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훈타 체제(Junta regime)’ 관점에서 본 여자배구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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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훈타 체제(Junta regime)’ 관점에서 본 여자배구 사태
  • 신희섭
  • 승인 2021.12.02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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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원장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원장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IBK기업은행 여자배구단 사태로 한국 여자배구는 확실히 도쿄 올림픽 때와 분위기가 다르다. 간만에 여자배구 팬들이 늘어나는 것이 아닐까 했던 희망이 맥없이 꺾이고 있다. 올림픽 경기 때 김연경 선수의 투혼에 감동하고 눈물을 흘리던 팬들은 냉담해지고 있다.

이 사태를 두고 젊은 층에서는 ‘쿠테타’라고 명명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성공한 쿠데타’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선수와 코치가 현 감독을 교체해버리는 권력 찬탈에 성공한 것이다. 젊은 세대들이 이 사태를 ‘쿠테타’로 덧씌우는 것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던 한국 정치의 데자뷔 때문일 것이다. 실제 이번 사태는 1960년대 전세계적으로 유행한 군부권위주의체제(Junta regime)를 떠올리게 한다. 여자 배구단 사건이 어떻게 역사를 소환하는지 보자.

먼저 배구단 이야기는 이렇다. 이번 시즌 배구리그가 시작하고 얼마 안 되어 1승 7패로 성적이 나쁜 IBK 기업은행 여자 배구단의 주장인 조송화 선수는 질책하는 서남원 감독과의 불화를 이유로 팀을 이탈했다. 그런데 문제는 김사니 코치가 같이 무단이탈을 했다는 것이다. 팀은 연패 중인데, 프로선수와 프로 코치가 이탈하는 전례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팬들을 더 화나게 만든 것은 기업은행 구단의 대응이다. 구단은 서남원 감독과 윤재섭 단장을 동시에 해임했다. 팀을 이탈한 것은 주장과 코치인데 잘린 것은 감독과 단장이다. 한술 더 떠서 구단은 문제를 일으킨 장본인인 김사니 코치를 감독대행으로 승격시켰다. 게다가 이 사태의 발단인 주장선수도 징계받지 않고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감독이 경질되자 고참 선수들은 달라진 경기력을 보였고, 경기에서 승리했다. 팬들은 이들이 공모관계인지 마저 의심하고 있다.

이후 행동은 팬들의 분노에 제대로 기름을 부었다. 팬들의 항의에 김사니 코치는 ‘사퇴’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후 자신은 코치로 남을 것이라고 밝혀, 이미 누군가 후임 인사를 결정한 것을 추정케 했다. 구단은 경질된 감독에 대해 잔여 연봉을 주지 않겠다고 했다가 말을 바꾸었다. 구단의 일방적 경질일 경우 계약 기간의 잔여 연봉을 지급해야 하는 협회규정에 발목이 잡힌 것이다.

가장 팬이 많고 팬층이 두꺼운 것으로 유명한 IBK 기업은행 팬들은 행동에 나서기 시작했다. 트럭을 동원한 것이다. 응원용 밥차 대신 항의 트럭이 경기장을 찾았다. 그러자 구단은 경기장에 “구단과 합의되지 않은 현수막, 비방을 목적으로 하는 모든 표현물은 반입을 금지한다”라는 문구를 안내하였고, 입장 관중의 가방검사를 했다고 한다. 가방검사!

나는 배구계를 잘 모른다. 여자배구계 내부의 생리는 더 모른다. 하지만, 이 사태를 보고 있으면 1960년대의 흔타 체제(Junta regime)라고 불리던 쿠데타의 시대가 생각난다.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를 중심으로 다른 사회보다 교육수준이 높고 선진제도를 구축한 군부가 미국과 같은 외부세력의 지원에 힘입어 선거를 거부하고, 군대를 앞세워 권력을 찬탈하였다. 쿠데타 당시 명분은 ‘사회개혁’이었다. 그 후엔 ‘실적에 의한 정당성’으로 간판으로 바꿨다. 이렇게 성공한 쿠데타로 수많은 나라가 군부권위주의체제인 ‘훈타 체제(Junta Regime)’시대를 열었다.

이번 사태가 명확한 쿠데타 개념을 이용한 정교한 정치학적 분석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예상하기 어려운 비제도적인 방법과 권력정치를 사용해서 기존 지도부를 뒤집었다는 점에서 쿠데타와 유사하다. 게다가 선수와 지도자들로 구성된 배구계와 달리 외부세력인 ‘구단’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승인된 쿠데타’를 저지른 것도 유사하다. 내부에 공모자와 수동적 지지자와 방관자 등등이 있다는 점도 그렇다.

그런데 이 사태의 결과는 1960년대 훈타 체제의 결과와 같지는 않을 것이다. 크게 세 가지 때문이다. 첫째, 공정성 담론을 무시할 수 없다. 이 사태를 지켜보는 팬들과 주변 동료들은 이 사태를 이해할 수 없다. 스포츠 빅데이터 전문기업인 티엘오지의 분석에 따르면 IBK 기업은행 팬의 56%가 MZ 세대이고, 다른 팀과 달리 여성 팬의 비율이 58%나 된다. 이들이 같은 목소리를 내는 한 세대고, 특정 성별이 더 공정성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체로 다른 세대보다는 ‘공정성’의 요구가 높다. 그래서 이들은 결집력도 좋고 행동도 빠르다.

둘째, 주변 행위자들의 ‘평판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이 팀의 팬뿐 아니라, 배구계가 던지는 평판은 단지 IBK기업은행 여자배구팀만으로 한정되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 국회 금융위원회에서 기업은행 운영이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또한,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의 행장에 대한 문책론까지 나오고 있다.

셋째, 외부지원세력이 언제까지 뒷배가 될지 알 수 없다. 냉전기 미국과 소련이 양극의 정치에 따라 피후원자들을 빠르게 손절 했던 것처럼, 구단도 구단의 정치가 있다.

이 사태의 정확한 내막이야 알 수 없다. 이것으로 스포츠계 전체를 싸잡아서는 안 된다. 또한, 스포츠계의 여성 지도자 문제로 확대해석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팀 내에서 선수, 코치, 구단의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은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오랜만에 배구장을 찾은 팬들 모두 떠날 것이다. 극단적으로는 배구계란 생태계가 고사할 것이다.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원장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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