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우리의 노마드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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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우리의 노마드랜드
  • 안혜성 기자
  • 승인 2021.07.30 10: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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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저널=안혜성 기자] 얼마 전 치러진 5급 공채 2차시험을 취재하기 위해 장시간 이동을 하게 된 덕에 오랜만에 독서의 기회를 가졌다. 이번에 선택한 책은 지난해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비롯해 수많은 영화제에서 큰 상을 수상한 ‘노마드랜드’의 원작이다. 영화는 아직 보지 못해서 어떤 식으로 구성이 됐는지 모르겠지만 책은 소설이 아니라 르포르타주(reportage)다.

저자인 제시카 브루더는 ‘노마드’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경험을 책 속에 담았다. 이 책에서 ‘노마드’는 집세와 대출을 감당할 수 없는 하우스(house)에 사는 대신 자동차를 홈(home)으로 삼아 여기저기를 떠돌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책 전반을 통해 가장 심도 있게 자주 등장하는 인물은 린다이지만 그 외에도 수많은 이유로 길 위의 삶을 선택한 노마드들의 이야기가 소개된다. 이들 대부분은 이미 은퇴할 나이를 넘긴 이들이지만 자동차에서 거주하며 강도 높은 육체노동으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아마존의 물류창고에서 일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사탕무 농장의 인부로, 캠핑장 관리인으로, 놀이공원 종업원으로 계절과 시기에 따라 직업을 바꿔가며 길 위의 삶을 살아간다. 비슷한 종류의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직업을 가져본 사람들이라면 알 것이다. 위에 열거된 일들은 한창 때의 젊은이들도 견디기 힘든 고강도 노동이라는 것을.

미국은 땅이 넓어서 어느 지역에 있느냐에 따라 가혹한 날씨와 환경을 어느 정도는 피할 수 있겠지만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일은 길 위의 삶에서도 제약이 된다. 아마존 창고 근방의 주차장에서 추운 날씨에 벌벌 떨며 보내는 밤, 얼어버린 수도관을 녹이기 위한 온갖 시도들, 비가 들이치는 천정의 틈새는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하지만 노마드들이 극복해야 할 가장 큰 난관은 가난과 환경, 육체적 불편이 아니라 스스로의 마음속에 있지 않았을까 싶다. 책을 읽으면서 ‘만약 내가 이런 상황이라면?’이라는 의문을 몇 번이나 떠올려봤다. 남들과 달리 안정적인 삶의 기반을 만들어두지 못하고 길 위를 떠도는 스스로를 창피하게 여기지 않을 수 있을까? 타인의 시선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편이라고는 생각하지만 주차할 곳을 찾아 눈치를 보고 마치 위험하고 유해한 존재라도 되는 듯이 대하는 사람들의 눈빛과 말, 행동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을까?

저자는 인터뷰만으로 이뤄지는 취재에 한계를 느끼고 노마드들과 같은 거주용 차량을 구매하고 그들이 하는 일도 직접 경험하기로 했다. 그에게는 든든한 직장과 쾌적한 집이 있다. 스스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원래의 안정된 삶으로 돌아갈 수 있는 상황임에도 자동차에서, 길 위에서 보낸 밤은 두렵고 서러운 시간이었고 일은 너무나 고됐다.

노마드들은 현실적 여건 때문에 길 위의 삶을 택했고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고 있다. 전혀 부끄러울 것이 없다. 하지만 이들이 길 위로 나서지 않아도 되도록 사회·경제적 환경의 정비는 반드시 필요하다. 노마드들은 지금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다.

지리적, 환경적 특성상 한국에 자동차를 타고 길 위를 달리는 노마드의 무리가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한국의 형편이 더 좋기 때문은 아니다. 어쩌면 한국의 노마드들은 한 몸 누이면 끝인 창도 없는 작은 고시원이나 쪽방에 갇혀 있는 게 아닐까. 게다가 한국에서는 미국의 노마드들이 하는 가혹한 일자리조차도 노년층에게는 돌아오지 않는다. 꼬리에 꼬리는 무는 생각들에 마음이 착잡해졌다.

법률저널의 독자들은 대부분 국가와 사회를 이루는 뼈대이고 핏줄인 법과 행정을 공부하고 향후 관련 분야에서 일하기를 꿈꾸고 있다. 때문에 시험에 합격하기 위한 지식을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사회에 대해,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볼 필요도 있다. 나아가 훗날 꿈을 이루게 된다면 정작 중요한 것은 놓치고 새로운 부작용만 양산하는 탁상공론이 아니라 노마드랜드의 저자처럼 직접 발로 뛰고 몸으로 부딪치면서 우리 사회가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는 길을 찾아내 주길 바라고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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