화 ‘블랙머니’는 한 가지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분노케 했다. 영화를 같이 본 아이들마저 분개했다. 그것은 바로 론스타 사태다.

지난 8월 31일 론스타와 한국 정부간 투자자-국가소송제도에 따른 중재판결이 나왔다. 국제투자분쟁해결센타(ICSID)는 한국 정부는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매각하는 과정에 개입했고, 그로 인해 론스타에 손해를 입혔으며, 론스타의 외환카드 주가 조작에 따른 부분을 제외하고, 손해의 50%에 해당하는 2억 1650만 달러(한화 2,800억 원)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2003년 외환은행 인수부터 2007년 외환은행 매각 그리고 2012년 한국 정부에 대한 제소에서 2022년 최종 판결까지 지난 20년의 과정은 대단히 복잡하다. 법적 소송도 거쳤지만, 여전히 많은 추정이 난무하고 있다. 따라서 이 과정 전체를 복기-평가하는 것은 나의 능력 밖이다.

하지만 국가가 3,000억에 가까운 돈을, 특히 직접 만져보지 못한 돈을, 누군가의 잘못으로 배상하게 된 상황에서 이 사태를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 정치적 측면의 의미는 짚어볼 필요가 있다. 현재 론스타 판결과 관련해 정치적으로는 4가지 쟁점이 있다.

첫째,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할 때 자격조건이 합당하지 않았음에도 인수할 수 있게 한 부분이다. 사모펀드로 금융자본이 아닌 론스타가 법의 범위를 넘어 은행을 인수하게 한 것과 부실은행이 아니었던 외환은행을 예외규정까지 적용해 매입할 수 있게 해준 것과 관련한 정치적 책임 부분이다. 물론 이 쟁점은 이번 중재재판 관할범위 밖이다.

둘째,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매각할 때 외환카드 주가 조작으로 인해 대주주 자격이 상실되었지만, 자격이 안 되는 론스타가 은행을 통으로 매각할 수 있도록 결정한 부분이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하나은행의 매입가격 부분에 정책적으로 개입하였고, 이것이 이번 소송에서 한국이 패소한 원인이다.

셋째, 론스타가 투자자-국가 소송제도를 이용하고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중재를 요청할 때 한국 측 대응이 부족한 부분이다. 론스타는 4조에 달하는 이익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를 상대로 6조에 해당하는 소송을 제기했을 때 론스타 자체가 산업자본에 해당하기에 적법한 원고가 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는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넷째, 론스타 관련 소송의 결과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응방법이다. 한국 정부는 소송금액이 어떻게 산정되었는지 공개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중재센터의 판결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다만 법률 전문가인 법무부 장관은 “한국인의 피 같은 세금을 한 푼도 들지 않게 하겠다.” “적법한 취소 절차와 이의신청을 하겠다”라고 했다. 하지만 다른 법 전문가들은 취소나 이의 제기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주장한다.

국제통상 분야의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에 따르면 ICSID의 판정은 국내법원으로 치면 대법원의 판결과 같은 것으로 최종적이다. 취소나 이의신청은 중재재판의 절차상 문제가 있는 5가지 경우로 한정된다. 하지만 이 5가지 요건에 해당하는 것이 현실적으로는 어렵다는 것이다.

법률적인 문제와 별개로 정치적 관점에서 볼 때 이번 론스타 사태는 첫째, 권력분립의 현실적 모습과 둘째, 전문가주의와 민주주의 간 충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론스타 사태로 많은 시민이 분노하고 있다. 분노의 원인은 다면적이다. 우선 정의에 반한다. 과도한 수익, 전체 과정상 불투명성, 고위공직자들의 비상식적 대처가 문제다. 또 민족주의적 배신감, 시민의 자유 침해, 민주주의 허무함도 분노를 강화한다. 영화 ‘블랙머니’에서 느낀 분노가 괜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분노의 내면을 좀 더 객관적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개인보다 구조적인 측면이 이 문제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누가 얼마를 해 먹었는지’는 본질을 회피하게 한다. 이기심 앞에서 눈앞에 큰 기회가 왔을 때 행동하는 방식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비슷할 수 있다. 정치학 핵심은 이때 이들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다.

개인이 낸 세금을 지키고 인민(people)이 최소한도에서 원하는 대로 정치체제를 작동시키려면 권력은 분립해야 한다. 하지만 금융 분야를 필두로 경제가 복잡해지자 이를 해결하는 법적 처리 방법도 치밀하게 정교해졌다. 게다가 분야별 융합이 효율성을 강화하는 시대가 되면서 실질적으로 권력은 집중된다. 전문 경제관료와 법 전문가가 정치의 핵심 주체가 되면서 권력은 한 덩어리로 응집된다. 은행인수에 관련된 이들이 은행매각에 관여하고 또 중재재판을 담당하게 될 뿐 아니라 소송 책임도 져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 과정에 전문가주의가 슬며시 끼어든다. 조직이 가진 특별한 정보로 무장한 이들이 ‘정책적 판단’과 ‘기술적 문제’라는 논리로 외부에 정보를 공개하지 않으면 일반 시민이 할 수 있는 것은 매우 제한적이 된다. 게다가 전문관료와 법 전문가들이 같은 정부에서 자신들의 전문성을 ‘공조(log-rolling)’해 휘두르면 비판적인 시민은 무력화된다.

대의민주주의의 기본적 원리는 ‘투명성’과 ‘개방’이다. 대표들이 잘하고 있는지를 알아볼 수 있어야 유권자는 책임을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문가주의는 자신의 권력 강화를 위해서 ‘폐쇄성’을 기반으로 ‘정보 접근의 최소화’가 필요하다. 설상가상 전문가주의로 무장한 이들이 한 그룹이 되어 법을 만들고, 집행하며, 사법적 판단도 통제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무소불위가 된다. 전문가주의가 범위와 주체를 확장하는 이유다.

이 시점에서 링컨 대통령을 소환해 미안하지만, 론스타 판결과 관련해 론스타 사태는 ‘전문가의, 전문가에 의한, 전문가를 위한’ 것으로 밖에는 보기 어렵다. 이 사태와 관련된 많은 이들이 여전히 행정부에서 살아있는 권력을 가지고 있다. 법적 다툼의 여지가 더는 없기에 사법부에 고개를 돌려볼 수도 없다. 법을 넘어 건전한 민주적 공동체의 유지를 위해 필요한 실체적인 진실과 정의 구현의 마지막 희망은 국회에 있다. 그런데 여당 야당 모두 ‘당대표’ 문제로 내홍을 거치고 있는 국회가 과연 최후의 희망이 될 수 있을까!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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