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69-버스회사의 휠체어 탑승설비 제공 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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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69-버스회사의 휠체어 탑승설비 제공 의무
  • 손호영
  • 승인 2022.05.04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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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휠체어 사용자 또는 무릎 관절의 장애가 있는 사람은 버스에 설치된 승하차용 계단을 오르내리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들은 버스회사들이 저상버스나 휠체어 탑승설비를 제공하지 않은 것은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제19조 제4항에서 정한 교통사업자의 정당한 편의제공 의무를 위반한 차별행위라고 주장하였고,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경기도 또한 위 법과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에서 정한 의무를 위반하여 버스회사들의 차별행위를 야기했다고 주장하며, 위자료 지급과 차별행위 시정에 필요한 적극적 조치를 구합니다.

2심은 버스회사들이 휠체어 탑승설비를 제공하지 않은 것은 정당한 편의제공 의무를 위반한 차별행위에 해당하고, 이를 시정할 필요성이 인정된다며, 버스회사들에 대한 휠체어 탑승설비 관련 적극적 조치 청구는 인용했으나 나머지는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2심 판결에서는 휠체어 탑승설비를 제공하여야 하는 대상 버스와 휠체어 탑승설비 제공의무의 이행기를 따로 정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2심의 적극적 조치 판결이 확정된다면 피고 버스회사들은 ‘즉시’ 운행하는 ‘모든 버스’에 휠체어 탑승설비를 제공하여야 합니다.

대법원(2019다217421 판결)은 2심의 다른 판단은 모두 유지했고, 2심이 인용한 부분에 대해서 다르게 판단합니다. 대법원은 “적극적 조치 청구소송을 담당하는 법원으로서는 피고가 차별행위를 하였다고 인정하는 경우 원고의 청구에 따라 차별행위의 시정을 위한 적극적 조치 판결을 하는 것을 전향적으로 고려하여야 하고, 그 적극적 조치의 내용과 범위 등을 구체적으로 결정할 때 폭넓은 재량을 가진다고 할 것이다. 다만 비례의 원칙은 법치국가 원리에서 파생되는 헌법상의 기본원리로서 모든 국가작용에 적용되는 것이므로, 법원이 적극적 조치 판결을 할 때에도 원고와 피고를 비롯한 모든 이해관계인들의 공익과 사익을 종합적으로 비교·형량하여야 한다. 사인인 피고에게 재정 부담을 지우는 적극적 조치 판결을 할 때는 피고의 재정상태, 재정 부담의 정도, 피고가 적극적 조치 의무를 이행할 경우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등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보조금을 비롯한 인적·물적 지원 규모, 상대적으로 재정 부담이 적은 대체 수단이 있는지, 피고가 차별행위를 하지 않기 위해 기울인 노력의 정도 등도 아울러 고려하여야 한다.”고 법리를 우선 설시합니다.

그리고 대법원은 피고 버스회사들이 ‘즉시’ 운행하는 ‘모든 버스’에 휠체어 탑승설비를 제공하여야 하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생각해볼 점이 있음을 지적합니다.

첫째, 피고가 된 버스회사들의 노선은 전국, 서울, 경기도 등 각지에 분포합니다. 그런데 원고들의 거주지, 직장 소재지를 고려하면 모든 버스 노선에 탑승할 구체적·현실적 개연성이 있다고 볼 수 없습니다.

둘째, 버스회사들의 영업이익이 감소 추세이거나 이미 손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든 버스에 휠체어 리프트를 장착하는 것은 상당한 비용이 듭니다. 그런데 버스회사들은 운임과 요금을 국토교통부장관과 시·도지사가 정한 기준과 요율 범위 내에서만 정할 수 있어, 그 비용을 마련하는 데에도 현실적 한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① 피고 버스회사들이 운행하는 노선 중 원고들이 향후 탑승할 구체적·현실적인 개연성이 있는 노선, ② 피고 버스회사들의 자산·자본·부채, 현금 보유액이나 향후 예상영업이익 등 재정상태, ③ 휠체어 탑승설비 제공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운임과 요금 인상의 필요성과 그 실현 가능성, ④ 피고 버스회사들이 휠체어 탑승설비를 제공할 경우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등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보조금을 비롯한 인적·물적 지원 규모 등을 심리한 연후, 이를 기초로 휠체어 탑승설비 제공 대상 버스와 그 의무 이행기 등을 정해야 한다고 합니다.

대법원은 “이때 휠체어 탑승설비 설치 대상 노선은 원고들이 향후 탑승할 구체적·현실적 개연성이 있는 노선으로 하되, 그 노선 범위 내에서 피고 버스회사들의 재정상태 등을 감안하여 휠체어 탑승설비를 단계적으로 설치해 나가도록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피고 버스회사들이 이미 보유하고 있는 버스는 잔존 내구연한 등을 고려하여 단계적으로 휠체어 탑승설비를 설치해 나가도록 하고, 신규로 보유하게 될 버스에는 원칙적으로 휠체어 탑승설비를 설치하도록 하는 방안 등도 고려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원고들이 향후 탑승할 구체적·현실적 개연성이 있는 노선에 관하여 피고 버스회사들이 운행하는 모든 버스에 휠체어 탑승설비가 설치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고 적절히 기준을 세우기도 합니다.

한 가지 주목할 것은 대법원은 다른 논점에서 “‘비장애인’이 아니라 ‘장애인’의 입장에서 사안을 바라보는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선언한 점입니다. 대법원(2020도12017 판결)은 “다수결의 원리가 작동하거나 그에 의해 구성되는 입법부와 행정부와 달리 다수권력으로부터 독립하여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소수자를 보호하고 국민의 기본권에 대한 최후의 보루인 사법권의 본질적 기능”이라고 하므로, 위와 같은 설시는 낯설지 않습니다. 대법원이 이 사건에서 2심으로 하여금 추가 심리하도록 한 것은, 사안에 대한 외면이 아니라 세밀한 이익형량을 위해서입니다. 이를 위해 현재 파기환송심이 진행 중입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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