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52-전파가능성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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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52-전파가능성 이론
  • 손호영
  • 승인 2021.12.31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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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여인은 같은 마을 주민인 다른 이에게 큰 소리로 소리칩니다. “저것이 징역 살다 온 전과자다.” 이 소리를 들은 사람은 여인의 남편과 피해자의 친척인 또 다른 사람입니다.

검사는 여인이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했다고 보아 기소하였고, 1심, 2심은 모두 유죄로 인정합니다. 그러나 여인은 무죄를 주장합니다. 여인의 남편은 이미 피해자의 전과 사실을 알고 있었고, 피해자의 친척이 이런 말을 들었다 해도 그 말을 전파할 가능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형법 제307조 제1항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를 처벌하는데, 전파가능성이 없으니, 공연성이 부정되고, 따라서 그에게 명예훼손죄는 성립되지 않는다는 주장입니다.

대법원은 간단한 사안을 심도 있게 검토합니다(대법원 2020도5813 전원합의체 판결). 쟁점을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 대하여 전파될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도 명예훼손죄의 공연성을 인정하는 확립된 대법원 판례의 유지 여부’로 정합니다. 그리고 ‘판례를 유지하더라도 이에 관한 기존의 대법원 판례를 재검토하고, 공연성의 판단 기준이나 적용 범위를 합리적으로 제한할 수 있는 법리를 같이 살펴보기’로 합니다.

대법원은 그동안 명예훼손죄의 공연성을 ‘전파가능성’ 관점에서 살펴봅니다. 즉, 소수의 사람에게 사실을 적시하였더라도 그 상대방이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적시된 사실을 전파할 가능성이 있는 때에는 공연성이 인정된다고 봅니다. 단 한 사람에게 사실을 유포했어도 그에게 전파가능성이 있다면 공연성 요건이 충족된다고 본 것입니다.

그러나 전파가능성 법리는 비판을 받아 왔습니다. 전파가능성 여부를 판단하는 객관적 기준이 존재할 수 있을지, 따라서 해당 기준을 적용하는데 자의가 개입되는 것은 아닌지, 결과만으로 행위자에게 무거운 책임을 인정하는 것은 아닌지 등이 그 근거였습니다.

대법원 다수의견은 전파가능성 법리가 그동안 구체적 판단 기준이 발전되어 왔다고 봅니다. 즉, “공연성의 존부는 발언자와 상대방 또는 피해자 사이의 관계나 지위, 대화를 하게 된 경위와 상황, 사실적시의 내용, 적시의 방법과 장소 등 행위 당시의 객관적 제반 사정에 관하여 심리한 다음, 그로부터 상대방이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전파할 가능성이 있는지 여부를 검토하여 종합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발언 이후 실제 전파되었는지 여부는 전파가능성 유무를 판단하는 고려요소가 될 수 있으나, 발언 후 실제 전파 여부라는 우연한 사정은 공연성 인정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소극적 사정으로만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전파가능성 법리에 따르더라도 위와 같은 객관적 기준에 따라 전파가능성을 판단할 수 있고, 행위자도 발언 당시 공연성 여부를 충분히 예견할 수 있으며, 상대방의 전파의사만으로 전파가능성을 판단하거나 실제 전파되었다는 결과를 가지고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특정 소수에 대한 사실적시와 관련하여 다양한 제한 법리가 확립되어 왔다는 이유로 전파가능성 법리가 유지됨이 타당하다고 합니다.

이에 따라 이 사건에서 ‘전과자’라는 사실은 피고인이 공개하기 꺼리는 개인사인 것으로 주변에 회자될 가능성이 큰 점, 친척 관계라는 이유만으로 전파가능성을 부정할 수는 없는 점, 공개된 장소에서 큰 소리로 말한 점 등을 근거로 공연성이 인정된다고 합니다.

반대의견은 명예훼손죄에서의 공연성은 전파가능성을 포섭할 수 없다고 봅니다. 무엇보다 ‘공연히’라는 문언을 해석하는데, 국어사전에 따르면 이는 ‘세상에서 다 알 만큼 뚜렷하고 떳떳하게’라는 뜻임을 파악합니다. 그런데 이 뜻을 아무리 확장해도 소수의 친구나 직장동료 등에게 사적으로 말한 것이 ‘세상에서 다 알 만큼 뚜렷하고 떳떳하게’ 또는 ‘숨김이나 거리낌이 없이 그대로 드러나게’ 발언한 것이라고 볼 수 없음을 지적합니다. 그동안 대법원이 전파가능성을 이유로 공연성을 인정한 것은 사적 관계에서 이루어진 대화도 포함되는데, 심지어 상대방으로부터 비밀을 지키기로 하는 약속을 다짐받고 은밀히 한 대화에서도 공연성이 인정됩니다. 반대의견은 이러한 판단은 지나치다고 보는 것입니다.

또한 전파가능성 유무를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 기준을 설정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도 지적합니다. 수십 년 동안 축적된 판결을 귀납적으로 살펴보아도 여전히 명확하지 않고, 유사한 사안에서도 다른 결론이 이루어진 것을 보면, 그러한 점을 명확히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하여 다수의견의 보충의견은 반대의견의 논리에 재반박합니다. 보충의견은, 반대의견의 논리가 자칫 전파가능성 법리가 마치 사적 대화를 처벌하기 위하여 고안된 것처럼 보이게 한다며, 이는 전파가능성 법리에 대한 잘못된 전제 내지 오해라고 합니다.

이외에도 다양한 논거들이 제시되면서 다수의견, 반대의견, 다수의견의 보충의견이 서로 치열하게 논리를 전개해나갑니다. 심도 있게 전개된 내용과 이론적 근거는 일독하고 새겨둘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판결에서는 그동안 축적된 선례를 살펴 공연성의 제한 법리를 정리하였고, 이로써 하급심 재판 실무에 상당한 도움을 줄 것으로 보입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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