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57-‘너의 로스쿨’을 읽고
상태바
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57-‘너의 로스쿨’을 읽고
  • 손호영
  • 승인 2022.02.11 11: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너의 로스쿨>을 설 연휴 기간 읽어보았습니다. 선배가 “로스쿨의 현실을 잘 알려주는 것 같다.”고 하여 일부러 찾아본 책입니다. 읽은 뒤 선배의 ‘잘’이라는 표현은, ‘솔직하게’나 ‘숨김없이’의 다른 표현이었던 듯싶습니다. 돌이켜보면, ‘솔직하게’나 ‘숨김없이’ 앞에 강조하는 부사를 넣어도 무방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무척’이라든지, ‘너무’라든지 아니면 ‘무척, 너무’ 둘 다 넣어도 될 것 같습니다.

<너의 로스쿨>은 로스쿨의 실상을 소개하고 알려주는 실용서이기도 하면서,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엮어 표현한 에세이이기도 하면서, 여러 등장인물이 등장하여 그들의 캐릭터와 에피소드까지 곁들여주고 심지어 복선(?)까지 등장하니 소설로서 받아들일 수도 있는, 한 마디로 정체를 가늠하기 어려운 책이었습니다. 어쩌면 그 정체의 모호성이 재미나 흥미를 배가시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밤잠을 미루면서 읽다니, 요즘의 저로서는 드물었던 열독이었습니다.

<너의 로스쿨>을 읽으며 인상 깊었던 장면을 위주로 독후감을 적어보고자 합니다. 간간이 저 자신의 경험과 비교해보거나 말을 덧붙여보는 것은 스스로 기억을 되새김하거나 생각을 가다듬는 것이니 너무 탓하지는 말아주시길.

<너의 로스쿨>에서는 ‘독일의 혹독한 겨울’을 거친 박사학위를 받은 교수님이 학생의 교재에 적힌 ‘사시 폐지 확정’이라는 문구를 호기심 있게 바라보며 로스쿨생에게 어떤 의미인지 묻는 장면이 나옵니다. 대답은 전혀 의외의 것으로, 면소판결 사유인 ‘사면, 공소시효 완성, 법률폐지, 확정판결’을 의미하는 두문자(頭文字)라는 것이었습니다(형사소송법 제326조 참조). 그러자 교수님은 길길이 성을 내며, 왜 그렇게 공부하는지, 이렇게 공부할 거면 로스쿨에는 왜 왔는지, 법학이 장난인지 분노를 쏟아냅니다. 그러나 저자는 시험에 적합한 두문자 공부법이 무슨 잘못인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나아가, 자신들의 진정한 스승은 사실 교수님들이 아니라 학원강사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두문자 공부법의 전통은 유구하고, 교수님들보다 학원강사들에 기대는 수험생의 모습도 지난 때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저도 수험생 시절 판례요지를 답안지에 현출하기 위해서 여러 두문자를 고안하고 외웠던 기억이 납니다. 입력하는 대로 바로 출력되지 않는 이상, 출력의 단서로 두문자를 마련하고자 했던 것이었습니다. 물론 교수님이 지적하시는 지점은, 단순한 암기보다는 정확한 이해가 중요하다는 말씀이셨을 것이니, 그 또한 가볍게 여길 수는 없겠습니다.

제가 교수님들께 정작 아쉬웠던 점은 질문하기가 어려웠다는 점에 있었습니다. 대학에서 만난 교수님은 고등학교 때 함께 있었던 선생님과 분명 달랐고, 질문을 하기 전 미리 공부를 해야 부끄럽지 않을 수 있었달까요. 그래서 나름대로 해법을 찾았는데 그것이 오히려 저에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지난 칼럼 중 <판례스터디의 추억>, <롤모델의 중요성>에서 이야기했듯, 질문을 정리한 뒤, 열람실에 구비되어 있던 주석서를 꺼내서 찾아보면 대체로 해결이 다 되었고, 미처 생각 못 한 쟁점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판례나 논문을 조금 더 찾아보는 한편, 주변에 물어보며 함께 생각해보았습니다. 만약 여전히 해결되지 않으면 ‘이건 지금 수준에서는 몰라도 되나 보다.’하고 넘어갔던 기억이 납니다.

법학에서 학문과 실무는 처음에는 멀리 있는 듯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연차가 쌓일수록 이 둘은 함께 간다는 생각도 듭니다. 실무에서 고민이 되는 쟁점을 깊이 있게 다루는 것이 곧 학문이고, 그 학문의 성과가 반영되어 실무가 개선될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법학이 실용학문임을 인정한다면, 학문과 실무는 떼려야 뗄 수 없을 것입니다. 제가 뒤늦게 일반대학원에 진학한 이유도 법을 좀 더 진지하게 접근하고자 했던 까닭이 컸고, 박사학위를 취득하면서 얻게 된 사유의 방법 등은 실무에서도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물론 각 시기별로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일 것은 당연하니,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책에서 학원 강사가 말합니다. “여러분, 부디 꼭 합격하세요. 그리고 저한테 연락 안 해도 돼요. 저와 마주치지 않으면 전 다 합격했다고 생각할게요. 그러니 저와 마주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일이에요.” 다시 만나면, 혹여 더 열심히 가르치지 않은 자신 때문일까, 자신을 원망하지는 않을까 두렵고 미안해서, 모두가 합격하길 바라는 그의 말의 울림이 큽니다. 변호사시험을 마무리하는 저자는 스스로를 이렇게 묘사합니다. “없는 힘까지 짜내어 한계를 넘어선다...그렇다. 이제 정말 끝났다.” 그리고 변호사 시험 합격 발표를 앞에 두고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수고했어, 고마워.” 수험생활을 겪은 이들이라면 모두가 깊이 공감하지 않을까 합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