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82-아이 바꿔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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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82-아이 바꿔치기
  • 손호영
  • 승인 2022.08.11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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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20살 무렵의 여성이 산부인과에서 아이를 낳습니다. 산부인과는 원칙적으로 신생아실에서 간호사가 신생아를 관리하고, 산모가 원할 경우에는 신생아실 간호사가 산모에게 신생아를 건네주어 함께 모자동실에서 머물 수 있도록 하는 식으로 운영되었습니다. 산모가 모자동실을 이용하고자 할 때는, 산모가 직접 신생아실을 방문하여 요청할 수도 있고, 산모수첩을 소지한 사람이 대신 요청할 수도 있습니다.

이후 3년 즈음 뒤, 한 빌라에서 여성의 3살짜리 아이가 반미라의 사체 상태로 발견됩니다. 단순히 여성의 아동학대, 방치로 발생한 비극이라 여겼습니다. 수사가 시작되어 유전자검사를 실시하고, 놀라운 사실이 발견됩니다. 그의 어머니로 알려진 사람이 사실은 어머니가 아니라 언니였고, 외할머니라 알려진 사람이 그의 어머니였다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 광범위한 수사가 진행됩니다.

검사는 유전자 감정 결과를 결정적 증거로 보고, 당시 운영되던 산부인과 체계와 여성과 그 어머니의 여러 행태를 종합해, 여성의 어머니가 자신이 출산한 아이를 산부인과에서 여성의 아이와 바꿔치기했다고 보았습니다. 방법은 알 수 없으니 ‘불상’으로 두고, 자신의 아이를 신생아실에 들여보내고, 여성이 출산한 아이는 의원 밖으로 데리고 갔다고 보았습니다.

1심과 2심은 여성의 어머니가 미성년자약취를 했다고 보았습니다. 즉, “피고인이 자신이 낳은 이 사건 여아를 데리고 산부인과의원으로 가서 신생아실에 있던 자신의 외손녀인 피해자의 자리에 이 사건 여아를 놓아두고, 그 자리에 있던 피해자를 몰래 데리고 가 약취하였다는 것”입니다. 대법원(2022. 6. 16. 선고 2022도2236 판결)도 검사의 기소와 1, 2심 판결이 가지는 무게감을 알고 있습니다. 아이와 외할머니 사이에 친자관계가 성립하고, 여성이 출산한 것은 분명하며, 산부인과에서 가지고 나온 탯줄에서 아이의 유전자가 검출되었으니, 어느 순간 아이가 바뀌었을 것이고, 바뀌었다면 산부인과라고 봄이 자연스러운 추론이라고 본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대법원은 증거의 가치를 짚고, 미진한 점을 확인합니다.

“유죄 인정의 결정적 증거는 유전자 감정 결과이다...이를 전제로 보면 피고인이 자신이 낳은 이 사건 여아를 피해자와 바꿔치기하였다고 보는 데에 별다른 무리가 없다고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이 사건과 같이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사건에 관하여 유전자 감정 결과에도 불구하고 쟁점 공소사실에 대하여 유죄로 확신하는 것을 주저하게 하는 의문점들이 남아 있고, 그에 대하여 추가적으로 심리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이는 이상 추가 심리 없이 원심의 결론을 그대로 유지하기는 어렵다.”

대법원이 추가 심리를 요구하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첫째, 여성의 어머니가 가진 범행 동기가 의문스럽다는 것입니다. 그가 자신의 출산 사실을 숨기기 위해 자신의 아이와 손녀를 바꿔치기 했다? 바꿔치기 한 손녀를 몰래 돌보거나 유기해야 하는데, 여전히 위험한 행동 아닌가? 손녀보다 딸을 더 가까이 하고 싶어 바꿔치기 했다? 가족들을 모두 속이고 바꿔치기 범행을 감행한 그는 자신의 딸이 아이를 방치하는 것을 보고도 적극적으로 돌보지 않았는데? 그의 동기는 잘 설명되지 않습니다.

둘째, 과연 바꿔치기가 있었는지 설명할 수 있는 간접사실도 여전히 의문스럽다는 것입니다. 신생아의 체중이 하루 만에 줄어들었으니 다른 사람인 것 아닌가? 태변과 수분 배출로 가능하기도 합니다. 아이의 우측 발목에 식별띠가 벗겨져 있었으니 바꿔치기 한 것 아닌가? 드물기는 하지만 가끔 분리되기도 한다고 합니다. 신생아실 출입이 자유로웠다? 입구까지는 자유로웠고, 모자동실 이용 가능시간도 제한되어 있었으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외에, 아이의 생김새가 어떻게 다른 것인지 판독해볼 필요, 도대체 여성의 어머니는 그가 낳은 아이를 바꿔치기 할 동안 어디서 어떻게 길렀는지, 딸이 낳은 아이는 어떻게 유기했는지 등 조금 더 검토해보자고 신중하게 접근합니다.

1, 2심 모두 “설령 피고인의 주장이나 변명이 모순되거나 석연치 않은 면이 있어 유죄의 의심이 가는 등의 사정이 있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1심의 설시는 눈여겨볼만 합니다.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in dubio pro reo)’라고 하는 원칙은 형사재판에서 양보할 수 없는 기본원칙이지만 사실관계를 일일이 증명하는 것이 곤란한 사안에서 결단력을 갖추지 못하여 만연히 의심으로 도피하게 된다면 그러한 원칙의 남용에 해당할 여지가 있고, 특히 정황증거에 의하여 요증사실을 추단하는 경우 조금이라도 설명하기 어려운 의혹이 남는다고 하여 범죄의 증명이 없다고 쉽게 단정해 버린다면 정황증거에 의한 사실인정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대법원도 그 취지를 십분 이해했을 것입니다. 다만, 이 사건이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사건”이라고 하면서, 조금 더 살펴볼 것을 요구한 것입니다. 추가 심리가 진행된다면, 보다 명확하게 이 사건의 진실에 다가갈 수 있을 것입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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