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의 정치학-규범론과 현실론으로 보는 미얀마의 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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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규범론과 현실론으로 보는 미얀마의 민주화
  • 신희섭
  • 승인 2021.03.12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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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일상이 정치』 저자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일상이 정치』 저자

2021년 2월 1일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 이후 ‘현실적 관점’에서 미얀마에 대한 칼럼을 썼다. 칼럼을 쓰고 미얀마의 ‘현실’ 조건과 민주주의라는 ‘당위’ 사이에서 며칠 마음이 걸렸다. 그런데 사태가 점점 극단적인 ‘생사 투쟁’으로 가고 있다. 3월 10일 현재까지 군대와 경찰이 쏜 총에 미얀마 시민 54명 이상이 사망한 상황이다.

안타깝지만, 생사를 다투는 이 줄다리기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한다. 군부도 시민들도 물러설 곳이 없다. 이 상황에서 승산을 따지면, 다시 마음이 무겁다. 아직은 ‘현실’이 ‘당위’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민주주의 국가의 ‘시민’이기도 하다. 마음 한편의 ‘규범’을 버릴 수가 없다. 이럴수록 현 사태를 좀 더 냉정히 바라보아야 한다.

지금까지의 민주화에 성공한 나라들은 민주파와 권위주의파 간 대립을 거쳤다. 그렇다고 해도 권위주의 군부와 시민 간의 생사 투쟁의 상황까지 간 경우에 민주파가 승리를 쟁취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집단행동(collective action)이론은 이 관계를 잘 설명해준다.

군부에 민주화는 ‘생사’의 문제다. 루마니아처럼 자칫 권력을 이양하면 숙청될 수 있다. 목숨은 부지한다고 해도, 생명과도 같은 권력 이양이란 치욕을 감당해야 한다. 따라서 ‘소규모’의 군부 집단에 권력 유지는 사활적 이익이자, 절체절명의 사명이다. 이론적으로 말하면 이들의 이익은 매우 ‘집중(concentration)’되어 있어, 이 집단은 똘똘 뭉치게 된다.

반면 다수를 이루고 있는 시민들에게 민주주의를 이룩하는 ‘민주화(democratization)’는 바람직한 가치다. 이는 모두에게 돌아가는 ‘공공재(public goods)’와 같다. 즉 비용을 지급하지 않아도 재화를 이용할 수 있는 ‘비배재성’이라는 독특한 특성을 가진다. 그리고 무임승차를 방조하는 이 특성으로 인해 시민 모두가 민주화 투쟁에 동참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민주화 게임이 총알이 빗발치는 생사 투쟁으로 바뀌면, 마음으로 동조하지만, 목숨을 걸고 민주화 인사들을 지지하지는 못하는 이들이 많아진다.

인원은 적지만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똘똘 뭉쳐 무력을 사용하는 ‘군부’와 잠재적 인원은 많지만, 실제 행동에 나서는 투사들은 적은 상황에서 민주주의의 당위성으로 대항하는 ‘시민사회’ 간 투쟁에서 우위는 군부에 있다. 이때 시민들이 전세를 역전시키는 방법이 두 가지 있다.

첫째, 국내적으로 지지세력을 압도적으로 늘려 군부를 누르는 방법이다. 지지세력이 압도적으로 되려면 민주화의 ‘대의명분’이 강력해야 한다. ‘대의’가 ‘합리성’을 누르는 것이다. 자랑스러운 민주주의 역사를 가졌거나 핏빛 민주화 경험이 있는 경우 민주화의 ‘대의명분’은 강해진다. 대한민국이 4·19혁명과 부마 민주항쟁과 광주민주화운동으로 1987년 민주화를 견인했던 사례를 생각해보라.

지지세력확장을 위한 ‘대의명분’ 확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대안세력’의 존재다. ‘대안세력’이 있을 때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규범’이나 ‘구호’로만 인지하지 않고, 싸워서 얻어낼 수 있는 ‘정치체제’라고 생각하며 민주화 투쟁에 가세한다. 이처럼 대안세력은 시민들을 더 많이 모으고, 이들에게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하며, 민주주의가 실현 가능한 것이라는 기대를 부여한다. 즉 합리성을 갖춘 시민들의 기대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대안세력이 있었던- 대한민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민주화가 성공한 반편, 대안세력 없이 민주화가 된 ‘아랍의 봄’ 국가들은 어렵게 이룩한 민주주의마저 조기 사망하기도 했다.

둘째, 시민사회가 승리할 방법은 ‘외부세력의 지원’을 얻는 것이다. 권력정치론 차원에서 보면, 외부세력이 민주화 투쟁에서 시민들의 부족한 ‘권력’을 보완할 수 있다. 특히 혹독한 ‘경제 제재’나 ‘보호책임(대규모 인권침해에 대한 군사적 개입)’의 사용은 민주화 투쟁에서 개임체인저가 된다. 2011년 보호책임을 원용한 리비아와 그렇지 않은 시리아를 보면 확연한 차이를 알 수 있다.

지금까지 분석으로 볼 때 미얀마 민주화 지지세력 확장과 관련된 국내적 조건은 ‘양면적’이다. 1988년 민주화 투쟁과 2007년 샤프란 혁명과 2015년 부분적인 민주화 이행은 민주화의 ‘대의명분’을 강화한다. 실제로 미얀마 시민들도 이번에는 강력하게 저항하고 있다. 그러나 아웅산 수치 여사가 감금된 상황이고, 눈에 띄는 대안세력을 발견하기 어렵다는 점은 지지세력 결집에 아킬레스건이다.

외부세력의 지원과 민주화 가능성도 ‘잠정적’이다. 우선 국제사회의 관심과 우려 표명이 늘고 있는 것은 긍정적이다. 각국 지도자와 의회가 현 사태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면서, 국제사회에 의지 천명을 촉구하고 있다. 담론형성은 인류가 가진 도덕성을 자극하고, 더 나가 UN을 대표로 하여 국제사회의 결의를 끌어낼 수 있다. 반면 개별 국가 차원이나 다자적 차원의 경제 제재가 현 사태를 중단시키거나 되돌리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그 결과 역시 보장하지 못한다. 또한, UN의 ‘보호책임’을 원용하기도 여의치 않다. 중국과 러시아가 반대할 것이다.

특히 중국은 지정학 차원에서 미얀마가 중요하다. 최근 설치된 가스와 석유 파이프라인의 안정성을 위해 중국 정부는 미얀마 군부에 중국을 비난하는 미얀마인들의 입을 틀어막으라고 요구했다. 이는 권위주의 국가 중국에 민주화된 미얀마보다는 믿을만한 미얀마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일대일로 정책의 인도양의 길목에 있고, 중국 목줄을 쥐는 ‘말라카 딜레마’를 피할 수 있게 해주는 미얀마에 대해 중국은 전략적 접근을 할 수밖에 없다. 만약 미얀마의 민주화를 용인하면, 민주주의 국가 대만 문제와 민주화를 요구하는 홍콩 문제에 대해 자기 발을 찍는 꼴이 될 것이다. 거시적으로 동아시아 전체에 미치는 파장을 고려할 때, 미얀마 민주화는 권위주의 연대가 필요한 중국에 훗날 숨통을 조르는 ‘암바’공격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 보았을 때 미얀마인들의 국제사회에 대한 지원 요청은 그 절박함이 충분히 공감 간다. 또한, 민주주의 국가의 ‘시민’으로서 나는 미얀마 민주화를 지지한다. 그런 점에서 합리적 차원에서는 이기기 어려운 투쟁을 하는 이들이 승리할 방법은 우선 미얀마 내부의 ‘대안세력’이 등장하여 ‘대의명분’으로 지원세력을 확장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실체’가 생기면 국제사회도 미얀마를 지원하기 수월해진다. 만약 이번에도 미얀마 민주화가 실패하면, 언제 다시 기회가 올지 모른다. 게다가 동아시아의 비민주주의 국가들에게는 생명 연장의 꿈을 꾸게 만든다. 이것은 규범적 차원뿐 아니라 ‘전략적’ 차원에서도 한국에 좋은 그림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미얀마 민주화를 적극적으로 응원한다.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일상이 정치』 저자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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