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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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의 세상의 창
  • 법률저널
  • 승인 2006.09.15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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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영 숭실대 법대교수/변호사/시인

 

심장으로 기억해야 할 기억

 

플래시토피아(Flash Topia)라는 새로운 단어가 유행하고 있다. 플래시토피아는 플래시 메모리 기술을 통해 인류의 모든 염원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의미의 신조어이다. 플래시토피아는 또 다른 이상향의 세계가 도래할 것처럼 모두를 들뜨고 꿈꾸게 만든다. 유토피아(Utopia)는 토마스 모아의 동명소설인 유토피아에서 유래한다. 유토피아는 공산주의 경제 체제와 민주주의 정치 체제 및 교육과 종교의 자유가 완벽하게 갖추어진 가상의 이상국을 그린 작품으로, 당시 절대왕정 시대에 폭악한 왕이 지배하지 아니하는 환상적인 세상을 그린 소설이다. 하지만 토마스 모아가 꿈꾸었던 이상향은 어디에도 없다. 이로 인해 요즈음 유토피아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아니하는 이상향을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테라 시대를 열었다. 테라는 10의 12승으로 그리스의 조(兆)라는 단위에서 비롯된 단어로 1000기가의 반도체 용량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삼성전자가 40나노 32기가 낸드플래시 상용화에 성공함으로써, 앞으로 노래 8000곡을 수록하는 32기가 바이트의 MP3가 등장하고, 32기가급 메모리 하나면 인간의 하루 24시간의 기억을 1주일치나 저장할 수 있어 기억력은 필요 없이 필요한 정보를 꺼내본 뒤 선택과 판단만 하면 되는 시대가 열린다는 것이다.


8000곡의 노래를 들으려면 노래당 3분씩 잡더라도 24,000분이고, 이를 시간으로 환산하면 400시간이 걸린다. 인간의 시간은 유한한데 제공되는 정보는 무한대의 세상에 살고 있다. 더 무서운 것은 플래시토피아의 시대가 오게 되면, 인간의 기억력이 필요 없는 세상이 되고 만다는 점이다. 인간이 정보를 관리하기 위해서는 인간에게 기억력이 필요하다. 기억력은 곧 인간의 경험이고, 그러한 과거의 선험적 경험은 나중의 행위를 판단하는 힘을 제공해준다. 그런데 인간이 기억력을 상실하게 되면 치매가 온다. 노인성 치매에 걸리게 되면 가장 먼저 나타나는 증상이 자신의 실체를 잊어먹는다는 것이다. 어느 날 자신이 낯선 타인이 되어 자신의 이름을 잊어 먹고, 사랑하는 자식과 남편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 철저하게 전혀 알지 못하는 타인들에게 둘러싸인 고독한 인간이 되고 만다는 점이다. 이처럼 자신의 살아온 역사가 자신의 기억에서 지워지는 참담함이야말로 치매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도 젊은이들은 무엇인가를 애써 기억하려고 하지 않는다. 인터넷 정보망에 접속하면 세상의 모든 정보를 한 눈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까닭에 구태여 무엇인가를 애써 암기하여 자기화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젊은이들은 감각적이고 단세포적이 되어 갈 수밖에 없다. 감성에 사로잡혀 감각적으로, 즉흥적으로 살다가 정보가 필요하면 후다닥 인터넷을 연결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기 때문에 외부로부터 강제되어지는 지식의 거부 증상이 나타난다. 어른의 말에 귀 기울이려고 하지 않고 옳은 소리를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러한 심리적 증상은 기존의 권위를 부정하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청년 치매증 환자를 양산하고 있다. 치매는 노인들에게만 나타나는 질병인 줄 알았더니 요즈음은 점차 치매환자의 연령대가 낮아지고 있다는 의학보고는 흥미롭다. 한편 이러한 현상은 자신의 공간에 갇힌 채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사는 대인기피증 환자를 양산하고 있고, 이러한 증상의 환자도 수십만 명에 이를 것이라는 의학계의 보고이다.


인격은 수많은 세월 동안 축적된 경험을 통해 이루어진다. 또한 극단의 상황에 놓여 발가벗기어질 때 비로소 진면목이 나타나게 된다.


플래시토피아의 시대는 우리 생활을 여러 모로 편리하고 빠르게 변화시켜 나갈 것이다. 그렇지만 어느 날 인터넷의 통신망이 파괴되는 날, 인류는 핵전쟁보다 더 무서운 공황상태에 빠질지 모른다. 그러한 현상의 도래는 외부로부터의 침입에서가 아니라 내부로부터의 반동에 의해서 일어날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정보를 조작하는 자의 미치광이 같은 순간적 반발이 그러한 불행을 자초할 수도 있기 때문에 모든 기관들의 책임자들은 더욱 더 내부자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과학의 발달과 더불어 정신이상자들이 양산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정보를 조작하는 자가 인격파탄으로 인한 임의적 치매현상이 오지 않게 할 수 있는 교육적, 도덕적 장치가 절실하다.


삼성전자의 40나노 32기가 낸드플래시의 상용화 성공은 명실상부한 세계 제일의 반도체 선진국임을 세상에 알린 것으로 이로 인한 경제적 부가가치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부단한 노력을 통해 계속 세계의 반도체시장을 선점해 나가는 삼성전자의 기술력에 존경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그러한 기술적 우위에 걸맞는 세계일류기업으로서의 사회적 공헌에도 앞장서기를 바란다.


유토피아를 모방한 “토피아”의 남용은 모든 인류를 환상의 세계로 인도할 듯 우리를 유혹하지만, 결국은 인간 실존의 파괴만을 가져올 뿐이다. 어느 토피아도 우리에게 진정한 이상향을 제공하지는 못한다. 까닭에 우리는 더불어 사는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최소한의 염치와 예의를 알고 서로 사랑하는 것 이상의 다른 방법은 없다.


911테러가 발생한지 5년이 지났지만 이 세상은 여전히 테러의 천국이 되어가고 있다. 테러 퇴치를 위한 전쟁으로 테러의 희생자보다 더 많은 무고하고 선량한 자들이 죽어나가는 세상, 이게 바로 토마스 모아의 유토피아인가? 반도체 칩에 기억력을 방치할 일이 아니라 우리의 따뜻한 심장에 우리의 소중한 기억들을 저장하는 지혜가 필요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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