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67-신상필벌의 어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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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67-신상필벌의 어려움
  • 손호영
  • 승인 2022.04.22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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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춘추오패 중 1인이자 명군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진나라 문공은 왕위에 오르기 전 오랜 방랑생활을 거친 인물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고국으로 돌아가 왕위에 오른 그는 군주로서 지위를 든든히 하며 다스림을 옳게 합니다. 이웃나라와의 다툼이 있게 되자 그가 외삼촌이자 믿음직하게 자신을 보좌해온 호언에게 묻습니다. “음식을 충분히 마련하여 군민들을 위해 연회를 벌였습니다. 한 해 내내 직조한 포(布)로 군사들에게 옷도 입혔습니다. 이제는 백성들을 움직여 전쟁에 나가도록 해도 되겠습니까?” “부족합니다.” “세금을 감면해주고, 양형을 가볍게 한다면, 백성들로 하여금 전쟁에 참여하도록 할 수 있겠습니까?” “부족합니다.” “백성들에게 슬픈 일이 있을 때 조문하고, 불행하게 법에 저촉되면 사면하고, 집안이 어려운 사람들을 구제하면 그때는 가능하겠습니까?” “부족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백성들이 싸우지 않을 수 없게 해야 합니다. 공을 세운 자에게는 반드시 상을 주고, 죄를 지은 자에게는 반드시 벌을 내리면 됩니다(信賞必罰).”

한비자 외저설 우상 편에 나온 이 이야기가 바로 신상필벌의 유래입니다. 정작 신상필벌 고사성어의 주인공인 진나라 문공은 오래도록 그에게 충성하고 헌신했던 개자추에 대한 논공행상을 잊었습니다. 어쩌면 이러한 점들이 신상필벌의 어려움을 역설적으로 나타내주는 것은 아닐까 합니다. 개자추는 망명 생활 중 문공이 굶주리자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여 바쳤다는 일화(割股奉君)을 남겼을 정도였음에도, 문공이 깜빡 그를 잊은 것입니다. 개자추는 스스로 비참해하고 문공의 신하들이 서로 공을 다투는 것이 비루하다 여겨 산에 숨었습니다. 문공이 뒤늦게 개자추를 떠올리고 찾았지만 개자추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문공은 산에 불을 지르면 개자추가 결국 나오지 않을까 했는데, 개자추는 노모를 감싸안은 채 불에 타 죽음에 이르렀다 합니다. 이에 문공은 몹시 후회하며 개자추가 죽은 날은 불을 피우지 말라고 하였고, 이 날이 한식(寒食)의 기원이 됩니다.

상과 벌을 정확히 하여야 한다는 것을 부정하는 이는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벌은 주기 쉬우나, 상은 주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어렸을 때, 어느 책에서 다음과 같은 고사를 읽은 기억이 납니다. 불이 크게 나자, 사람들이 도망가기 바쁩니다. 어떻게든 사람들을 모아 불을 꺼야 하는데, 책임자가 불을 끄는 이나 끄는 데 도움을 주는 이에게 상을 주려 합니다. 인센티브를 통해 동기부여를 하는 셈입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이가 말합니다. 재화는 한정되어 있고, 이를 여러 사람에게 나누다보면 소소해지기 마련입니다. 불을 끄지 않는 이를 벌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모일 것입니다. 지금도 기억날 정도로 인상 깊었던 이 고사는 세상에서 상에 인색할 수밖에 없음을, 반대로 벌은 가볍게 이루어질 수 있음을 알려주었습니다.

세종대왕 시절, 사간원에서는 대마도 원정에 나섰던 이종무에 대해서 그 전투방식의 흠을 발견했습니다. 그를 벌하자 나서자, 세종대왕이 말합니다. “이종무는 왜적을 정벌하여 그 성과가 작지 않아 공이 있는데 왜 그를 벌주자 하는가.” “이종무가 비록 공이 있다고 하지만 모두가 당연히 해야 될 일인데 무엇이 대단하겠습니까. 그가 상장군이 되어 군령을 실행시키지 못하고 많은 부상자를 내었으니 죄가 있습니다.” 이종무는 이러한 조정의 논의에 마음이 상했고 분하게 여기자, 이를 문제 삼아 심지어 그를 사형에 처하자는 의견까지 나올 정도였습니다.

공이 있는데 그것은 직분상 당연한 일이어서 굳이 상을 줄 필요는 없고, 잘못은 잘못이니 벌을 주어야 한다는 논리는 일리가 있으면서도 신상필벌의 원칙에 과연 부합하는지 고민하게 합니다. 가뜩이나 한정된 재화는 상을 주기 어려운 환경을 만드는데, 이러한 논리까지 더해진다면 과연 어느 누가 나서서 일을 이루고자 할지 의문입니다.

벌은 상과 달리 무한히 줄 수 있습니다. 이종무의 목숨을 거두자는 의견이 있다는 것은 벌의 끝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게 합니다. 우리나라 입법례에서도 법정형이 올라가는 개정은 있어도 내려가는 개정은 거의 보기 어렵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신상필벌에서 벌의 용이성 때문에 필벌에 주로 주목하고 상은 어쩔 수 없이 외면해 온 것은 아닌지, 고민할 지점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우리 사회에서 잘한 일은 정확히 인정받는 것인지, 그 인정의 정도는 충분한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상이란 반드시 재화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프랑스에서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의 명예가 상당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물론 나폴레옹이 창설했으므로 그 창설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논의가 있을 수 있기는 합니다만, 명예를 높여주는 것도 상의 일종이라 생각합니다. 법무관으로 복무할 때, ‘칭찬합시다’ 캠페인이 진행되었습니다. 별 것 아닌 일에도 서로 높여주고 인정해주자 분위기가 훈훈했던 기억이 납니다. 법률가로서 벌을 주는 형법적 관점만이 아닌 잘한 일에 대한 충분한 인정과 포상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도 관심 있게 보면 좋을 듯 합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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