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반지하와 헌법이 보장하는 인간다운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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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반지하와 헌법이 보장하는 인간다운 생활
  • 안혜성 기자
  • 승인 2022.08.11 17: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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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저널=안혜성 기자] 수도권을 비롯한 중부지방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지면서 안타까운 사고들이 발생했다. 기자도 피해가 많았던 지역 중 한 곳에 거주하고 있어 밤새 피난을 권고하는 재난문자와 가족, 친구들의 안부 연락으로 소란스러운 밤을 보냈다. 하지만 아침이 밝은 후 접한 소식들은 밤잠 조금 설친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참담했다.

여러 곳에서 침수와 산사태 등이 발생하면서 많은 이들이 재산 피해를 입었고 심지어 목숨을 잃은 이들도 있었다. 특히 신림동 반지하에 거주하던 한 가족이 겪은 참상이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반지하나 1층 주거는 안전을 위해 방범창을 다는 게 필수적이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서는 거주자를 보호하기 위해 마련된 방범창이 오히려 죽음을 불러온 원인이 됐다.

급격히 차오른 물의 압력으로 현관문은 열리지 않았고 지면에 바짝 붙여지어서 일반적인 창의 반 토막도 되지 않는 작은 창마저 본래는 최소한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보호장치였던 쇠창살로 가로막혀 집 안에 있던 일가족 3명은 탈출하지 못하고 그대로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얼마나 무섭고 얼마나 슬프고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너무나도 안타까운 사연에 여론이 들끓자 뒤늦게나마 정치권에서는 반지하 주거를 없애겠다는 정책을 내놨다. 서울시는 앞으로 지하나 반지하에 주거용으로 건축허가를 내주지 않을 것이며 기존 지하·반지하도 10~20년의 유예기간을 두고 비주거용으로 전환하도록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이번처럼 서울시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2년 전에도 비슷한 얘기가 나왔었다. 반지하에 거주하는 가족의 이야기가 그려진 영화 기생충이 연이은 수상 소식으로 화제를 이어가던 2020년, 서울주택도시공사는 자사 소유 다가구, 다세대 주택의 지하층을 모두 커뮤니티 시설로 바꾸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새로 조성하는 반지하 커뮤니티 시설의 이름을 ‘기회가 생기는 층’이라는 의미로 ‘기생층’으로 명명하며 반지하 거주자들을 모욕하는 부적절한 표현이라는 비판을 받고 사과문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타인에 대한 공감과 이해 부족이 빚어낸 아쉬운 사건이었다.

이번 폭우 재난 속에서 정치권이 보여준 모습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폭우가 예견된 상황에서도 대통령은 일찌감치 퇴근을 했고 이에 비판이 일자 대통령실은 “비 온다고 대통령이 퇴근 안 하나”라는 황당한 대답으로 국민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이어 대통령이 참사 현장을 방문한 사진을 찍어 홍보물로 사용하면서 또다시 지탄을 받았다.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한다. 또 제34조 제1항은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고 선언한다.

인간다운 생활에는 적절한 수준의 ‘의식주’가 필수적으로 보장돼야 한다. 그리고 지하층 거주지는 그에 합당하지 못하다는 점에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나마 이번 서울시의 정책 방향은 긍정적이다. 다만 그 실천에는 보다 폭넓은 관점과 이해가 필요하다. 지하층의 열악함에도 불구하고 거주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 고려되지 않는다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저소득층, 서민들을 위한 주거시설의 대대적 확충, 서울의 밀집도를 낮추기 위한 지역 일자리 확대 등 종합적인 대책이 동시에 시행돼야 유사한 참사가 발생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최근 오며 가며 촘촘히 늘어선 공동주택들을 눈여겨본다. 구옥이고 신축이고 어떻게 저런 집을 지어 사람이 살라고 하며 돈을 받을까 싶은 곳이 많아 씁쓸한 생각이 든다. 사회나 국가가 유지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각 개인도 눈앞의 작은 이익에만 치중하지 말고 타인에 대해 공감하고 배려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국가는 이를 독려하고 이끌어가야 한다. 이번 재난을 계기로 만들어지는 정책들이 단발적 조치가 아니라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큰 흐름이 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만들고 시행하는 이들 모두 더 큰 책임감과 의지를 보여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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