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아들을 아버지가 양자로 삼을 수 있을까? 대법원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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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아들을 아버지가 양자로 삼을 수 있을까? 대법원 “가능”
  • 이성진 기자
  • 승인 2021.12.23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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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심 “가족질서·친족관계 등 혼란 자초...” 조부모 청구 기각
대법 전합체 “목적과 요건 등 따져 아이에 유익하다면 허용”

[법률저널=이성진 기자] 손자의 복리에 우선적으로 부합하고 입양의 요건도 갖춘다면 조부모가 손자를 양자로 삼을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일부 대법관의 반대의견이 있지만, 다수 대법관의 의견은 여러 상황을 따져 볼 때, 외손자(딸의 자식)에게 유익하다면, 같은 항렬에 해당하는 딸의 동생으로 호적에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23일 A씨 부부가 외손자를 입양하겠다며 낸 미성년자 입양 허가 청구소송 상고심(2018스5)에서 입양을 불허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울산지법으로 이송했다.

재판관 다수(10명)는 “미성년자에게 친생부모가 있는데도 그들이 자녀를 양육하지 않아 조부모가 손자녀의 입양 허가를 청구하는 경우, 입양의 합의 등 입양의 요건을 갖추고 입양이 자녀의 복리에 부합한다면 허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사건 본인(외손자)의 친생모가 생존하고 있다고 해서 재항고인(조부모)들의 외손자 입양을 불허할 이유가 될 수 없다”며 “입양으로 가족 내부 질서나 친족관계에 혼란이 초래될 수 있더라도, 구체적 사정에 비추어 입양이 외손자에게 더 이익이 된다면 허가해야 한다"고 했다.
 

재판부에 따르면 A씨의 딸 B는 고등학교에 다니며 아들 C를 낳았다. B는 C가 태어나기 전 혼인신고를 했지만 출생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협의 이혼을 했다. 법적으로 B가 C의 친권·양육자다.

C가 생후 7개월이 될 무렵, B는 양육이 어렵다며 A씨의 집에 아이를 두고 갔다. A씨 부부는 그간 C를 키워왔고 C는 A씨 부부를 부모로 알고 지내왔다.

C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시기가 되자 A씨 부부는 이참에 C를 입양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B는 입양에 동의했으나 1·2심 법원은 A씨 부부의 청구를 받아주지 않았다.

아이 C의 친생모(B)가 생존한 상황에서 입양이 이뤄지면 외조부모(A씨 부부)가 부모가 되고, B는 C의 어머니이자 누나가 돼 가족 내부 질서와 친족관계에 중대한 혼란이 초래된다고 본 것이다.

사건을 다시 심리한 대법원은 대법원장 등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서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논의했다.

다수 의견 대법관들은 “민법과 유엔아동권리협약, 입양특례법 규정 등을 고려하면 가정법원이 미성년자의 입양을 허가할 것인지 판단할 때 ‘입양될 자녀의 복리에 적합한지’를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애초 민법은 존속을 제외하고는 혈족의 입양을 금지하고 있지 않고, 조부모가 손자녀를 입양해 부모·자녀 관계를 맺는 것이 입양의 의미와 본질에 부합하지 않거나 불가능하다고 볼 수 없다는 점이 근거다. 또한 조선 시대 이래의 전통이나 현대 해외 사례를 보더라도 혈족 입양을 허용하는 예가 많았다고도 봤다.

대법원은 조부모의 손자녀 입양을 허락할 때 따져야 할 요건도 제시했다. 조부모가 단순한 양육을 넘어 양자로서 신분적 생활관계를 형성하려는 실질적 의사를 가졌는지, 입양의 주된 목적이 자녀의 영속적 보호를 위한 것인지 등을 살피고, 친생부모가 재혼이나 국적 취득 등 다른 혜택을 노린 게 아닌지도 보라고 했다.

아울러 관련 정보를 친생부모에게 충분히 제공하고, 입양 자녀가 13세 미만이라도 적절한 방법으로 의견을 청취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와 달리, 조재연·민유숙·이동원 대법관은 자녀 복리가 우선이라는 점에 동의하면서도 “직계혈족인 조부모가 손자녀를 입양하는 것은 혈연관계가 존재하지 않음에도 법률에 따라 친자관계를 인정하는 법정 친자관계의 기본적인 의미에 자연스럽게 부합하지 않는다”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이들은 “조부모가 후견인으로 자녀를 양육하는 경우 친생부모가 다시 친권·양육권을 회복할 수 있다”며 “조부모는 친생부모의 자녀 양육을 지지하고 원조할 지위에 있는데도 조부모가 입양으로 부모의 지위를 대체하고 친생부모의 지위를 영구박탈 하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과 관련, 미성년자에게 친생부모가 있는데도 그들이 자녀를 양육하지 않아 조부모가 손자녀에 대한 입양허가를 청구하는 경우에도 ▲입양의 요건을 갖추고 ▲입양이 자녀의 복리에 더 부합한다면 입양을 허가할 수 있음을 처음으로 밝힌데 큰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

특히 구체적인 사정에 대한 심리나 고려 없이 가족내부 질서나 정체성 혼란, 현재 양육에 지장이 없음만을 이유로 입양을 불허해서는 안 되고, 조부모 입양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입양허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기준과 고려 요소를 상세하게 제시했다고 밝혔다.
 

현행 입양관련 민법 조문 중 일부 / 법제처 법령검색
현행 입양관련 민법 조문 중 일부 / 법제처 법령검색

한편, 대한민국 입양제도는 민법 제정 시부터 성년자와 미성년자의 입양을 구별하지 않고, 당사자 사이의 입양 합의와 부모의 동의가 있으면 입양 신고로 성립했지만 2012년 민법 제867조가 개정되어 미성년자 입양 시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일반 입양이 되면, 양자는 양부모의 친생자와 같은 지위를 가지고 양부모가 친권자가 되지만, 입양 전 친족관계는 그대로 존속하고 친생부모와 부모·자녀관계도 유지된다.

이와 별도로, 친양자 입양도 허락하고 있다. 2005년 민법 개정 시 신설된 것으로 가정법원의 입양허가를 받아야 하고, 파양이 엄격히 제한된다. 일반양자와 달리, 양자와 친생부모의 관계가 단절되고 양부모의 성·본을 따르는 등 양자가 입양가족의 구성원으로 완전히 편입·동화되는 형태다.

또한, 입양특례법에 따른 입양도 가능하다. 입양특례법은 시설에 있는 요보호아동의 입양에 관한 민법의 특별법으로, 입양 시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출산 후 1주일이 지나야 입양동의가 가능하고(입양숙려제), 양부모의 자격 요건이 강화되어 있으며, 입양아동의 입양정보공개청구권이 인정된다. 입양이 되면 친양자 입양과 같은 효력을 갖는다.

국제적으로는 유엔의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UN Convention on the Rights of the Child, 1989)에서도 입양제도를 두고 있다.

1989년 유엔은 법적 구속력을 가진 최초의 협약인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만장일치로 채택, 그 후 단기간에 190개국 이상이 가입·비준한 것으로 아동에 관해 법적 구속력 있는 보편적인 국제규범이다.

대한민국도 1990년 서명·가입, 1991년 비준함으로써 이 협약은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갖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의 아동 관련 법령이 크게 개선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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