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한국사회에서 ‘능력주의(meritocracy)’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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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한국사회에서 ‘능력주의(meritocracy)’논쟁
  • 신희섭
  • 승인 2021.05.28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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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일상이 정치』 저자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일상이 정치』 저자

예일대학교 로스쿨을 포함해 상위 5대 로스쿨에는 매년 2,000명이 입학을 한다. 2,000명 중 미국 10권 대학 출신이 아닌 사람은 5명 이하일 것이라고 한다. 입시 경쟁의 끝판왕인 미국 상위 로스쿨의 훈련과정은 힘들기로 정평이 나있다. 하지만 졸업하면 보상을 받는다. 미국 상위대학이나 로스쿨의 졸업은 20만 불 이상의 초봉이나 구글 입사로 보상한다.

다만 이 과정을 위해 미국 사립학교는 학생 한명 당 연 평균 7만 5천불을 지출한다. 그리고 대학에선 평균 9만불을 지불한다. 중고등학교-대학-대학원의 신분벨트를 거치는데 평균 100만불을 쓰게된다.

어려운 교육벨트와 일류기업입사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귀족을 만든다. 자신의 노력으로 최상 엘리트층을 이룬 새로운 귀족들은 과거 귀족과 다르다. 과거 귀족은 신분제에 의해서 특권을 세습하였다. 그러나 현대의 귀족들에게 세습은 불가능하다. 국가의 세금과 사회적 감시제도 등이 특권의 세습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니 귀족층의 자제들은 과도한 교육벨트를 그대로 이수해야만 한다. 문제는 점차 경쟁이 치열해지고, 더 많은 돈과 노력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예일대학교 로스쿨 교수인 대니엘 마코비츠의 주장이다. 그는 『THE MERITOCRACY TRAP』 (한국어 제목 『엘리트 세습』)에서 자신이 가르치는 예일 대학교 사례를 들어 미국 능력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첫째, 이 경쟁에 뛰어든 자신 제자들이 너무 힘들어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에너지 낭비다. 둘째, 이 경쟁에서 낙오된 중산층들과 사회적으로 유리된다.

비슷한 시기에 마이클 샌델도 『The Tyranny of Merit』(한국어 제목 『공정하다는 착각』)을 저술하여 능력주의 문제를 지적한다. 능력자 개개인의 부패문제나 추문 문제가 아니라 ‘능력주의’ 자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샌델의 주장에서 차이가 있다면 그가 가르치는 제자들이 하버드 학생들이라는 정도.

능력주의는 비단 미국의 아이비리그와 상위 5개 로스쿨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더 높은 교육을 위해 더 많은 비용을 쓰고, 부모의 소득과 직업에 따라 자녀의 대학이 정해지는 과정이 꽤나 오래전부터 형성되었다. 아파트 한 평당 1억이 넘어간 강남이 마치 중세 영주들의 성처럼 되어 가고 있다는 자조섞인 비판도 나온다.

이 책들이 던지는 화두는 공감이 간다. ‘불공정.’ 이 시대의 화두다. 그러니 이 화두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돌아가보는 것이다. 능력주의는 개인이 더 많은 교육을 받고 더 높은 소득을 보장하는 안전한 직장에 다니며 더 안전하고 쾌적한 곳에서 사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하지만 지나친 경쟁을 유발하고 사회의 불공정성을 높인다.

자유주의자 로크는 하나님이 내려주신 ‘공유물’에 자신의 ‘노력’을 더해 자신의 ‘재산’을 만들 수 있다는 소유권(property)이론을 제시했다. 이는 개인의 성실함과 근면함으로 부를 창출하는 것이 왕과 귀족들 신분에 의한 세습보다 더 효율적이며, 정당하다는 새로운 사회원리 두 가지를 제공한 것이다. 즉 자유로운 개인에 의한 생산과 소비의 ‘효율성’과 운을 제거하고 노력으로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정당성’의 논리가 자유주의 시대를 열게 한 것이다.

개인을 절대시 하는 자유주의는 자본주의를 정당화할 수 있는 논리를 가지고 인류를 발전시켰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사회는 ‘능력(merit)’ 중심 사회가 되었다. 능력으로 개인들은 평가받게 되는 것이다. 높은 성적과 좋은 학교. 높은 소득과 우월해 보이는 직업군. 이 두 가지는 어린 시절부터 인간을 지배하고 경쟁하게 한다. 성취를 이루면 칭찬받지만 그렇지 못하면 패배자로 낙인찍힌다. 이 시대의 “능력 없는 자”라는 타이틀은 무능력뿐 아니라 부도덕성도 상징화한다.

능력주의의 악영향은 개인을 모욕 주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사회내에서 계층이동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신귀족층의 자리는 좁다. 일단 진입한 이들이 굳건하게 지키려고 하기 때문에 중산층의 진입은 불가능에 가깝다. 태어난 계층이 죽을 때 자신의 계층이다. 오히려 버티면 잘한 것이지.

이는 사회의 불공정성이라는 치부를 드러낸다. 게다가 바뀔 것 같지 않은 사회구조는 허무주의를 만들거나 분노사회로 바꾼다. 1%에 해당하는 ‘최상층’에 대한 ‘나머지층’의 조롱과 최상층의 신경질적인 분노와 조소가 뒤섞여 사회전체를 끓어오르게 한다. 결국 민주주의의 중심 축인 ‘공동체성(commonality)’과 ‘유대감(friendship)’이나 ‘연대의식(solidarity)’을 무너뜨리거나 쇠약하게 한다.

게다가 능력주의의 정당화 명제는 학생의 능력이 아닌 부모의 재력이 개입했다는 점에서 비판받는다. “돈만 많은 거지 뭐.” 한 문장 속에는 사회적 체념과 자본주의에 대한 멸시가 모두 들어있다.

공화주의를 지향하는 이들에게는 ‘경쟁사회-분노사회’를 만들어낸 능력주의가 문제의 본질이다. 사회의 지나친 경쟁과 공동체성의 상실에 따른 비인간화는 확실히 걱정스러운 일이다. 코로나19로 계층화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은 이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든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있다. 능력주의를 버릴 수는 없다는 것이다. 개인의 능력 말고 우리가 대안으로 삼을 수 있는 체제운영원리가 별로 없다. 능력을 가진 이들을 키우고 이들에게 공동체성을 교육하는 것. 공동체와 함께 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것 말고 대안이 없다. 특히 한국처럼 특별히 보유한 자원이 없을 때 인적 자원 육성 말고 미래를 기대하게 하는 것이 없다. 그러니 능력주의의 치열한 경쟁을 절제하게 하거나, 능력 있는 이들을 많이 키우고 이들이 사회와 공유하는 방법을 만드는 구체적인 방안만 논쟁안에 남는다. 그래서 논쟁의 끝은 그리 흥미롭지 않다.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일상이 정치』 저자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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