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48-요건사실과 주장·증명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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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48-요건사실과 주장·증명책임
  • 손호영
  • 승인 2021.12.02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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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 광장에 군중들이 모여 한 건물 벽면으로 공이 굴러내려오는 장면을 보면서 새해맞이 카운트다운을 외치는 것으로 유명한 새해맞이 행사에 올해는 백신 접종을 완료한 사람들만 참가할 수 있다고 빌 드 블라시오 뉴욕시장이 밝힌 것으로 미 뉴욕타임스(NYT)가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NYT는 뉴욕시가 지난해 축소해 열렸던 타임스퀘어 새해맞이 행사를 올해는 원하는 사람 모두가 참석할 수 있는 예년 규모로 치르기로 했다면서 단 참가자들은 백신 접종을 완료했다는 증명을 제시해야 한다고 전했다(뉴시스 2021. 11. 17.자).”

뉴스에서 법적 쟁점이나 단서를 뽑아보는 일은 제법 흥미롭습니다.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 광장 새해맞이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참가를 원하는 사람이 백신 접종을 완료했다고 증명’해야 한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 법률가로서는 ‘증명’이라는 단어에 눈이 갑니다. 실제로 백신 접종을 완료했다 하더라도 이를 증명하지 못한다면 새해맞이 행사에 참여할 수 없다는 뜻일 텐데, ‘진실’도 중요하지만 ‘진실이 드러나는 과정’ 또한 중요함을 새삼 일깨워줍니다.

법학에서는 이를 ‘증명책임’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원고는 ‘일정한 권리 또는 법률관계의 존재(또는 부존재)’를 주장합니다. 뉴스의 사안에 따르면 ‘새해맞이 행사에 참여할 권리’가 되겠습니다. 법원은 원고가 주장하는 권리가 발생되었는지, 발생되었다면 그 후 그 권리가 소멸한 것은 아닌지, 혹시 그 소멸되는데 장애사유는 없는 지등의 과정을 거쳐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일정한 권리 또는 법률관계가 존재(또는 부존재)’하기 위해서는, 어떤 요건(要件)이 필요한지 명확히 미리 정해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발생요건을 법학에서는 ‘법률요건’ 또는 ‘구성요건’이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요건 자체가 아니라 그 요건을 충족시키는 구체적 사실이 존재하느냐입니다. 법학에서는 이 구체적 사실을 ‘요건사실’이라 합니다. 뉴스의 사안에서는 ‘백신 접종을 완료했다.’가 요건사실에 해당하겠습니다.

그런데 ‘소송상 어떤 요건사실의 존재가 불분명하게 됨으로써 문제된 법률효과가 발생하지 않는 불이익 내지 위험’, 즉 증명책임을 미리 누구에게 지울지 정해두어야 합니다. 뉴스의 사안에서, ‘당국이 참가자들의 백신 접종 미완료를 증명해야 한다.’고 하지 않고, ‘참가자가 백신 접종 완료를 증명해야 한다.’고 정해진 것은 증명책임을 참가자들에게 건넨 셈입니다.

요건사실에는 주장책임도 문제됩니다. 어떤 요건사실에 대한 주장이 없다면, 증거로 요건사실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법원은 요건사실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변론주의 원칙 때문입니다.

“먼저...이 사건 임야가 과연 원고...의 상속재산이라고 할 수 있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이 점은 바로 이 사건 청구의 권원이 되는 사항...따라서 이는 원고가 주장·입증하여야 할 사항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이 점에 관하여 원고(의)...주장에 일관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주장 내용에 있어서도...극히 막연한 내용의 주장만을 되풀이하고 있다...원고가 그 주장책임을 다하였다고 볼 것인지부터 의문이 아닐 수 없다(대법원 90다카28221 판결).”는 판결은 바로 이러한 점을 나타내줍니다.

주장책임과 변론주의는 판사와 변호사들 사이에 바라보는 관점이 조금 다르기도 합니다.

“서울중앙지법과 춘천지법, 수원지법 판사를 거쳐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재직했(던)...민 변호사는 “(변호사의) 적극적인 도움이나 조력이 없어 필요한 증거를 제출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판사로서 답답함을 느꼈다”며 “어떤 증거가 필요한지 보이는 상황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서울경제 2021. 4. 7.자).”

“얼마 전 법정에서 재판 중 생긴 일이다. 판사가 입증을 못하는 상대방에게 ‘너무도 친절하게’ “아무개 증인을 신청하든지 아니면 사실 확인서를 받아 오라”면서 변론을 진행한 사실이 있다. 재판을 마치고 얼굴이 붉어진 의뢰인이 내게 볼멘소리를 던졌다. “판사님이 너무 상대방 편만 드는 것 아닌가요?” 순간 나는 “그런 것은 아니다”라고 애써 의뢰인을 안심시켰지만 뭔지 모를 불편함이 며칠이 지난 지금껏 가슴 한구석에 남아 있다(법률신문 2013. 11. 18.자).”

서울변회는 간담회에서 서울중앙지법에 ‘적정한 소송지휘권행사 및 변론주의 위반행위 지양’을 요청하기도 하였고, 서울중앙지법 측은 ‘과도한 석명권 행사나 증인신문절차에서의 소송지휘 등으로 변론주의 위반 우려가 생기지 않도록 재판장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겠다.’는 답변을 하기도 하였습니다(법률신문 2017. 5. 25.자).

진실도 중요하지만, 이를 좇는 과정도 중요합니다. 백신을 접종했다 하더라도 이를 증명하지 못하면 새해맞이 행사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처럼, 요건사실을 주장·증명하지 못하면, 자신의 권리를 얻거나 확인받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건에서 주장·증명해야 하는 요건사실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 되므로, 요건사실론은 민사법에서 기초가 된다고 하겠습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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