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40-육하원칙의 속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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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판사의 판례 공부 40-육하원칙의 속내
  • 손호영
  • 승인 2021.10.08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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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기사를 작성할 때 필수로 들어가야 하는 요소로는 6개가 꼽힙니다. 누가(who), 언제(when), 어디서(where), 무엇을(what), 어떻게(how), 왜(why)와 같은 6개의 어떠한(何, 하)을 모았을 때, 정보가 온전히 담아진다고 봅니다(5W1H, 육하원칙). 사법연수원에서 배운 문장구성법은 조금 달랐습니다. 주어-시간-상대방-목적어-행위 순으로 문장을 작성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였습니다. 예컨대, “원고는(주어) / 2017. 1. 20.(시간) / 피고에게(상대방) / 위 대부료를(목적어) / 모두 납부하였다(행위).”(대법원 2019다269385 판결)와 같은 식입니다.

육하원칙의 ‘누가’는 주시상목행의 ‘주어’와, ‘언제’는 ‘시간’과, ‘무엇을’은 ‘목적어’와, ‘어떻게’는 ‘행위’와 대체로 일치합니다. 육하원칙에서는 주시상목행의 ‘상대방’ 개념이 포함되었는지 모호하고, 주시상목행에는 육하원칙의 ‘어디서’와 ‘왜’가 슬며시 빠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두 곳에서 모두 중복되는 ‘누가(주어)’, ‘언제(시간)’, ‘무엇을(목적어)’, ‘어떻게(행위)’는 사실관계의 핵심이라는 결론은 무리가 없다고 할 것인데, 다만 ‘상대방’, ‘어디서’와 ‘왜’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고민이 됩니다.

우선 핵심적 요소로 볼 수 있는 부분부터 살펴보기로 합니다. ‘누가(주어)’는 두말할 나위 없이 사실관계의 시작입니다. 문제되는 사건에서 한 명이 등장할 때는 별다른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두 명, 세 명의 이름이 나올 때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컨대, A가 B와 매매계약서를 쓰는데, A가 X의 이름으로 작성합니다. 이 경우에 ‘누가(주어)’를 ‘(명의자는 X임에도 불구하고) A’로 해야 할지, 아니면 ‘(행위자는 A임에도 불구하고) X’로 해야 할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계약당사자 확정 문제). 문장의 첫 단계를 밟고자 하는 데에도 만만치가 않습니다. 신문기사나 법률문장이 아니어도 마찬가지입니다. 희곡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 Cyrano de Bergerac)에서, 록산느(Roxane)는 크리스티앙(Christian)의 이름으로 된 편지를 받습니다. 컬러풀한 미사여구가 담긴 뜨거운 편지입니다. 그러나 이는 사실 시라노(Cyrano)가 글솜씨가 없는 크리스티앙 대신 써준 것입니다. 그렇다면 위 희곡을 요약할 때, 문장의 출발은 ‘시라노는’으로 되어야 합니다.

시간은 일방향으로 흐르고, 거꾸로 가지 않습니다. 따라서 사실관계를 파악할 때 시간순으로 정리하여, ‘언제(시간)’를 파악하게 되면, 인과관계나 상관관계의 실마리를 얻게 되고, 이에 따라 사건의 전모를 대략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종종 특정 문서의 날짜를 소급해서 작성하는 경우가 발견됩니다. 이처럼 시간에 혼동이 발생할 수 있는 경우, 형식적으로 기재된 날짜와 다른 실제 시간을 제대로 확정하기만 하면 의외로 사건이 잘 보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다시 희곡으로 돌아와 문장을 이어 나가봅니다. 시라노는 크리스티앙의 전사 이후 수녀원에 칩거한 록산느를 매주 방문합니다. 그 기간은 장장 15년입니다. ‘시라노는 15년 동안’

‘무엇을(목적어)’과 ‘어떻게(행위)’는 사실관계의 구체적 양태입니다. 새로운 수법이 등장할 때 특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중고차량 불법 판매에 대하여, 대법원은 거짓말로 손님을 사무실로 유인하고, 허위 중고차량을 보여주며 매매계약을 유도하는 등 소위 ‘뜯플’ 또는 ‘쌩플’이라는 방식을 설명하는데(대법원 2019도16263 판결), 바로 ‘무엇을(목적어)’과 ‘어떻게(행위)’를 구체적으로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희곡에서 시라노는 록산느에게 크리스티앙 대신 편지를 썼고, 크리스티앙의 전사 이후에는 수녀원에 있는 록산느를 찾아갔습니다. 다만 편지의 장본인이 자신이라는 점은 드러내지 않습니다. 정리하면, ‘시라노는 15년 동안 행적을 숨긴 채 다가갔다.’가 되겠습니다.

이제, ‘상대방’, ‘어디서’와 ‘왜’의 의미를 생각해볼 차례입니다. 법적인 관점에서는 ‘사람과의 관계’가 어떠한지를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기사에서는 주목하지 않는 ‘상대방’을 강조하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어디서’는 법적인 관점에서 사건별로 다르게 보아야 할 것입니다. 다만 앞서 본 2019다269385 판결의 문장과 같이 대부료 납부에서 장소는 크게 중요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므로, 생략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상대방을 추가하고, 어디서를 생략하는 방식으로, 다시 희곡의 빈 문장을 채워봅니다. ‘시라노는 15년 동안 행적을 숨긴 채 록산느에게 다가갔다.’

마지막으로 ‘왜’입니다. 기사에서는 ‘왜’를 전면에 내세우지만, 법률문장에서는 자제합니다. 주관적 의사이기 때문에, 이를 단정하기보다는 여러 증거와 사정을 살펴보고 이를 추론해나가야 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신중한 태도라고 할 것입니다. 다만 앞서 작성한 희곡의 문장은 완성해도 될 것 같습니다. 우리는 시라노의 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라노는 15년 동안 행적을 숨긴 채 록산느에게 다가갔다.’에 추가할 구절은, ‘사랑했지만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입니다. 시라노의 안타까운 마음이 록산느에게 닿았을까요. 절절한 시라노를 육하원칙과 주시상목행의 원칙에 맞추어 한번 요약해보았습니다.

손호영 서울회생법원 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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