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시영의 세상의 창
상태바
오시영의 세상의 창
  • 법률저널
  • 승인 2006.09.01 14: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는 청소부가 되어야 한다.


  현대사회를 한 마디로 쓰레기문화시대라고 정의한다면 지나친 편견일까? 황금만능주의에 사로잡힌 자본주의의 물욕은 이제 예의와 염치를 몰각한 채 분별력상실의 단계에 이르렀지 않나 싶다.

 

도박과 마약 그리고 섹스가 정부에서 권장하는 산업이 된지 오래다. 이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 모든 국가의 공통적인 문제가 되었다. 라스베가스를 비롯한 세계 유수의 관광지에는 카지노를 비롯한 향락산업이 관광객의 호주머니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퇴폐적이고 향락적이다.

 

드디어 대명천지 서울 한복판에서 섹스포가 개최되기에 이르렀다. 성인용품 전시, 란제리패션 쇼를 비롯한 스트립쇼 등 볼거리가 다양하다고 한다. 성에 대한 세미나도 있고, 돈만 내면 누드모델과 사진 찍을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진다고 한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의 성은 아름답다. 성을 통해 인류는 사랑을 확인하고 종족을 번성해 왔다.

 

오죽하면 창세기 첫 장에서조차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향해 생육하고 번성하라 하였겠는가? 하지만 이제는 성도 돈 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한다. 어린 청소년들이 돈의 노예가 되어 성을 팔고 있고, 이를 조장하고 있는 것이 어른들이다.

 

외국 관광을 나가보면, 아니 집을 나서기만 하면 매춘의 유혹이 곳곳에 널려 있고, 도박에 대한 유혹이 펼쳐진다. 천근 압력으로 밀려드는 삶의 스트레스는 현대인에게 순간의 일탈을 꿈꾸게 하고, 스와핑에 집단혼음의 유혹을 갖게 하고, 이러한 문화는 디지털 문화와 결합하여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아내의 발가벗은 몸을 성인 사이트에 올려 돈벌이를 하는가 하면, 공공연히 스와핑 대상자를 구한다는 글이 인터넷을 장식하고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섹스포에 몰릴지 두고 볼 일이다.


 신약성경 마태복음 13장에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가 나온다. 길가에 뿌려진 씨는 싹이 돋을 틈도 없이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났으나 말라 죽어버렸고,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의 결실을 맺었다는 비유이다.

 

예수는 위 비유를 이해하지 못하고 무슨 뜻인가 되묻는 제자들에게 좋은 땅에 뿌리워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이야기라고  설명한다. 여기에서의 말씀은 진리를 의미한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지만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마저도 빼앗기리라고 예수는 설파한다.

 


  자꾸 되짚어 보지만, 대한민국 사람은 너무 영악스럽다. 이 영악스러움을 제대로 풀어나가기에는 나라가 너무 좁다. 그렇지 않아도 좁은 땅덩어리를 컴퓨터가 한 평짜리 밀폐된 공간으로 축소시키고 말았다.

 

한 평짜리 공간에 수많은 쥐떼들이 뛰어다닌다고 생각해 보자. 얼마나 그 공간이 협소하고 복잡하겠는가? 조선시대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명분을 중시하는 가치관은 실시구시를 멀리한 채 공리공담에 선비들의 목숨을 걸도록 부추겨왔다.

 

지금도 그러한 헛된 명분에 대한 집착은 전시작전통제권환수문제에, 보안법문제에 얽매여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힘을 합친 두 명은 각기 혼자인 백 명의 집단을 상대하여 이길 수 있다. 모든 국민이 한 마음이 된다면 미군이 있든 없든, 국가보안법이 있든 없든 무서울 것이 없다.

 

국민 상호간에 신뢰가 있고, 기꺼이 전체를 위해 내 것 조금 희생해도 좋다는 양보의 미덕만 있다면 겁날 것도 없다. 국민연금기금이 가까운 시일 내에 고갈될 것이 눈에 뻔히 보이지만 기존의 연금수급권자들은 양보하려고 하지 않는다.

 

의료보험기금도 새로운 조정이 필요하지만 부담이 늘어나는 가진 자들은 양보하려고 하지 않는다. 세금추가부담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정부는 문제점을 인식하고 이를 개선하려고 애를 쓰지만, 자기 것을 조금 내어놓아야 하는 자들은 양보할 기미가 전혀 없다.

 

영악스러운 국민들이 헛된 명분을 내세우며 소란피우는 나라, 그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그들이 품어내는 그럴 듯하게 포장된 구호들이 허접쓰레기처럼 세상을 온통 지저분하게 만들고 있다.

 

이번 주에도 바다이야기에 황금성 이야기가 겹쳐지고, 다시 사설경마도박장의 폐해가 겹쳐진다.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처럼 도박에 쉽게 빠져드는 것일까?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는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한 국민성 때문이 아닐까 싶다. 공사의 경계가 불분명하고, 일과 쉼의 한계가 불분명한 어영부영문화때문일지도 모른다.

 

합리성과 냉정함보다는 정에 이끌려 형님 먼저 아우 먼저 하는 네 것 내 것 혼재문화, 집단 속에 숨어 있으면 국물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을 것이라는 국물문화에 익숙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국물 한 모금이라도 마신 관계는 혈맹의 관계로 맺어진다. 함께 먹었으니 죽을 때까지 함께 가야만 한다.

 

네가 법에 걸려들면 나도 함께 걸려들고, 네가 나를 돌봐주지 않으면 나도 너를 배신하겠다는 철저한 계산만이 존재하는 땟국물문화는 이미 순수한 예전의 더불어 함께 사는 나눔의 국물문화가 아니다.

 

만 18세만 되면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서구문명과 달리 요즘의 젊은이들은 결혼하고 자녀를 낳고서도 부모들의 등뼈를 휘게 한다. 그런 것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의존적이다.

 

저는 아무 것도 안 해 주면서 부모에게 곧잘 삿대질이다. 부모님이 내게 해준 게 뭐가 있어요 라는 항변이 넘쳐나고 있다. 지금도 어린 아이를 잡는 부모들의 치맛바람, 극성문화가 판을 치고 있다. 잘못을 범하더라도 너무 쉽게 용서하고, 너무 쉽게 망각하는 망각문화, 일확천금을 노리는 어리석은 자들의 한탕주의 등등 온갖 쓰레기문화가 판을 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주소이다.

 

종교도 이미 그 기능을 상실하였고, 학교교육도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한다. 모두 각자가 잘난 세상이 되어 버린 오늘, 어떻게 상처를 치유하고 꿰맬 것인가?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비법은 없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모두 참고 인내하며, 자기 것을 조금씩 양보하는 수밖에 없다.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자기 주변의 쓰레기부터 하나씩 둘씩 치우는 청소부의 마음이 되는 수밖에 없다.

 

우리 모두가 청소부가 되어 각자의 쓰레기를 치우지 않으면 역사가 우리를 치워버릴 것이다. 열매 맺지 못한 나뭇가지는 불구덩이에 던져질 것이라는 성경말씀이 유난히 가슴에 와 닿는 9월 초하룻날 아침이다. 왜 이리 아침바람이 시원할까? 

xxx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전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하시겠습니까? 법률저널과 기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기사 후원은 무통장 입금으로도 가능합니다”
농협 / 355-0064-0023-33 / (주)법률저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공고&채용속보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